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새로운 진보로 거듭나겠습니다.

녹색세상 2008. 3. 26. 16:51

 

 

 

 

 

     

       눈물로 길을 만들어 오신 사랑하는 이랜드 아줌마 동지들에게


작년 6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소박하게 시작한 파업투쟁이 10개월로 접어들었네요. 1박 2일 홈에버월드컵점 농성이 무기한 파업투쟁이 되리라곤 아무도 예상 못했지요. 많은 날을 지나오면서 본의 아니게 우리들은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조합원님들 바람처럼 투쟁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는 일터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야 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파업은 쉽게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매일 투쟁 장소를 향해 집을 나서며 조합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짐작해봅니다. 곧 끝날 것 같더니 끝도 없이 이어지는 투쟁이 참 지겨울 것도 같고요. 지도부가 원망스럽기도 하겠구요. 누구보다 박성수 회장이 죽이고 싶도록 괘씸할 것은 분명하고요. 아이들과 남편 생각에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도 않겠지요. 내가 일했던 정든 일터에서 부딪치는 구사대와 용역 직원들을 보면 화도 나고 허탈하기도 하겠지요. 현장 복귀한 동료들 생각하면 울컥 맘이 울적해지기도 할 거구요. 그래도 함께 남아서 악으로 깡으로 투쟁하는 동지들 얼굴 보면 차마 힘들다는 얘기조차 꺼내기 힘들겠지요. 난생 처음 겪어본 파업이 이렇게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줄 누군들 알았을까요.


이번 비례후보 출마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진통과 논란이 있었지요. 투쟁하면서 진보정당과 사회단체의 지지와 지원을 받는 것이야 익숙했지만 직접 우리가 정치 주체가 되는 것은 생소하고 난감한 경험이었으니까요. 특히 그 동안 저희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한 동지들이 대부분 반대했으므로 결과적으로 참 곤혹스러운 결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합원님들이 흘린 눈물과 절절한 호소는 제 가슴을 온통 흔들어놓았습니다. 그 결정보다 더 중요했던 건 그 결정이 있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었고 조합원님들의 절절한 바램이었으니까요.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 소박한 열망, 가정을 잘 돌보고 싶다는 그 애절한 바램, 하루라도 맘 편히 일과를 시작하고 싶은 가정주부의 맘을 박성수 회장은 늘 모질게 헤집어놓곤 했지요. 그리고 그 누구도 우리 투쟁 승리의 전망을 힘 있게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은 조건에서 총선이 얼음장처럼 냉정하게 우리 앞에 닥쳤지요. 갖은 뒷공론과 구설수에 시달리며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택한 진보신당 비례후보 결정이었습니다. 어느 동지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지푸라기인 줄 알고 잡는 건 어리석은 결정 아닌가. 지도부가 무책임한 건 아닌가. 솔직히 맞는 지적입니다. 설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성과가 있더라도 당장 승리를 안아올 수 없기에 어리석은 결정이었고, 애초 의도하진 않았지만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어긋나기에 무모한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고 무모한 결정보다 더 나은 방도를 조합원 동지들이 찾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눈물바다가 됐던 두 번째 총회에서 제가 확인했던 건 9개월째 피 눈물 나는 투쟁을 이어온 주부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생계고 때문에 무너져 내리는 마음 한켠을 붙들고 박성수를 더욱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는 방도에 대한 조합원 동지들의 냉정한 판단이었습니다. 점거농성, 매출타격투쟁, 집중집회, 투쟁사업장 공동투쟁, 불매운동, 선전전, 여론전, 교회 앞 천막농성 등 안 해 본 투쟁이 없는 조합원들 입장에선 끝장을 내는 투쟁이 아니라면 총선 공간 비례후보 출마를 의미 있는 전술로 받아들인 셈입니다. 정치적 선택의 문제도 아니었기에 알고 보면 단순한 결정이었지만 그 후폭풍이 워낙 만만찮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몇 달치 맘고생을 한꺼번에 했습니다. 비례후보 전술을 제안했고 두 번째 총회 때 끝내 눈물을 보인 김경욱 위원장님은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차라리 우리끼리 맘 편하게 결정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지요. 이랜드 투쟁에 헌신적으로 결합한 그 수많은 이름 모를 동지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죄스런 심정입니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과 지도부 동지들, 그리고 이랜드 투쟁 승리를 위해 헌신했던 민주노동당 동지들이 느꼈을 배신감과 서운함도 제가 맘고생 한 만큼 피부로 절감합니다. 시간이 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많은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제가 믿고 속내 터놓고 얘기 나누는 비정규 대표자 몇 분과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많은 우려와 질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왕에 나선 만큼 제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도록 역할 하라는 당부가 이어졌습니다. 진보정당이 둘로 쪼개져서 혼선에 빠진 현장의 우울한 분위기도 가감 없이 전달받았습니다. 진보신당 비례후보로 당선은 꿈도 꾸지 말고 사심 없이 열심히 조합원들을 생각하면서 달려가라는 그 분들 얘기를 들으면서 맘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下心. 그 날 저는 못난 내 맘을 그 비정규 대표자들 계신 자리에 내려놓고 왔습니다. 이기는 투쟁으로 조합원 동지들을 일터로 아직도 돌려보내지 못하고 있는 못난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부끄러운 제 자화상을 가슴 깊이 각인하고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첩첩산중입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하면 또 무슨 난감한 일이 생길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이제 100미터 출발선 앞에 선 달리기 선수처럼 달려가려 합니다. 이랜드 아줌마 동지들을 생각하면서 4월 8일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뛰어갈 겁니다. 제 이름자 앞에 붙은 진보신당 비례후보로서 성심껏 역할을 감당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환을 알려내고 투쟁하는 동지들의 문제를 한 번이라도 더 전파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 할 겁니다. 이랜드 투쟁 승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총선 공간을 활용할 겁니다. 질기게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쟁점화 하는데 집중할 겁니다. 누군가의 얘기처럼 이번에 제가 얻어먹은 욕만으로도 장수는 따 놓은 당상인데요 ^^ 욕 얻어먹은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애쓸 겁니다.


이명박 정권의 행태가 갈수록 점입가경입니다.

1% 부자내각에게 찬바람 맡기는 한국어 신세와 노동자 신세가 비슷합니다. 노동자 서민의 삶이 피폐해지는 건 시간문제겠지요. 이명박 정권 아래서 우리 이랜드 아줌마 동지들 승리도 만만찮아 보입니다. 한 땀 한 땀 사랑하는 아이의 옷을 짓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끈질긴 투쟁을 이어가야겠지요. 정치적으로 그 투쟁의 최 일선이 제가 서 있는 곳이기에 비껴가지 않고 이명박 정권과 겨뤄볼 참입니다. 투쟁하는 노동자의 자존심을 걸고 꼭 승리해서 살아 돌아올 겁니다. 넘 사랑하는 이랜드 아줌마 동지들, 승리하는 그 날까지 끝까지 함께 할께요. 얼굴 자주 못 볼 테지만 제 맘은 두고 왔으니 우리는 늘 그렇듯이 지금도 하나입니다. 박성수와 같은 악질 자본가가 추방되고 진짜 주인인 노동자들이 존중받는 세상을 향하여.....

                                                              이남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