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김현종’은 미국의 경제저격수인가?

녹색세상 2008. 4. 22. 01:15

 

국제 정세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시각’이란 질문에 분쟁전문취재 기자인 정문태는 “전 세계 분쟁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것만 이해하면 “대부분의 답이 보인다”고 말했다. 사선을 넘다들며 취재를 한다는 것은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위험한 일이다. 그런 생사의 기로에 수시로 서 있은 사람으로서 직접 보고 들으면서 몸으로 익힌 답인 것 같다.


전쟁의 원인을 ‘문화의 충동, 종교 간의 갈등’이라고 하는 것은 정세 분석은커녕 인식의 기본조차 모르는 무식의 극치를 드러내는 것이거나, ‘강자에 의한 수탈’이라는 정식을 덮기 위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세계전략이 직접 개입인 ‘고강도 전략’에서 간접개입인 ‘저강도 전략’으로 수정을 한지 오래되었다. 저강도 전략 속에는 정치ㆍ경제ㆍ문화를 동원한 합법과 후원의 탈을 쓴 교묘한 방식까지 있음은 국제 정세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우리말 보다 영어를 더 편하게 한다는 통상교섭의 초보자인 김현종을 전격 기용한 노무현의 저의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노무현 정권 당시 느닷없이 ‘한미FTA협상’ 얘기가 나오고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의 이력을 보면서 자전거 사고로 입원해 있을 때 읽었던 ‘경제저격수의 고백’이란 책이 떠올랐다. (특정 인물을 집중 거론하긴 그렇지만) 책의 내용과 김현종의 걸음 하나하나가 너무 닮아 의아해 했으나 먹고 사는데 정신이 없어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이 눈에 띄어 퍼와 수정해 올린다. 시간을 내어 ‘경제저격수의 고백’에 나오는 내용을 정리해 올릴까 한다.


‘꿈도 영어로 꾼다’고 자랑하는 대한민국 정무직 공무원, 자신이 다닌 미국 사립고등학교 교장으로 초빙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다. 껍데기만 한국산이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미제로 가득한 인물임에 분명하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로펌에서 변호사로 오랜 기간 생활하다가 왔으면 한국말의 미세한 표현상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텐데 그런 사람을 노무현은 정무직의 고위직으로 채용을 했다. 한미FTA협상을 지휘한 김현종에 대해 알아보자.


경제저격수의 의혹이 너무 짙은 김현종


노무현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승승장구한 한미FTA 사령탑인 김현종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그는 세계경제 뒤 무대에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제 저격수’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번 협상을 두고 ‘미국과 미국의 협상’이라고까지 한다. 미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국제주의자로 화려한 경력을 쌓았기 때문일까. 협상력이 탁월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그가 만약 이번 한미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만들지 못할 경우 그의 ‘혐의’는 더욱 짙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끝났다. 한미FTA는 ‘제2의 을사늑약’에 비유될 정도로 우리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폭발력을 안고 있다. 사실 한미FTA협상 그 자체가 우리 경제정책의 틀을 새로 짜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한미FTA협상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요소다. 이 한미FTA를 지휘하는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47)은 한미FTA협상 추후 결과에 따라 ‘국가적 영웅’으로 존경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매국노’로 지탄받을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다.


존 퍼킨스와 유사한 면 매우 많아


특히 최근에는 김 본부장에게 ‘경제저격수’라는 혐의를 두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경제저격수’란 겉으로는 다국적 컨설팅업체 직원, 혹은 정부관리 등으로 위장해 개도국 산업을 붕괴시켜 개도국의 천연자원과 군사시설을 미국에 종속시키는 사람이다(존 퍼킨스, ‘경제저격수의 고백’ 저자) 실제 김현종은 경제저격수로 활동했던 존 퍼킨스와 유사한 면이 많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며 다국적 기업(다국적 로펌)과 국제기구나 단체에서 활동한 경력, 젊은 시절 보여준 놀라운 성과 등등.


물론 김 본부장에게는 보통의 경제저격수가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이 아닌 공무원(계약직)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하지만 김 본부장에게도 몇 가지 사항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한미 FTA 협상이 우리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먼저 노 대통령이 김 본부장을 신뢰한 이유부터 추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노 대통령의 독특한 인사스타일에 있다.


특히 노 대통령에게는 취약한 분야인 외교ㆍ통상ㆍ무역ㆍ통일 분야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대통령의 절대권위를 인정하는 비정치적 인사를 선호한다. 여기에다가 설득력 있는 화술과 이론적 토대를 갖춘 사람을 특히 좋아한다(최재천 의원). 그 틈새를 뚫고 들어간 대표적인 인사가 바로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김현종 본부장이라는 것이다. 김현종은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외교부에서 매우 특이한 존재다.


그는 정통관료 출신이 아니다. 그는 통상협상 전문가가 아니라 통상법 전문가이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석박사, 국제변호사, 홍익대 무역학과 교수, WTO(세계무역기구) 법률자문관 등의 이력을 갖고 있다. 외교관인 부친을 둔 ‘덕택’에 그는 거의 외국생활을 했다. 국내에서 학연이나 지연과 같은 연줄은 아예 없다. 그는 WTO법률국 수석고문변호사로 재직하던 2003년 5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발탁됐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서갑원 의원(열린우리당)이 노 대통령에게 소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김병연 전 노르웨이 대사가 부친이며 김 전 대사의 고향은 전남 순천이다”고 말했다. 그는 공개모집 절차를 밟았지만 정치적 지연을 통해 현 정부와 연계된 것이다. 노 대통령은 김 본부장을 직접 외교통상조정관으로 발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초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김 본부장은 노 대통령에게 통상현안에 대해 설명을 한 적이 있다.


김 본부장은 “그로부터 며칠 후 (청와대로부터) ‘같이 일을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통상교섭조정관은 1급이지만 차관회의에 참석한다. 그는 1년3개월 만에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총성 없는 경제전쟁의 사령탑이 된 셈이다. 당시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은 그를 임명하면서 ‘한국 관료의 미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 통상교섭조정관 시절부터 그에게 조직개편과 인사권한까지도 주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보좌관인 이승원씨는 “종전에는 조직개편과 인사권은 외교통상부 차관의 통제를 받았는데 통상교섭조정관이던 김 본부장이 그런 권한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개방형 공무원 채용을 확대했고 통상교섭본부 내에 ‘한 FTA기획단’을 신설하는 등 조직개편도 주도했다. 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기구여야 할 ‘한미FTA기획단’이 통상교섭본부 내부에 설치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논란도 제기됐다.


‘한국 관료의 미래’라는 칭찬 받아


이 보좌관은 “정통관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김 본부장의 뛰어난 조직 장악력과 업무능력, 영어실력 거기다가 폭넓은 통상인맥 등을 갖춘 데다 노 대통령의 믿음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관계자들의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부겸 의원과 임종석 의원은 “자신감과 열정이 넘쳐난다” “매우 국익을 위한 전략적 사고를 한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이런 평가는 전문성에서 비롯된다.


특히 김 본부장의 미국을 비롯한 해외 통상인맥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통상법 전문가이지만 통상협상에도 누구에게 지지 않는 최고의 실력파로 통한다. 당연히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법률지식, 협상술에 강한 카리스마가 있다. 사실 그는 국내보다 국제무대 경력이 더 화려하다. 1999년부터 4년 동안 세계무역기구(WTO) 법률국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이자 가장 높은 수석변호사(39)에 올라 국제무대에서 활약했다.


미국에서 교육받고 생활한 탓에 그의 마인드는 세계화, 국제주의자라는 평가다. 그가 FTA 전도사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칠레와의 FTA 발효 이후 싱가포르, 아세안 10국, EFTA(EU에 가입하지 않은 유럽국가), 일본, 미국 등 속도감 있는 FTA 협상은 김 본부장이 마련한 전략 덕택이다. 국제적 통상환경이 다자간 협정에서 양자간 협정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서두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신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하고 있다.


자유무역론자, 국제주의자, 시장개방론자의 특징이 바로 ‘경제저격수’의 특징과 유사한 점이다. 경제저격수 존 퍼킨스도 평화봉사단과 세계은행을 위해 활동하는 등 국제단체나 기구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쌀 재협상 문제로 김 본부장을 접촉해온 강기갑 의원은 “초기에는 소신과 확신에 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말도 바뀌고 농민 등 이해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누구보다 애국심 투철하다’는 평가도?


한미FTA가 성공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이런 이력이 그에게 ‘경제저격수’로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한결같이 “누구보다 국가관과 애국심이 투철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주변에 따르면 그의 국가관은 외교관이던 부친이 일본에서 근무할 당시 일본 아이들이 ‘조센징’이라고 놀린 것에서 키웠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받은 상처는 ‘한국인으로의 자각’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애국심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병역문제를 보면 그의 경력에서 의문점이 많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고등학교, 대학 학부와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 미국 로펌에 취직했다. 그렇다면 병역의무는 언제 어떻게 했는가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 일부 언론에서 석사장교로 복무했다고 하는데 그의 약력 어디에도 병역기간이 없다.


통상교섭본부 일각에선 6주짜리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마쳤다고 하는데 방위산업체나 연구소, 하다못해 야구선수인 박찬호 같은 체육특기자도 아니고 외국계 로펌에서 근무한 경력으로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대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 대목에선 병무청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의 비서 격인 임승철 사무관도 “본부장의 병역관계 등 개인적 신상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언급을 회피했다.


김현종의 미국에서 생활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컬럼비아대에 다닐 때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했던 별의별 행동을 보면 과연 그를 애국자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평가했다. 권영길 의원이 “미국 쌀 공매방식에 대해 굴욕적인 이면합의를 했느냐”고 따졌을 때 “국제법상 위반이 아니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한 일이 있다. 이를 두고 강기갑 의원은 “미국의 세계화 물결 중심에 서서 대변하는 것 같다”고 그의 애국심을 의심했다.


진보진영 대체로 부정적


어쨌거나 그의 협상능력만큼은 탁월하다는 평가다. 그의 협상능력은 미국에서 익힌 합리성과 상대방의 의도를 꿰뚫어 대응하는 전략적 사고에서 나온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래서 협상 파트너에게는 ‘녹록지 않은 사나이’로 통한다. 이런 협상력은 실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가장 개량적 평가가 되고 있는 사례 한 가지. WTO협정위반 제소에 대한 승소율이다. 통상교섭본부는 우리나라의 승소율이 73%라고 밝혔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승소율이라고 한다.


특히 하이닉스반도체의 승소는 한국의 입장에서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경우이다. 하이닉스반도체가 WTO에 제소된 이유는 공적자금을 받았다는 것. 공적자금이 국가보조금이 된다는 의미였다. 임종석은 “우리나라의 굴지의 기업 중 공적자금을 받지 않은 기업이 얼마나 되겠냐”면서 “만약 패소했다면 한국은 또 다시 IMF 상태로 되돌아가야 하는 위기를 맞을 뻔했다”고 말했다. 물론 “WTO에 제소한 미국이 억지를 불렸다”(최재천 의원)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하이닉스반도체 승소의 의미는 절대 감소하지 않는다는 게 통상전문가의 한결같은 이야기이다. 특히 그는 전략적 협상에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싱가포르와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을 한국산으로 포함시킨 것은 종국적으로 미국과 일본, 중국을 겨냥한 전략적 접근이었다는 게 통상교섭본부의 설명이다. 최재천 의원은 “개성은 486컴퓨터도 사용할 수 없는 생산 환경”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문제가 경제적 가치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임종석은 “그것은 남북 경제협력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는 미국, 일본, 중국 등 경제대국과의 협상과정에서 개성공단의 한국산 인정이라는 우리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협상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이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기갑 의원은 미국과 쌀 재협상 과정에서 “미국 쌀만 낙찰될 수 있도록 입찰규격을 두 차례나 바꾸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협상전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외협상 못지않게 대내협상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 5일 한미FTA 협상 공청회가 계획된 날, 김 본부장은 미국 워싱턴에 머물고 있다. 또 FTA에 대한 로드맵이나 양허내용이 전혀 공개하지 않아 그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찌됐든 김현종은 본인의 말대로 대한민국의 앞날을 결정할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저격수’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것도 47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비중만큼 인물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부족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그 후 김현종은 주미대사로 영전되어 갔다. ‘꿈도 영어로 꾼다’는 자를 미국대사로 임명한 대통령이란 자가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0년간 경제저격수로 활동한 존 퍼킨스는 1945년 교사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엄격하지만 자부심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


생활은 풍족하지 않았지만 우등생이어서 대학도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는 모두 잘사는 부잣집 자재들. 부유층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좌절을 맛보다 결국 자퇴했다. 하지만 다시 보스턴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군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국(NSA)에 지원했다. 존 퍼킨스는 국가안전보장국 면접에서 관심사항은 남을 앞지르고자 하는 굳은 의지,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외국인과 쉽게 어울리는 재능, 과거 경찰에 거짓말을 하고자 했던 결심 등이라고 꼽았다.


국가안전보장국 면접을 앞두고 주변(사실상 NSA)의 조언으로 평화봉사단에 지원했다. 평화봉사단으로 가면 역시 징집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경제저격수 후보로 선발된 것이고 평화봉사단 활동도 그 훈련의 하나였다. 교육을 마친 그는 1968년 에콰도르에서 평화봉사단 활동을 했다. 이때 그는 세계은행의 요청으로 에콰도르와 주변국 사회기반시설 융자 결정 보고서 등을 작성해 보고했다. 그는 경제저격수에 의한 에콰도르 석유회사의 파괴행위를 목격했다.


1970년 NSA와 연계된 국제 컨설팅회사 메인사에 입사한 존 퍼킨스는 본격적인 경제저격수 훈련을 받는다. 그의 임무는 개발도상국에 대형 차관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 차관을 받은 나라가 회사에 대금을 지불한 후 파산토록 유도하는 것이다. 개도국의 주요 업체를 파산시키면 영원히 채무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이 군기지나 유엔 내 투표권 확보, 석유나 천연가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의존도가 높으면 미국에 대한 충성도도 높다. 개도국 회사 소유자는 혜택을 보지만 빚은 국민 모두가 떠안게 된다, 빈부의 격차는 더 늘어나지만 통계수치로는 성공적으로 만드는 기술 등을 사용한다.

 

더구나 이 사업을 개도국의 고속도로, 항만, 발전소를 지어주며 선한 일로 포장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경제저격수로 안 되면 나중에 테러, 군대까지 동원한다. 그는 사우디 돈세탁 프로젝트, 이란 국왕 축출, 오마르 토리호스 파나마 대통령 사망 등에 관여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30대에 최연소 경제 및 지역개발팀장이 됐다. 또 고액 연봉을 받으며 언론에 기고하는 등 유명인사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죄책감과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1980년 45세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후 이런 사실을 폭로하는 글을 쓰려다가 몇 번 좌절한 끝에 2004년 ‘경제저격수의 고백’을 출간했다.

 

 

덧 글: 한미FTA 책임자인 김현종은 미국에 협상 기밀을 흘렸고, 수석대표인 “김종훈은 ‘개성공단 문제를 가장 먼저 거론하라’는 청와대의 지시를 어기고 뒤로 미루었다.” 위키리스가 폭로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미국의 이익 관철에 철저히 복무한 것이다. 협상에 나간 관료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노무현 정권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