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미국형, 권영길=북구형
정동영과 문국현=완성 안 된 공약
대선의제 기획-사회복지 이회창 ‘없음’
사회복지부문 연구자 입장에서 이번 대선은 재미가 없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의 토론기피증 때문에 여러 정책 분야에 대한 공개적인 정책경쟁과 논리적인 검증은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모든 정치집단이 선거에서만큼은 ‘서민의 친구’임을 주장하는 만큼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좋은 말들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그러니만큼 사회복지 분야 공약에 대해서는 각자의 칼과 방패를 충분히 휘둘러보이도록 한 후 판단할 필요가 있다. 여하튼 지지율 1위 주자가 진검승부가 싫다고 하니 아쉬운 대로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들을 중심으로 대선주자들의 복지 분야 공약들에 대해 분석을 해볼 수 밖에. 공약에서 보고자 하는 바는 첫째, 복지부문 공약이 담고 있는 시대정신, 즉 지향하는 사회모델 둘째, 공약들이 실행될 경우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질 것인지에 대한 전망 셋째, 신뢰성, 특히 공약 실현을 위해 적절한 수단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이다.
구시대적이고 재정계획 없는 이명박 후보의 복지공약
우선, 이명박 후보의 공약을 살펴보자. 이 후보의 복지 지향을 살펴보면, 신자유주의 시대 보수정당들이 내걸고 있는 정책 방향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개인책임을 우선시하며 자립을 지원하되 국가의 직접적인 보장은 빈곤층과 아동 등에 대해 선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아동, 노인복지 등의 분야에서 전체적인 서비스 양은 늘리되 공공부문의 직접적인 서비스 확대는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일례로 의료분야에서는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 강화, 영유아에 대한 의료보험 본인부담금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의료부문에 대한 공공의 규제를 의미하는 진료수가 총액예산제나 포괄수가제, 건강보험재정의 국고지원 확대, 전 국민 주치의제도, 공공의료기관 확충에는 모두 부정적이다. 그리고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지향하고 소위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의료급여의 본인 부담제 유지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저소득층 지원 면에서는 여러 정책이 다른 대선주자들과 유사하지만 ‘선 성장 후 분배’라는 기조 하에 직접적인 소득지원보다는 성장을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은 특징적이다. 그러나 과연 빈곤층에게 ‘좋은’ 일자리가 얼마나 돌아갈지는 의문스러우며, ‘일하는 빈곤층’의 문제가 점점 심화되는 가운데 일자리, 자립지원만으로 빈곤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것은 꽤 구시대적이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후보의 복지공약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른 모든 후보들이 주장하듯이 산전후 휴가 및 육아휴직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하고 영유아 보육비 지원(보편적 아동수당)을 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다만 공공보육시설에 맡기기 위한 대기 기간은 더 길어질 듯하며, 사교육비용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이 후보는 지난 10월 2일 노인복지센터를 방문해서 비록 재정이 많이 들겠지만 임기 중 전체 노인에게 월 30만원까지로 기초연금을 상향시키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후 홈페이지에서 이 부분 발언은 삭제되어 올라가는 헤프닝이 벌어졌지만 말이다. 노인들을 만나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켜서 기초연금을 모든 노인에게 30만원까지 올려 줄지는 일단 오래살고 볼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초연금, 보편적인 아동수당, 중증질환에 대한 상병수당 등의 도입을 약속하는 정당치고 복지재정 계획은 한 마디로 한심하다는 점이다. 국가예산을 10%절감해서 20조를 마련한다는 것이 전부이다. 가능한 결말은 이 후보 진영의 복지정책 기조가 책임성 확보를 위한 공적 비용투자 없는 시장위주의 복지서비스 팽창이 되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의 복지공약, 신뢰하기 어렵다.
영육아 복지 외에는 제대로 된 것 찾기 어려운 정동영 후보
정동영 후보의 복지공약은 참여정부의 복지정책 기조를 유지하되, 어떤 부분은 이명박 후보 진영의 정책과 유사하다. 저소득층, 장애인, 여성, 노인 등 전 분야에 걸쳐 일자리를 복지의 중심에 놓고 있다는 것, 공공 노인요양시설이나 공공 의료시설 확충에 대해 부정적이고 서비스 시장을 육성하여 복지수요 증가에 대응하고자 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다만 ‘사회투자’라는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를 명시한다는 것과 임신, 출산, 육아와 관련하여 이 후보 진영보다는 훨씬 더 종합적인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차별적이다.
양육을 ‘사회투자적’이라고 인정하여서인지 영유아 복지와 일자리 복지 외에는 의미 있는 공약을 찾아보기 어렵다. 결정적인 것은 창출되는 일자리의 질에 관한 고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즉 정후보의 공약에 따르면 출산 전후 몇 년간 괜찮은 복지국가에서 살겠지만, 노인, 장애인, 여성, 비정규직으로서의 삶은 여전히 녹녹치 않다. 한편 제시하는 국가복지 비전이나 재정수단을 볼 때 조세부담률과 사회보장부담률 인상을 내걸고 있어 이 후보 진영보다는 현실적이다.
내용도 없고 기조도 없는 문국현 후보
이제 문국현 후보의 공약을 보자. 사실 기대가 있었다. 출발은 뒤늦었지만 무언가 참신한 내용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문 후보의 복지공약은 한 마디로 내용이 없다.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 평생 교육을 내건 노동복지 분야와 문 후보 개인적 관심이 투영된 장애인복지 분야 외에는 그다지 주목할 만한 비전과 프로그램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 경우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 답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지배적인 담론이나 이미지에 휩쓸려 답을 내오기 쉽다. 위험하다.
사실 문 후보 진영은 부양의무자 기준 축소, 보편적 기초노령연금 및 장애연금 지급, 전 국민 주치의 제도, 공공의료기관 확대 등 소위 개혁 이슈에 대부분에 찬성의사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국민연금 기금운용 개편안에도 찬성한다. 도대체 각각의 정책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입장을 형성하였는지 정책기조가 모호하다. 구체적인 내용과 전략이 없이 입장들이 나열되어 있어 현실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변화할지 오리무중이다.
재정수단에 대한 언급은 신뢰성을 더욱 떨어뜨린다. 재정조달 전략은 이명박 후보의 그것과 유사한데 건설자본의 부패를 척결하여 공공부문 예산 25조를 절감한다는 것이다. 예산거품 제거는 필요하지만, 25조를 절감할 수 있을지, 복지국가 발전을 25조 절감액으로 이룰 수 있을지 의아하다. 실행을 약속한 프로그램의 소요액을 대강이라도 추정해보길 바란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권영길 후보
마지막으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공약을 보자. 권 후보의 복지공약은 GDP 대비 20%까지 복지수준을 높이는 것으로서 재정수준은 북유럽모델에 미치지 못하지만 프로그램 구성은 그와 유사하다. 보건의료, 보육, 주거, 교육 등을 사회적으로 공급하고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노인 장기요양시설, 보육시설, 의료기관 등 사회서비스 제공기관 상당수가 공적으로 통제되는 모델로서, 시-군-구마다 공공사회서비스 센터를 설립하여 통합적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민간 부문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도록 하는 방안은 다른 진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돋보이는 부분이다.
권후보의 공약이 실현될 경우, 조세부담과 사회보험료 부담은 꽤 무거워지되 의료비, 주거비, 보육비는 확실히 절감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확보 전략으로 민주노동당은 사회복지세와 부유세 도입, 비과세 감면 정비, 세원 투명성 제고 등을 내걸고 있다. 정동영 후보의 세원확보 전략에 비해 야심차다. 다만 북유럽 복지예산의 1/3~2/3로 보편적 사회서비스에 더해 공적 소득보장도 동시에 발전시키는 것은 무리수가 아닐까 싶다.
국공립 보육시설의 대폭적인 확대와 보편적 아동수당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요약하면 이명박 후보와 권영길 후보의 복지공약이 그나마 체계를 갖추고 있다. 물론, 전자는 미국형 민간주도 복지모형으로, 후자는 북유럽형의 공공주도 복지모형으로 지향하는 바는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의 복지공약은 사실상 미완의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지지율 2위를 달리고 있는 유력주자인 이회창 후보의 복지공약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선거가 책임 있는 정책정당들이 차별화된 전망을 가지고 치열한 정책경쟁을 펼치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요구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면, 부지런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발표하고, 자꾸 뒤로 숨는 후보는 앞으로 나올 일이다. (레디앙/주은선,대구대 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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