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신정아 사건, 어디로 가고 있나?

녹색세상 2007. 9. 24. 00:02
 

학벌사회 공고화를 바라는 집단의 담합이 방향 잡아

 

 ▲조사 받으러 검찰에 출두하고 있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대통령선거 국면이니 시간이 좀 지나면 곧 덮이고 잠잠해지리라 생각했던 신정아ㆍ변양균 사건이 두 달이 지나도록 식을 줄 모르고 연일 언론지면을 뒤덮고 세간의 주요 관심사에 올라 있다. 오히려 연말에 있는 대선국면을 압도하여 흔적을 실종시켜 지워 버리고 있다. 석박사 과정을 마쳐 학위를 취득한 김옥랑씨의 경우 학부 과정에 대한 문제로 잠시 소란하더니 지금은 완전히 묻혀 버렸다. 윤석화를 비롯한 유명 연예인들의 학력 위조 고백도 연일 뭇매를 맞더니 잠잠해진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의 성격도 변했다. 처음에는 주요 이슈가 학력위조와 관련한 것이었는데 추문으로 번지다가 최근에는 권력형 비리와 공금횡령 사건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도 뜨겁다. 한나라당에서는 현 정권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핵심 정치 이슈로 보고 정치적 공세의 고삐를 조이며 검찰에서의 조사가 미진할 경우 국회 특검을 발동시키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언뜻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나는 몇 년 전 미국의 초등학교에 있었던 일인데 해외 토픽으로 소개되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학교 초등학교 여교사가 자기가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너희들 머리맡에 놓여 있는 선물들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갖다 놓은 것이 아니라 너희들 부모님이 몰래 갖다 놓은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교사의 이 발언이 문제가 되어 학교의 이사회와 학부모회는 이 교사를 파면 처분했다. 이유인즉 아이들의 꿈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파나마의 전 대통령이었던 ‘노리에가’에 관한 것이다. 그는 집권 초기에는 친미적인 정책으로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뒤에 미국과 대립하게 됐고 미국은 파나마를 침공하여 그를 체포했다. 미국은 그를 마약 사범으로 미국 법정에 세웠고 그는 장기형을 선고받고 미국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의 사진은 여느 흉악범처럼 험상궂은 얼굴에 목에 죄수번호판을 단 채 매스컴에 올랐다.


학력위주 사회 병폐에 대한 문제는 어디로 가고

 

  처음 신정아 사건이 터졌을 때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 학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학벌풍토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론 곳곳에서도 이런 우리 사회의 풍토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 많이 올라왔다. 그래서 개인보다는 사회적 의식과 구조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이 돌아갔다. 또한 많은 유명 인사들의 학력 허위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와 같은 일이 도덕성에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병폐임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점점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의 잘못된 학력 중시 풍토에서 비롯되었다면 당연히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학력이 없더라도 일정한 경력과 능력이 인정되면 그에 상당한 직책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 구축에 대한 논의나 정부의 방침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해결은 완전히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철저한 학력 검증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이 입안되고 각계에서는 학력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거짓말이 불필요한 사회를 만들기 보다는 거짓말을 필요로 하는 사회에서 거짓말을 못하게 강제로 막고 이를 어기는 자는 엄벌에 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사실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학력을 속이는 게 가능한 점이 학력 차별에 대한 일정한 완충작용의 의미도 있었다. 누가 어느 학교를 나왔다고 했을 때 ‘뭐 알 수가 있나, 확실히 믿을 수가 있나’하는 말이 통용됨으로 해서 학력의 위력과 권위가 그 만큼 삭감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철저한 학력 검증시스템이 구축되면 다르다. 이제 학력은 모두 진짜이기 때문에 학벌은 당연히 과거 보다 더할 수 없이 위력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 신정아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분개한 사람이 누구였을까? 일차적으로 예일대 출신이 아닐까 한다. 그들은 아마 그들로 하여금 예일대를 나오는 게 가능하게끔 만들었던  그들의 능력, 재력, 노력 모두를 한꺼번에 도둑맞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개한 사람은 그들뿐만 아니다. 외국에서의 다른 학위나 국내 명문 학교 학위 소지자로서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니라 그들의 부모가 준 것이라는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교사를 파면시킨 재단과 학부모들이 크리스마스 아침 아이들이 선물을 발견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져 좋아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재미있어할 수 있는 ‘어른들의 꿈’을 빼앗아 버린 것에 대해 분개한 것을 엉뚱하게도 ‘아이들의 꿈’을 빼앗아가 버린 것으로 위장한 것처럼 한국의 학벌 사회는 신정아가 기득권을 침해한데 대한 분개를 그의 부도덕함에 대한 분노와 응징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응징한 그들 자신들도 ‘아이들의 꿈’을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라고, 신정아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신정아는 학력 허위 기재와 함께 변양균과 같은 정권 실세에게 접근한 권력형 비리와 공금횡령으로 법정에 서게 될 것 같다. 애초에 제기되었든 학벌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실종되고 오히려 이를 보다 공고히 한 채 중심 내용 전혀 다른 방향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적 이유로 시작된 세무조사도 세금 포탈 사실이 드러나면 애초의 정치적 쟁점을 유지하기 힘든 것처럼 이 사건 역시  권력형 비리와 공금횡령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이를 무시하고 처음의 문제의식을 유지하기 힘든 상태가 되고 말았다. 세금 포탈이나 권력형 비리, 공금 횡령 등이 악질 범죄인데 자칫하면 이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리에가가 마약 사범으로 미국의 법정에 서게 됨으로써 미국의 중남미 국가에 대한 침략적 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은 희석되고 범법자로서의 노리에가 개인의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이번 사건 역시 이를 가져온 사회적 배경은 밝혀지다 말고 이의 해결책은 실종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 신정아 사건은 의도적이건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행해졌건 학벌 사회의 공고화를 바라는 기득권층의 암묵적인 담합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권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에 좋은 정치적 공세거리를 제공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주요하게 내세운 권력형 비리 역시 제대로 밝혀낸다고 기대하기도 힘들다. 짐작하건대 그들의 정치적 공세에 필요한 방식으로 밖에 파헤쳐 지지 못할 것이다. 그들 역시 그런 비리로부터 썩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발표를 보면 ‘신정아와 관계 유지’를 위해 변양균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는 공직자로서 명백한 ‘직권남용’임에 분명하다. ‘로맨틱한 변양균’을 유혹한 ‘문란한 신정아’가 아니라 변양균이 알아서 한 정황을 포착했으니 그 동안 언론에 나온 것을 정정할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 놓고 다시 살릴 수는 없는 일인데.... (안헌수/오마이뉴스 인용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