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코 앞에 두고 정치권의 본격적인 합종연횡, 즉 이해관계를 염두에 둔 짝짓기가 시작되었다. 이명박은 정몽준을 얻었고, 이회창은 심대평을 얻었다. 정몽준 의원과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통령후보는 3일 같은 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각자의 선택을 밝혔다. 보수진영의 양 후보가 세 불리기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는 가운데, 범여권 진영의 단일화 협상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양 진영의 행보를 놓고 보수 세력 분열이 고착화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3일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이명박 후봉 대한 지지선언을 한 후 손을 맞잡고 기뻐하고 있다.
정몽준 2002년엔 노무현, 2007년엔 이명박
정 의원은 기자회견에 앞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를 만난 뒤 이 후보 지지와 한나라당 입당을 결정했다. 울산 동구에서 5번 당선된 정 의원은 1992년 대선에서 아버지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선거 운동을 도왔다. 또한,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를 약속해 참여정부의 출범에 상당한 역할을 한 바 있으나 투표 전날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정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16대 대선에서의 혼선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의식하고 있는 저는 17대 대선을 보름여 앞둔 이 시점에서 결정을 내렸다. 무책임하게 중립지대에 안주할 수는 없다”며 지지 배경을 설명했다. 정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과의 단일화에 대한 소회도 상세히 밝혔다. “미국 민주당에는 케네디 가문, 공화당에는 록펠러 가문이 있어 양당 제도에 기여했다”며 “나도 우리나라 양당 제도 발전에 기여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의 이명박 지지 선언은 이 후보가 92년 정계에 들어오기 전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현대가와의 화해의 의미도 있다. 정 의원은 부친과 이 후보의 관계에 대해 “두 분이 서로 상대편의 능력을 잘 알고 서로 고마워하는 사이였다”고 회고했다.
▲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한 심대평 국중당 대표와 이회창 후보가 악수를 하고 있다.
심대평 양쪽과 협상....결국 창을 들었다
이명박과 이회창 양측과 단일화 협상을 진행해 온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는 결국 이회창 후보를 선택했다. 심 후보는 국민중심당 당사에서 이회창 후보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 후보로의 단일화를 선언했다. 이회창 후보는 “심대평 후보가 참으로 역사적인 결단, 어려운 결단을 내려주었다”고 감사를 표시했고, 심 후보는 “5번과 12번이 합쳐 17번이 된다면 17대 대통령이 될 것임이 확실하다”고 단일화에 숫자의 의미를 부여했다.
두 사람은 공동성명서에서 “말만 앞세우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좌파이상주의 세력도, 가진 자들을 우선하는 부패하고 부도덕한 과거지향주의 세력도 중차대한 국가적 대임을 수행하기 위한 선택 2007이 될 수 없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며 “대통령후보는 이회창으로 단일화하고 보수대통합의 중심에 심대평이 설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세력 파이 커졌으나 세력 분열 고착화 우려
정 의원과 심 후보의 선택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보수 세력의 파이가 합종연횡으로 커졌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명박 후보는 정 의원의 합류로 2002년 대선에서 정 의원을 지지했던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견인하는 데 힘을 보태게 됐다. 5년 전 반(反) 이회창 진영에 섰던 정 의원으로서도 당시에 비해 보수 색깔이 상대적으로 빠진 한나라당을 선택할 명분이 한층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이회창-심대평 단일화는 보수 세력 분열이 고착화되는 신호탄으로 해석될 소지가 많다.
이회창 후보는 이번 단일화에 대해 “역사적 안목으로 길게 보면서 다음 시대를 다시 열기 위해 합쳤다”며 “대선 후에도 뜻을 같이 하면서 이 나라 정치의 장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대선에서의 협력을 넘어서 내년 총선을 목표로 한 ‘이회창 신당’이 출범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독자생존과 ‘한나라당과의 합당’ 사이에서 고민하던 국민중심당으로서도 이회창이라는 ‘새로운 충청권 간판스타’의 영입을 통해 당의 활로를 찾았다고 볼 수 있다. 국민중심당과 한나라당의 통합 협상은 지분에 대한 시각 차이로 무산됐다고 한다. 전날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구멍가게 지분으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며 장사한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 심 대표를 비롯한 국민중심당 지도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후문이다. 대통령 선거 시기마다 벌어지는 야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오마이뉴스/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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