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 하고 요점만 추리자.
이른바 ‘신정아-변양균’ 파문에 있어 본질은 신정아씨가 기업후원금 모금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했는지 여부다. 이 과정에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 여부도 역시 본질에 포함된다. 그런데 파문 초기부터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사생활 들추기’에 주력했던 한국의 많은 언론들. 아직 ‘정신’을 못차린 것 같다. ‘누드파문’까지 일으키며 한국 언론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지만 이를 교훈으로 삼기는커녕 여전히 이들의 시선은 ‘과거 그때’에 멈춰 서 있다. 고민이다. 이렇게 말귀를 알아듣지 못할 때 어떡해야 하는지.
4일자 조선일보에 학생을 체벌한 한 교사가 이런 얘길 했다고 한다. “(학생이) 교사의 지도에도 반성하는 기색 없이 태도가 불량하다.” 한마디로 말 듣지 않는 걸 체벌 이유로 내세운 셈이다. 그래서 그 학생. 머리에 골절상을 입고 병원신세를 졌다. 이 교사의 전철을 따를 수도 없고. 매체비평 하는 입장에서 고민이 많다. 3일 오전 서부지법 406호 법정에서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이 열렸다. 4일자 아침신문들 사회면에 이 소식이 ‘주르륵’ 실려 있다. 그런데 신문사들이 공동 편집회의를 한 모양이다. 너무 비슷하다.
경향신문 “변 전실장과 연인사이 맞아요”
동아일보 신정아씨 “변 전실장과 연인관계 맞다”
서울신문 신정아씨 “변양균과 연인사이”
세계일보 신정아 “변양균과 연인 사이 맞다”
조선일보 “변양균씨와 연인 맞나” 묻자 신정아씨 “네”
중앙일보 검사 “변양균 전 실장과 연인관계죠?” 신정아 “네”
한겨레 신정아 “변양균과 연인관계 맞다” 시인
한국일보 신정아씨 “변양균씨와 연인 맞다” 시인
제목만 얼핏 보면 이 기사가 사회부 기사인지 연예ㆍ오락 기사인지 구분이 안 간다. 그동안 연인사이를 부정해왔던 탤런트나 영화배우가 “네 사실은 우리 연인사이 맞아요”라며 시인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신정아-변양균’ 파문 초기부터 많은 신문들이 자신들이 ‘정론지’임을 표방하며 의혹을 파헤치는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신정아-변양균’ 파문에서 보여준 이들의 행태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많은 신문들의 모습과 가판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노랑신문’의 차이점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그러려니’ 잊고 살았는데 신문을 보면서 다시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중앙일보는 아예 ‘Q&A’ 방식을 택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충격! 본지 긴급입수’라는 제목을 달고 가판에서 판매하고 있는 타블로이드지가 가끔 쓰는 방식 아닌가. 국민일보 김아진 기자는 오늘4일 ‘기자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씨의 뒤늦은 ‘연인 고백’은 두 사람을 둘러싼 세간의 의혹을 뒤늦게 시인한 셈이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해서 고위 공직자가 그토록 무리하게 권력남용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했다.”
변 전 실장의 ‘권력남용’과 관련해선 단정하기엔 이른 측면도 있지만, 오늘자(4일) ‘신정아-변양균’ 기사 가운데 가장 나은 걸 고른 게 이 정도다. 그러고 보니 참 웃긴다. “연인 사이 맞아요”라는 데 초점을 맞춘 언론들이 정작 중요한 건 묻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연인 사이 여부를 확인하는 게 이들의 주목적이었다는 얘길까. 그래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미디어/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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