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삼성전자, 백혈병 공포 확산

녹색세상 2008. 3. 2. 18:47
 

       반도체 생산라인…압박하거나 퇴사 종용했다는 증언도


박지연 씨는 퀭한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안녕하세요.”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서관 13층 항암치료 병동 유리 창문 너머로 박씨가 가만히 눈인사를 건네왔다. “감염 우려가 있어 보호자 외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담당 간호사들은 병실 문 앞에서 취재진을 막아섰다. 항암 치료에 기진해진 박씨가 가까스로 옅은 미소를 짓더니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어머니 황금숙씨는 “억울하다”며 가슴을 쳤다. 

 

△ 박지연 씨는 계속된 항암 치료로 지친 듯한 모습이었다. 왼쪽 뒤편에서 어머니 황금숙씨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박 씨를 보고 있다.


                    “견디기 힘든 역한 냄새 났다”


박씨가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한 것은 2004년 12월27일이었다. “남들 다 가니까 전문대라도 가라고 했죠. 친구들은 다 대학에 갔어요. 엄마 힘드니까 돈 벌어야 한다고 거길 들어간 거예요.” 박 씨는 입사 이후 줄곧 회사 기숙사에서 살았고, 한 달에 한 번쯤 가족을 만나러 부여에 다녀갔다. 일이 많아 ‘1일 2교대’로 일할 때는 한 달에 130만원, 일이 줄어들어 ‘1일 3교대’가 될 때는 100만원 정도를 벌었다. 박 씨는 기흥공장에서 생산된 반제품 상태의 반도체들이 잘 만들어졌는지 검수하는 일을 했다. 납을 고열로 가열하고, 노란색의 ‘플럭스’(flux) 용액, 무색의 ‘141b’라는 휘발성 화학약품 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견디기 힘든 역한 냄새가 났다고 한다.


몸에 이상을 발견한 것은 2007년 7월께였다. 며칠 전부터 속이 울렁거리고 ‘미식 미식한 느낌’이 들었다. 두어 달 정도 견뎌보다 그해 9월9일 하루 월차를 내고 집으로 내려왔다. 처음 찾은 곳은 논산 고려병원이었다. 병원에서는 “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곧바로 대전 성모병원으로 발길을 돌렸고, 사흘 뒤 ‘급성골수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5개월 동안 박씨는 대전에서 서울로 병원을 옮겨가며 세 번의 항암치료를 받았고, 골수 이식을 준비하고 있다. 어머니 황씨는 “또 얼마나 돈이 들어갈지 짐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 작업과 백혈병과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 현재 산업안전관리공단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과 백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찾는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쉽게 결론을 내릴 순 없다. 분명한 것은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생각하는 모임 ‘반올림’을 이끌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자만 모두 11명”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 씨가 숨진 것은 2007년 3월이었다. 황씨는 2003년 10월 속초상고 동기 10여 명과 함께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기흥공장에는 모두 12개의 생산라인이 있다. 후문 쪽에는 초창기에 만들어져 시설이 노후화된 1~5번 라인이 있고, 정문 쪽에는 최근 지어진 6~12라인이 있다. 노동자들은 통상 1~5번 라인을 ‘K1’, 6~12번 라인을 ‘K2’라고 불렀다. 각각의 라인은 세부 공정에 따라 다시 24개의 ‘베이’로 구분된다.


황 씨가 배치된 곳은 ‘K1’의 3라인이었다. 입사 뒤 3라인의 1·22·24베이 등을 옮겨 다녔고 3베이로 옮긴 것은 2004년 12월께였다. 그는 3베이에서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불산·황산암모늄 등 화학물질 혼합물에 담갔다 빼며 세척하는 일을 했다.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2005년 5월께였다. 몸에 자주 멍이 들고, 구토가 나고, 갑자기 닥쳐오는 어지러움을 견디기 힘들었다. 한 달 뒤 찾은 병원에서 황 씨는 급성골수성백혈병이 발병한 사실을 알게 됐다. 황 씨와 가족들은 산업재해 신청을 하려 했지만 회사에서는 “회사 사람들 가운데 백혈병이 난 것은 처음”이라며 황씨를 만류하고 나섰다. 황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삼성에서 직원들이 찾아와 ‘당신 같은 개인이 삼성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겠냐’고 압박했다”고 했다.


황 씨와 가족들은 치료를 위해 찾은 아주대학교병원에서 기흥공장 설비엔지니어로 일하던 황민웅 씨가 같은 급성백혈병으로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황 씨가 병에 걸린 지 1년 뒤인 2006년 7월, 같은 3라인 3베이에서 일하던 선배 이숙영 씨도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 채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8월17일 숨졌다. 이씨의 아주대병원 박준성 담당의는 ‘의사 소견서’에서 “급성골수성백혈병의 원인에는 다양한 항암제, 방사능 조사(노출), 벤진이나 유기용매에의 노출이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본 환자도 수년간 다양한 화학물질 또는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다. 이씨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는 황씨를 찾아와 퇴사를 종용했다. 황씨가 숨진 것은 2007년 3월이다. 민주노총 등 13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만든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 카페에 가면 고통스럽게 기침을 토해내며 작업 환경에 대해 설명하는 숨지기 전 황 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종란 노무사는 “대책위 발족 이후 비슷한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1983년 기흥공장에 입사해 2006년 2월 발병한 40대 남성, 2003년 9월 발병해 2004년 1월 사망한 여성, 2001~2002년 기흥공장에서 이숙영씨의 선임자로 일하다 전라도로 내려가 소식이 끊긴 여성 등 피해 사례는 계속 쌓이는 중이다. 문제는 회사의 압박이다. 이 노무사는 “노동자들이 ‘할 얘기가 있다’고 전화를 걸어온 뒤 몇 시간 후에 ‘없던 일로 하면 안 되겠냐’고 말을 바꾼다”고 말했다.


               “대책위 발족 이후 제보 쏟아져”


이 모든 논란의 공은 산업안전관리공단으로 넘어간 상태다. 황씨의 가족은 근로복지공단에 황 씨의 병을 직업병으로 인정해달라며 산업재해 신청을 냈고,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관리공단에 직업병 여부를 판정해달라며 조사를 의뢰했다. 김은아 산업안전관리공단 직업병연구센터 역학조사팀장은 “지난해 말 이뤄진 조사 결과를 토대로 역학조사 평가위원회에 보고를 했더니 보완조사 결정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1년 동안 계속되는 역학조사는 2009년 초에나 끝난다. 삼성전자 쪽에서는 “반도체 생산 과정에 백혈병 유발 물질로 알려진 벤젠 등 화학물질은 일절 사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1월31일 부랴부랴 보도 자료를 내 삼성전자ㆍ하이닉스 등 13개 반도체 제조업체에 대해 일제 근로자 건강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겨레/길윤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