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사르코지와 프랑스 학생들 정면충돌

녹색세상 2007. 12. 10. 17:03
 

우파의 평준화 철폐 맞서…고교생 합류, 시위 전국 확산


  지난 11월 초 철도파업과 같이 시작한 한 대학의 파업은, 다른 부문의 파업이 마무리된 시점에서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파리 전역뿐만 아니라 리옹, 마르세이유 등 전 지역에서 대학의 정문은 집기로 봉쇄되고 학생들은 가두로 나서고 있다. 이제 고교생들까지 이번 시위에 합류하여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수업거부가 이루어지고 있고 릴, 그르노블에서는 경찰과 대치하며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번 투쟁에서 대학생 및 교직원이 내거는 요구 사항은 임금인상이나 정년퇴직 문제와는 다르다. 사르코지 정부가 내건 ‘대학의 자치와 책임에 관한 법률’ 철회가 이들의 목표다.


  프랑스 대학교육 제도를 대표하는 가장 큰 특징은 철학을 중심으로 전인적 교육을 목표로 하는 바칼로레아라는 입시제도와 대학의 무료교육, 그리고 대학 간의 평등을 실현한 대학수준의 평준화일 것이며, 이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자랑으로도 여겨 왔다. 하지만 미국식 자유경쟁시장을 프랑스가 지향해야 할 모델로 삼고 있는 사르코지는 대학 또한 이 같은 방향성 아래서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르코지식 교육 개혁은 기존의 교육부에서 대학 및 고등연구기관을 분리시켜 고등교육부라는 부처를 따로 만들고 발레리 페크레스 장관을 임명한 일로부터 시작됐다.


  페크레스 장관은 모든 학생들이 방학 중이던 지난 8월, 프랑스 대학이 국제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안으로 '대학의 자치와 책임에 관한 법률', 즉 궁극적으로 입시제도의 변화, 대학의 경제적 자립, 그리고 대학 간의 경쟁을 골자로 하는 법률을 발표한다. 많은 대학 신입생들이 2학년으로 진학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칼로레아가 아닌 전공과에 맞는 좀 더 특성화된 입시제도로 바꿔서, 미리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선등록을 하고 거기서 요구하는 입시 즉 오렌테이션을 거쳐야한다는 것이 법률의 내용이다. 이는 실제로 자신의 전공 혹은 대학을 2개 정도 선택 한 후 나머지 하나를 결정하는 지금의 프랑스 대학생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이제 고등학교 교육과정 또한 전인교육의 과정이 아닌 입시준비 과정으로 변질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 파리 3대학 학생회의 파업 결정투표 장면


고개 드는 대학 민영화 정책


  그리고 이 법률은 앞으로 대학 또한 국제적 경쟁 시장에 대비하여 자체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관으로의 전환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즉 기부금 입학의 허용을 시작으로 이제 대학이 국립의 형태가 아닌 사립대학 형태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부분이 많은 대학생의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조항이며, 사르코지 정부와 학생 간의 차이를 가장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는 연간 대학생 1인에게 지급되는 7,000유로(950만원 수준) 및 그 외 대학 연구지원비를 대학이 점차적으로 자체 부담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국가에서 고등학생 1인에게 연간 투자되는 교육비 10,000유로인 만큼 오히려 국가는 대학에 대한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다. 게다가 많은 대학생이 학업을 중도 포기하거나 진급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학업 능력보다도 고교 졸업 후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프랑스 �은이들에게 무상교육일지라도 생업과 교육을 동시에 하기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학마저 유료화 한다면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학업의 질이 낮아지는 단순한 문제를 넘어, 지금 프랑스의 가장 큰 사회 문제인 즉 아랍 혹은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 2세대에게 교육의 평등한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들은 이미 게토화 된 지역, 도심 주변에 모여 살며 사회, 경제적 차별 속에서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는데, 대학의 유료화와 변별력을 강조하는 입시제도 안에서 이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는 더 줄어들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게토화 시키는 법률”


  법률이 반대에 부딪히는 또 다른 이유는 학생이 공부하고자 하는 주제를 지도할 수 있는 교수를 찾아 지방일지라도 진학하는 프랑스 대학의 평준화가, “68년 5월은 이미 끝났다”고 선언한 사르코지에 의해 이제 붕괴될 위기 때문이다. 파리1, 2, 3...혹은 리옹1, 2, 3...으로 통칭되는 프랑스 대학의 이름은 그 교육의 질 또한 평준화되었음을 상징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학이 대학 간의 경쟁으로 돌입된다면 몇 백년 전통을 가진 파리 중심가의 대학과 파리 교외의 신생 대학 혹은 지방 대학은 재정 자치 능력 등의 차이로 대학평준화는 사실상 붕괴될 것이다.


  이는 대학 또한 게토화 시키는 법률이 될 것이라는 게 학생들의 주장이며, 무엇보다도 이 모든 법안이 교육당사자 즉 학생, 연구자, 교수 혹은 대학 당국과 어떠한 민주적 절차도 통하지 않고 방학 때 발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학은 가게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다! 대학은 직업훈련소가 아닌 학문의 장이어야 한다!”라고 학생과 교수들은 주장한다. 이제 3주를 넘어서고 있는 대학의 파업과 학생들의 가두시위가 정부와 어떻게 협상될지는 예측이 어려운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 (레디앙/박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