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중앙일보의 ‘왕의 남자들’과 신탁통치설

녹색세상 2007. 11. 28. 21:56
 

  중앙일보는 김용철 변호사가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제기한 중앙일보의 삼성 계열 위장 분리 주장에 대해 27일자 중앙일보 명의의 기사를 통해 전면 부인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은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찬” 것으로 중앙일보와 임직원의 명예와 자존심을 크게 훼손했다며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로서는 정말 억울한 일일 수 있다. 1999년 3월 2일자 사고를 통해 삼성 계열과의 분리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열 분리 절차도 밟았다. 공식적으로 이건희 회장의 지분은 보광그룹에 무상 증여되었고, 삼성 계열사의 주식은 홍석현 회장 등에게 매각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김 변호사의 ‘증언’을 일방적으로 왜곡된 거짓말이라고 일축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나 구체적이다. 그가 또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맡았던 역할과 신분에 비춰볼 때도 일방적으로 허튼 주장이라고만 매도할 수만도 없는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11월 삼성그룹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사진:오마이뉴스 남소연)


중앙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는 그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에 있던 때인 1999년 “김인주 사장의 지시로 주식명의신탁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가 삼성과의 분리 독립을 선언했던 바로 그때다.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은 아주 구체적이다. “주주 명의자는 홍석현 회장으로 하되 홍석현 회장은 의결권이 없으며 이건희 회장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자신이 직접 작성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 같은 주식명의 신탁계약서 작성에 대해 “김인주 사장에게 ‘공개하지도 않는 계약서를 왜 만드느냐’고 물어보자 김인주 사장은 그래도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말해 계약서를 1부만 만들어 삼성에서 보관했다”고도 했다. 이런 주장은 중앙일보가 27일 중앙일보 명의로 지면을 통해 밝힌 내용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김 변호사의 주장이 중앙일보사와 삼성간의 ‘공식적인 계열 분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의 주장은 이른바 공식적인 계열분리 이면에 ‘주식명의 신탁계약’이 별도로 있었다는 것이다. 재산 때문에 형제는 물론이요 부모자식 간에도 싸우는 게 인간사 아닌가?


  따라서 중앙일보 또한 공식적인 계열분리와 지분 정리만을 내세워 김 변호사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거짓이라고 매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실제 그런 ‘이면계약’이 있었던 것인지 여부를 먼저 가려내야 사실 관계를 확정할 수 있다. 중앙일보는 X파일 문제가 불거졌던 때의 ‘실수’를 다시 되풀이할 일만은 아니다. 언론으로서 중앙일보의 주장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는 삼성이 만든 것이다. 계열 분리하고, 분리 독립됐다지만 삼성과 중앙일보의 관계에 대해서는 김용철 변호사의 이번 주장이 아니더라도 깊숙이 연관돼 있다는 추정이 많았다.


홍석현 체제 이후 ‘중앙일보’에 포진한 ‘왕의 남자’들


  그 근거로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 하나가 경영진의 인적구조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중앙일보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94년 3월. 홍석현 회장은 한국개발원(KDI) 연구위원을 그만두고 중앙일보 대표이사 겸 발행인으로 취임했다. 홍석현 체제의 출범이었다. 그러나 홍석현 체제는 한편으론 본격적인 삼성 관리 체제의 등장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홍석현 사장의 취임과 함께 삼성맨들이 대거 중앙일보 경영진에 포진했다. 배종렬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이 중앙일보 부사장으로, 송용로 삼성전자 전무가 부사장급 경영위원으로, 그리고 삼성회장 비서실 홍보팀 송필호 팀장이 경영이사로 각각 부임했다.


  홍석현 사장이 취임하기는 했지만 중앙일보 경영은 사실상 삼성이 장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홍석현 대표-삼성맨 부사장 체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 배종렬ㆍ송용로 부사장은 중앙일보를 떠났지만, 송필호 이사는 상무ㆍ전무를 거쳐 중앙일보가 삼성에서 계열 분리한 뒤인 2000년 1월 부사장직에 올랐다. 홍석현 회장이 보광 탈세 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던 때였다. 한 달 후인 2002년 2월에는 대표이사 부사장이자 조인스닷컴 대표이사 사장으로 사실상 중앙일보사 경영을 총괄했다.


  송필호 대표이사 부사장은 2005년 2월 대표이사 사장 겸 인쇄인으로 중앙일보 최고 경영자에 올랐다. 홍석현 회장이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대망을 품고 주미대사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안기부 X파일로 대망의 꿈을 접어야 했던 홍석현 주미대사는 2006년 12월 회장으로 중앙일보에 다시 복귀했다. 2007년 1월 송필호 대표이사 사장은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인쇄인은 물론 발행인의 자리까지 차지했다. 명실상부하게 경영과 편집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 것.


  홍석현 회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대리한 ‘왕의 남자들인 삼성맨’들과의 팽팽한 균형은 중앙일보에서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세월이 흐른 만큼 송필호 대표이사 발행인은 이제는 삼성맨이 아니라 중앙맨이 됐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중앙일보 안팎의 시각은 그가 여전히 왕의 남자로 ‘삼성맨’이라는 데 더 많은 방점을 찍고 있다.


99년 사내에서 ‘삼성 신탁통치설’ 제기


  뿐만 아니다. 중앙일보와 삼성과의 관계가 실질적으로 분리 독립됐다고 보기 어려운 사례는 여럿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홍석현 회장이 보광 탈세 사건으로 구속돼 있던 1999년 10월 중앙일보 내에서 터져 나온 이른바 ‘삼성 중앙일보 신탁통치설’이다. 중앙일보 노동조합은 1999년 10월 11일 특보를 통해 “중앙일보의 경영권을 다시 삼성이 가져가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삼성의 중앙일보 ‘신탁통치설’이 사내외에서 확산되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보는 그 구체적인 정황증거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지난 6일 이제훈 부사장, 금창태 고문 등 중앙일보 고위 간부들을 삼성 본관으로 불러 사장을 비롯한 중앙일보 임원들의 구체적인 인선안을 통보했다”며 이 자리에 참석한 고위 관계자가 부랴부랴 사전 약속된 타 언론사 관계자들과의 회동을 취소한 구체적인 ‘증언’까지 소개했다. 노조 비대위는 또 “삼성이 홍 사장 소유 지분을 회수해 공익재단에 출연하는 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편집국 부장단도 그 어떤 소유구조의 변경이나 경영권 침탈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중앙일보사는 그 직후인 10월 26일 임시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열고, 홍석현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했다. 대신 금창태 중앙일보 상임고문을 발행인 대표이사 사장 겸 인쇄인으로 선임했다. 중앙일보사의 이런 임원 인사가 당시 이건희 회장의 뜻대로 됐는지는 의문이다. 중앙일보 노동조합과 부장단 등 전사적인 강력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전사적으로 삼성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든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는 이건희 회장의 구상에 홍석현 사장이 강력하게 ‘저항’한 흔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나중에 안기부 X파일을 통해 밝혀졌지만 홍석현 회장으로서는 97년 대선 때 삼성의 정치자금과 뇌물 심부름 등으로 보광 세무조사를 받고 감옥까지 가 있는 상황에서 다시 중앙일보 지분을 ‘회수’하겠다는 데 ‘분노’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 상황은 김용철 변호사의 중앙일보의 삼성 위장 분리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정황 증거일 수 있다.


  실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중앙일보 임원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는 증거이자, 홍 사장 소유 지분의 상당 부분을 이 회장 뜻에 따라 처분할 수 있었다는 방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처남 매부 관계라 해도 정상적으로 거래된 주식 지분이라면 중앙일보 노조가 제기했던 것처럼 상대방의 지분을 일방적으로 ‘회수’한다는 발상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중앙일보가 자신의 삼성위장 분리 주장을 전면 부인하자 27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관계에 대해 “처남 매부지간이지만 대선 자금으로 갖다주라는 30억 원을 홍석현씨가 가운데서 착복한 일도 있었다, 그 정도로 둘 사이가 신뢰가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며 이면계약서 작성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삼성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중앙일보


  중앙일보가 삼성으로부터 진정 분리ㆍ독립한 것인지 의심할만한 징후는 그밖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지면’이 그 대표적인 방증일 수 있다. 이재용 삼성 전무의 편법 승계 논란은 물론 안기부 X파일 등 삼성과 관련된 중앙일보의 보도태도는 공식적인 분리ㆍ독립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것은 삼성과 중앙일보의 회장들이 처남-매부지간이라는 관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 많다. 중앙일보는 그런 점에서라도 김용철 변호사의 중앙일보ㆍ삼성 위장 분리 주장을 허튼소리로 일축할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언론으로서 중앙일보는, 언론인으로서 중앙일보 기자들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혹은 삼성그룹간의 지분 정리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삼성은, 혹은 이건희 회장은 중앙일보를 진짜 홍석현 회장에게 넘긴 것인가? 결코 쉽게 예단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한때는 중앙일보 노동조합과 부장단들까지 의문을 제기했던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