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오랜만에 걸어서 집으로 가는데 모 지역위원회 상근하는 동지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당원의 가족이 ××대병원 응급실에 있는데 딱한 사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그 분은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라고 하니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대한민국 땅에서 주민등록 없이 산다는 것은 외줄 타기나 마찬가지 아닌가?
▲병원비 걱정하지 않는 세상에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은 부자가 아니고는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최종 말소지 주소를 확인하고 일단 주민등록부터 살려 전입신고를 하고 난 후 복지담당공무원과 상의해 ‘긴급의료지원’ 문제를 풀자고 했다. 지원해 준대봤자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것만 되니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특진비 해결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시에서 서울대병원에 위탁 운영하는 시립보라매병원에 입원한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진료비 70만원 중 40만원이 특진비라 지원해 줄 법적인 근거가 없어 가난한 사람의 피눈물을 쥐어짜는 게 현실이다.
뇌혈관 쪽에 이상이 있다고 하니 각종 검사부터 해야 하는데 계산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민등록 말소된 분의 사정이야 물어볼 필요 없는 일이기에 ‘먼저검사하고 치료부터 해 달라’며 버티라고 했다. 환자 방치하는 게 보이면 바로 ‘112에 신고’도 하고. 명색이 복지 관련 상담을 한다며 이 말 말고는 달리해줄 게 없는 현실이니 말을 해 준 나도 갑갑하기 그지없다. 돈이야 원무과 소관이고, 의사 입으로 ‘진료 못하니 나가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 악으로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내가 말하고도 얼마나 황당한지 모르겠다.
이게 21세기 세계경제규모 12위 국가인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복지 체계다. 유학생 가족들까지 치료해 주는 독일이 고마워 귀국 후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는 어느 당원의 말은 너무나 먼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정말 이것은 국가가 아니다. 이런 엉터리는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 그래야 돈 걱정 없이 병원갈 수 있는 세상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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