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복 차림에 머리에 물고기 인형과 지구본을 쓴 두 여인이 휠체어에 앉아 있다. 창백한 얼굴의 이들은 팔과 다리에는 깁스를 하고, 링거 호스가 연결된 산소마스크를 얼굴에 쓰고 있다. 그러나 이 링거병에는 검은 기름이 채워져 있다. 중상을 당한 이들이 치료를 위해 링거를 맞고, 산소를 마셔봐야 몸에 들어가는 것은 검은 기름일 뿐. 이들은 검은 기름에 죽어가고 있다. 다 죽어가는 두 환자 뒤에는 검은 옷의 저승사자 복장을 한 6-7명의 사람들이 손에 긴 낫과 도끼를 들고 서있다. 저승사자의 가슴과 환자들이 맞고 있는 검은 링거병에는 삼성 로고가 선명히 찍혀 있다.
17일 정오 서울 명동 밀리오레 앞에서 진행된 이 퍼포먼스는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서해 기름유출로 고통 받고 있는 인간과 바다 속 물고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특히 이 고통을 제공한 것은 삼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퍼포먼스를 준비한 환경연합은 “삼성중공업이 서해 기름유출 사고의 가장 큰 책임자임에도 사과한마디 하지 않고 전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어 국민들에게 삼성의 책임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고 밝혔다.
또 환경연합은 삼성크레인 기름유출 사고 6대 의혹을 제기했다. ▲삼성크레인 예인선단이 풍랑주의보 속에서 항해를 강행한 이유 ▲대산해양청의 충돌위험 경고를 무시한 이유 ▲크레인과 예인선을 연결하는 강철 와이어가 끊긴 이유 ▲항해일지 조작 이유 ▲해경이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는 이유 ▲삼성의 사과거부와 수사 방해 및 침묵하는 이유 등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삼성이 일부러 강철 와이어를 절단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염형철 환경연합 처장은 “삼성크레인이 현대유조선과 자신들 사이에 예인선이 끼어 자신들의 배가 위험한 상황에 이를까봐 일부러 강철 와이어를 끊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염 처장은 자신은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삼성중공업의 크레인이 일부러 유조선을 들이 받았다는 음모론까지 확산되고 있다”며 “삼성이 하루 빨리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장에서는 사과를 거부하고 있는 삼성 그룹에 보내는 대형 엽서 쓰기도 진행됐다.
방제복을 입고 시민들을 만나고 있던 환경연합 시민기자 김희나 씨는 시민들에게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방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만나니 어떤지’, ‘서해 기름유출 사고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가해자가 누구인지 아는지’ 등을 물으며 기름유출 사고의 책임이 삼성에 있음을 알려 내고 있었다. 김희나 씨는 “언론에서 사건의 진실을 잘 알리지도 않고 다 끝난 것처럼 보도하고 있어 시민들이 잘 모를 줄 알았는데 자세히 알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민중의 소리/전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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