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김부선, 당신 같은 배우가 있어 ‘다행입니다’

녹색세상 2008. 3. 24. 21:11
 

진보신당 당원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만들어 준 김부선 씨



얼마 전 ‘경향신문’과 ‘한겨레21’에 실린 배우 김부선 씨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기사가 참 좋았다. 꼭 해야 할 말, 여러 번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 가득했다. 우와~ 생각보다 내공이 깊은 분이 아닐까, 궁금증이 생겼다. 하긴, 진보신당 창당 대회 때, 김부선 씨가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 무대 위에서 했던 말이 기억에 많이 남기는 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여러분들의 오랜 민주화 투쟁으로 저 같은 마약쟁이가 사회에 커밍아웃하는 시대가 왔다. 민주화 투쟁에 동참하지 못했던 것에 사죄하면서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김부선 씨를 보는 눈은 여느 사람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부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라곤 에로배우, 대마초 관련사건…. 그가 나온 영화로 기억에 남는 거라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를 유혹하던 떡볶이 집 주인 아주머니. 특히 김부선 씨가 주장하고 있는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에 대해 관심도 적었고, 특별히 동참하는 마음도 없는 상태였다. 이 정도 배경 지식을 갖고 있으니 창당 대회 때 김부선 씨가 저 말을 했을 때 좀 놀란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두 매체에 실린 인터뷰를 보고는 김부선 씨에 대한 관심이 확 생겨버렸다. 이 정도 내용은 절대 꾸며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듯 했다. 아무래도 이 사람한테 못하는 뭔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처음엔 잠깐이면 끝날 줄 알았다. 헌데 이게 어쩐 일인가. 점심 먹기 전부터 시작한 일이,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잠깐씩 쉬는 시간을 빼고는 저녁때까지 이어졌다. 허리가 아파올 지경이었으니.


김부선 씨가 살아온 길이 어찌나 순탄치 않던지, 하나하나 자료를 찾아볼 때마다 그저 놀랍기만 했다. ‘대마초 비범죄화’ 부분은 또 어찌나 복잡하던지. 하지만 이 부분을 넘어서지 않고는 도저히 이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 같았기에 알아가려고 애를 썼다. ‘노력’에 장사 없다고 처음엔 아리송하기만 하던 ‘대마초 비범죄화’ 문제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남 앞에서 자신 있게 설명할 수준은 안 되지만, 김부선 씨가 주장하는 내용이 이해되고, 끝내는 그 사람 주장이 옳다는 믿음도 얻었다.


솔직히 처음엔 걱정이었다. ‘대마초 비범죄화’가 정말 옳은 일일까, 딱히 옳지 않은 일이면 어떡하지? 아무 지식이 없으니 이런 걱정이 드는 수밖에. 그래서 더 꼼꼼하게 살펴보려고 애를 썼다. 어설프게 동조하는 것도, 어설프게 비판하는 것도 모두 싫었다. 딱 정확한 사실만 보고 싶었다. 여러 기사들에서 김부선 씨가 했던 그 숱한 애절한 말들과, 여러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이 남긴 대마초 비범죄화에 대한 올바른 근거들을 수십 번 읽고 또 읽었다.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 이런 거였구나’ 그러면서 또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 가지며 사노라고 여겼던 내가 이 부분에 대해서 지나치게 ‘무식’한 지금 모습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특히 지난해 전인권 씨가 마약 건으로 구속됐을 때는, ‘그럼 그렇지!’ 하고 내심 생각하기까지 했으니. ‘나는 진보적’일 거라고 생각해왔던 그 시간들이 무지하게 창피하기만 했다. 이런 우리들에 비하면 김부선 씨는 얼마나 진보적인가. 한국마약범죄학회 학술이사인 문성호 박사가 ‘삼과 사람’(한국학술정보)이라는 저서에 남긴 아래 말은 김부선 씨의 진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듯하다.

 

 

“광복 후 미군이 남한을 점령, 대마를 불법화한 지 50년, 대마관리법이 제정된 1976년 이후 30년간 누구도 제기하지 못한 대마초 합법화 목소리를 처음 낸 이가 바로 김부선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보통은 남성보다 여성한테 관대하지 않은 게 우리 사회다. 참으로 후지고 또 후진 모습. 연예계는 특히 더하다. 공인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런 점에서 ‘대마초’라는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명백하게 ‘마약’ 취급을 받고 있는 대상을 들고 법과 싸우겠다고 나선 것은 정말로 엄청난 용기라고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 그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대마초 때문에 다섯 번의 처벌을 받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대마초 사건만큼 정치적인 게 없어요. 저도 매번 다른 사람의 제보를 통해 처벌받은 건데요. 대마초가 정말 위험한 범죄라면 수사기관이 제게 ‘유명 연예인 몇 명을 더 불면 풀어주겠다’는 제안을 왜 합니까. 2004년 구속됐을 때도 그랬어요. 제가 너무 힘들어서 대마를 재배한 트럭 운전기사를 말했어요.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아요. 유명 연예인이 있느냐 없느냐에만 관심을 갖는 거예요. 정말 위험한 거라면 재배한 사람, 판매한 사람, 유통시킨 사람을 잡아야 한다는 거죠. 경찰과 검찰은 단순 투약자, 특히 유명 인사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저는 분명 ‘대마초 비범죄화’ 어젠다를 정치권에도 제기했고, 대한민국 사법부에도 문제 제기를 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어떤 기관도 대마초가 왜 나쁜지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거든요. 저는 국가기관이 대마초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근거를 제시할 때까지 꾸준히 제 소리를 낼 겁니다.” -<한겨레21> 인터뷰에서


하지만 저 인터뷰 글을 다시금 읽어보면, 그가 가진 용기의 근원은 ‘부당함에 대한 정당한 분노’임을 알 수 있다. 사실은 누구나 가져야 할 ‘당연한 분노’임에도 김부선 씨만이 총대를 멨기에 특별하게 보였을 뿐이다. (진보신당 누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