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178cm 슈퍼모델이 주는 교훈

녹색세상 2008. 1. 18. 21:58
 

  크리스티가 나오는 캘빈 클라인 광고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이번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줄담배나 피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다음 세상에라도 우리가 만나게 되면, 그는 담배를 꺼내는 내 손을 움켜쥐고 이렇게 말하겠지. “당신이 바라보는 그 아름다움이란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루어 만든 조화에서 나오는 것이니, 지금 당장 입 안은 물론 영혼까지 쓰레기 소각장으로 만드는 그 유독 물질을 버리시지.”

 

 

  요가를 배우는 여성들이라면 크리스티 털링턴을 알 만하다. 그는 슈퍼모델 중에서는 일찌감치 요가에 눈뜬 사람이니까. 요가에 눈뜨면서 크리스티는 호흡을 익히게 됐고, 들숨과 날숨을 통해서 본성을 알게 됐다. 그렇게 알게 된 본성에서 아름다움이 저절로 나오게 될 때 몸도 건강해진다. 이렇게 해서 웰빙, 즉 우리끼리 표현으로는 참살이라는 게 생겨난다.


  어떤 점에서 크리스티 이야기는 싯다르타 이야기와 비슷하다. 열여섯 살 여름부터 뉴욕에서 모델 일을 시작해 ‘보그ㆍ엘르’ 등의 표지를 장식하며 10여 년 동안 최고 모델로 활동했던 한 여인이 어느 날 진정한 몸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줄거리. 평생 악착같이 돈만 벌면서 살아온 사람만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것이지, 흥청망청 돈을 쓰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죽는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 내가 가진 것보다 남들이 가진 게 먼저 보이는 젊은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가 구름 잡는 소리일 수밖에 없다. 크리스티의 키는 178센티미터다. 애당초 출발선이 다르다. 그의 말대로라면 외형과 내면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데, 그렇다면 단신의 뚱뚱한 육체는 그나마 남아 있을 내면의 아름다움을 갉아먹을 확률이 높지 않겠나?


  역시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애당초 사막 그 자체가 아름답게 보이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사태를 삐딱하게 바라보든 똑바로 바라보든 세월은 흘러간다. 크리스티도 이제 올해로 마흔이 됐다. 서른 살에 그가 한 일은 킬리만자로를 올라간 일이었다. 거기서 그는 “예수님, 나와 함께 걸어가소서. 산 위에서나 어디에서나”라는 내용의 스와힐리어 노래를 불렀다. 키가 178센티미터이든, 나이가 마흔이든, 이제는 캘빈 클라인 속옷을 입은 그녀보다 그렇게 스와힐리어 노래를 부르는 크리스티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마흔 살이란 스무 살이나 서른 살보다는 덜 좋고, 쉰 살이나 예순 살보다는 좋은 시절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178센티미터의 슈퍼모델보다는 형편없고 불행한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김연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