노동과 민중

삼성, 노동자 죽음으로 내 몰고....

녹색세상 2008. 4. 26. 22:58
 

반도체 백혈병 사망 진상규명 촉구…동토의 삼성

 

“친구들이 아빠 소리만 하면 남편 사진을 보며 ‘나도 아빠 있다’고 말하는 4살 된 딸을 보면 피를 토하고 싶지만.... 법이 있는 나라이기에 가정파괴범과 살인자를 놓아두질 않으리라는 한 가닥의 기대를 해봅니다.”(백혈병 사망자 부인 정모씨)


“xx, 볼 것도 없어. 이런 것(선전물) 찢어버려”(삼성전자 관계자)


“제가 이 회사 직원이어서 잘 알거든요. 이게 우리 회사를 위하는 일인가요? 3교대 하느라 지금 잠자는 시간인데, 누가 어떻게 책임질 건데요?”(삼성전자 여성노동자)

 

 

 

25일 집단백혈병 사태가 발생한 삼성전자반도체 경기도 시흥공장 여직원 기숙사 앞.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민웅 씨의 부인 정모 씨는 이같이 울분을 토했고, 선전물을 받은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위대를 자극하듯 눈앞에서 보란 듯이 욕을 하며 소리 나게 찢어버렸고, 밀린 잠 때문에 잔뜩 화가 난 한 여성 노동자는 울면서 '112'에 신고를 했다. 화를 이기지 못해 우는 앳된 여직원과 남편이 죽은 ‘이유’만이라도 알고 싶어 우는 정씨 사이에는 용역직원ㆍ삼성전자 직원ㆍ경찰들이 삼중의 벽을 만들고 있었다.

 

그 벽은 점점 두꺼워졌고, 좀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기지 않았다. 이 같은 벽은 현장 곳곳에서도 발견됐다. 기숙사 밖으로 나온 여직원들을 예의 주시하는 삼성 직원들로 인해 현장은 사방이 ‘보이지 않는 벽’로 겹겹이 가로막혀 있었다.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을 맞이해,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삼성대책위)는 25일 민주노총 경기본부 조합원 등과 함께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무노조경영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또 오는 28일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하거나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12명 가운데, 일부가  집단산재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혀 공단의 반응이 주목된다. 고 황유미 씨의 유족이 지난 해 9월 사망이 업무상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금을 신청해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백혈병에 걸린 삼성전자반도체 직원들이 집단으로 산재신청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산재신청을 준비하는 이종란 경기본부 법규차장은 “산재보험법 관련 판례 등에 따라 질병이 업무상 요인에 의해 발병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사망한 아들의 동료들을 ‘입막음’하며, ‘개인 질병’으로 몰고 가는 삼성의 태도에 분통을 터트렸다.

 

 


“병원비 빌미로 산재 신청도 못하게 해”


황씨는 “삼성이 돈으로 산재신청조차도 막으려 하고 있다”면서 “만약,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안전 점검을 통해 유미 같은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제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독재는 반드시 망하고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다.”면서 “지금이라도 노동조합을 허용해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배성태 민주노총 경기본부장도 “아직도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삼성반도체 공장 안에서 죽어 가는지 모른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면서 “노동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번 돈을 사회 곳곳에 뇌물로 뿌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노조 경영을 통해 깨뜨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강한 노동세상의 박순남 사무국장은도 “삼성이 투병 중인 환자에게 치료비를 빌미로 산재 신청을 못하게 하고, 노동부도 회사 이미지를 고려해 생색내기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고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전국의 양심 있는 시민단체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반도체 기흥공장 정문에서 먼저 결의대회를 마친 이들은 “산업재해 진상규명, 무노조 경영 중단”을 외치며 여직원들의 기숙사가 있는 곳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6시 무렵 삼성 기숙사 앞은 일을 마치고 구경나오거나 주말을 맞아 집에 가려고 나온 앳된 여직원들이 북적였다. 간혹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집회를 지켜본 여직원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태도도 삼성이 만든 ‘상품’일까?


‘기자하고 말하면 짤려’…사방에서 직원 감시


다수의 여직원들은 “우리는 이런 것 싫어해요", "3교대라서 지금은 잠자는 시간인데, 기숙사 앞에서 하는 건 너무 심하네요”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받은 선전물을 이내 버리기도 했다. 삼성전자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황씨의 부인 정씨는 “우리 때도 내놓고 말은 못 했지만 많은 여직원들이 생리불순, 유산, 피부병 등의 병이 발생했는데, 그냥 ‘남의 집에 도둑 든 것’처럼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면서 “고등학교 마치고 19살에 막 입사해 무엇이 문제인지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는 나이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삼성 안에 있으면 사람이 그렇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남편이 백혈병에 걸렸을 때 직원들이 마음을 모아 자발적으로 병원비를 공동으로 모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동료들에게 고마워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때는 집단행동을 싫어한 삼성측이 공동 모금을 허락해 준 것에 감사하게 생각했다”면서 “이번 사건이 삼성에서 노조가  만들어지는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결의대회는 삼성 계열의 보안회사 세콤 직원들과 사방에 흩어진 삼성직원들이 여직원들을 날카롭게 감시하는 가운데, 직접 몸끼리 부딪치는 일은 없이 마무리됐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집단발병 사건은 기흥공장에서 반도체 원판을 화학물질로 ‘세척작업’을 했던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지난 해 사망하고, 또 ‘2인 1조’로 함께 일한 이숙영 씨 역시 백혈병이 발병해 두 달 만에 숨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대책위는 97년 이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12명이 백혈병으로 진단을 받거나 사망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산재라고 주장하며 삼성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측이 ‘사실무근’이라며 대책위의 주장을 반박해, 결국 공은 역학조사를 벌이는 산업안전부와 노동부에게 넘어갔다. 한편, 지난 19일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는 추락사로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해 노동부 수원지청이 재해발생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레디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