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이건희의 총기, 삼성의 오기

녹색세상 2008. 1. 17. 20:54
 

“앞으로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오지 말란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2008년 1월 14일, 충청남도 태안군청 광장에서 열린 고 이영권씨 장례식장을 울린 절규다. 애면글면 가꿔온 양식장이 기름 쓰레기장이 된 날벼락에 절망한 이 씨는 끝내 목숨을 끊었다. 장례위원장은 영결사에서 울분을 삭이며 고발했다.


“엄청난 사고를 낸 당사자들은 침묵하고 있고,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진정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열로 이 씨를 보낸 바로 다음날이다. 바지락 채취로 생계를 이어온 70대 어민이 다시 극약을 마셨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제2의 희생자다. 자원봉사자들이 정성을 다해 정상을 찾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아니다. 아직 지옥 같은 곳이 숱하다. 어민의 절망은 무장 깊어가고 있다. 제3의 희생자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영결식 14일 고 이영권 선생의 영결식을 찾은 피해주민들이 태안군청 앞 광장을 꽉 매운 모습.


절망과 슬픔에 잠긴 태안 어민들 자살 잇따라

 

그러나 보라. 장례식장을 수놓은 만장들이 삼성의 무책임을 성토했지만, 오늘 이 순간까지 삼성은 사과 한마디 없다. 왜 그럴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았을 법한 태안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검은 기름으로 범벅을 해놓고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 사장은 감탄과 개탄을 섞어 말했다.


“삼성의 침묵을 보면서 참 언론플레이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성으로선 사과를 할 때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사과를 하는 그 순간, 태안 앞바다를 기름으로 뒤덮은 게 바로 삼성이었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알게 되니까요.”


그렇다. 아직은 바다를 기름으로 오염시킨 게 삼성중공업의 배였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다. 왜 그럴까? 정박해있는 거대한 유조선으로 다가가 충돌한 배의 선주가 삼성중공업임을 대다수 신문과 방송이 알리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그곳에 삼성의 오기가 있다. 원유 1만2547㎘가 바다로 콸콸 흘러 태안반도의 수려한 해안선 167㎞를 모두 유린하고, 5159㏊의 양식어장을 파괴했음에도 삼성은 모르쇠다. 아직 사고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사고가 터진 직후에도 그 배가 삼성중공업 배임을 대다수 신문과 방송이 적시하지 않았다. 

 

   ▲ 이건희는 책임져라


사과하지 않는 삼성의 오기와 언론 통제


저 사과 한마디 없는 삼성의 오기는 자신들이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삼성은 지금 이 순간도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기사를 크게 부각해온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두 달 넘도록 광고를 주지 않는 오기를 보라.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으름장 아닌가. 삼성의 서슬 새파란 오기를 새삼 고발할 뜻은 없다. 김용철 변호사와 정의구현사제단의 열정으로 삼성 비자금에 특검이 진행 중이기에 더 그렇다.


문제의 핵심은 이건희 회장이다. 이 회장에게 곧장 묻는다. 태안 기름 바다로 이미 어민이 삼성을 원망하며 두 명이나 목숨을 끊었는데도 사과 한마디 없는 몰염치가 과연 이 회장의 뜻인가? 삼성 비자금 사건을 기사 비중에 걸맞게 편집해온 두 신문사에 광고 집행을 하지 않는 졸렬함이 과연 이 회장의 의지인가? 이건희 회장의 총기는 삼성 그룹 내부에 익히 알려졌다. 삼성을 세습한 뒤 이 회장은 특유의 총기로 삼성전자를 비롯해 그룹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삼성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게 사실이다.


광고로 언론통제하는 게 이건희 뜻인가?


하지만 명토박아 두거니와 양적으로 그럴 따름이다. 세계적 기업과 기업인이 되려면,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언죽번죽 ‘나눔의 경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비자금을 적극 활용해 당대에는 ‘존경받는 기업인’에 꼽힐 수도 있다. 다만 냉철하게 성찰해보라. 기업의 잘못을 보도하는 언론에 광고를 주지 않는 기업인, 어민이 자살로 항변하는 데도 모르쇠 하는 기업인을 역사가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자명하지 않은가. 이 회장에게 정녕 총기가 있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삼성의 오기를 다스리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서둘기 바란다. (오마이뉴스/손석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