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신정아의 가계(家系)가 그리도 중요한가?

녹색세상 2007. 9. 29. 17:27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력한 후보였던 박근혜는 비록 탈락하긴 했지만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이미지를 남겼다. 특히 경선결과에 승복한 것은 이제까지의 많은 후보들이 불복했던 나쁜 선례를 불식하는 호평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경선과정에서 그에게 따라다닌 수식어 중의 하나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것은 경기가 끝난 지금도 지울 수 없는 원죄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박근혜의 성가에 좀이 되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들춰봐야 군사독재정권의 졸개들이 득실거리는 한나라당에서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여성이 신정아다. 긍정적인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박근혜에 비해서 신정아는 ‘로맨티스트인 변양균을 유혹한 문란한 꽃뱀’으로 힘 있는 남자들에게 자기 몸을 마구 굴린 문란한 여자로 묘사했다. 놀아난 게 사실이라면 같이 평가를 해야지 여성에게만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명백한 성차별임에 분명하다.


 

 

 

  신정아는 세계일류 대학으로 소문난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이력서를 제출하여 동국대 교수로 임명되었다. 게다가 광주 비엔날레 예술 감독으로 선임되어 35세의 젊은 나이에 그 능력과 명예가 큰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로 학력이 위조되었다는 소문이 불교계의 갈등으로 장윤이란 승려가 한 마디 던지면서 떠돌기 시작했고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전형적인 종교정치꾼 승려의 입에서 나왔으니 불교계 내부 갈등이 시발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신정아 학력위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위조사실도 들통나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학력검증 열풍에 휩싸였다. 당대의 유명한 교수들과 연예인ㆍ영화감독ㆍ만화가들이 다니지도 않은 대학을 다녔다고 알려졌는데 거짓으로 밝혀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된다. 24만에 이르는 공직자의 학력도 검증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공직자들의 학력 위조에 대해서는 끝까지 확인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반드시 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살면서 학력 위조까지 했다면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애초에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긴 하지만 시류에 민감한 사회적 반응이다. 학력문제는 오래 전 부터 불거져 망신당하는 이들이 흔했다. 과거에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등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학력을 높이기 위해서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각 대학의 특수대학원에 다녔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일류대학의 동문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다닌 특수대학원은 대학이 돈벌이로 하는 사교장으로 학문과는 전혀 별개로 그 학교 졸업생이 될 수 없다. 중앙선관위에서는 이러한 대학원 수료를 학력에 기재하는 것을 금지하여 터무니없는 학력 부풀리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당선자 중에 학력기재를 엉터리로 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직책을 박탈당하는 일이 있다.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한 사람이 다니지 않은 학교를 다녔다고 거짓말 한 것이 죄가 되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학력위조로 대학교수가 되었다면 정말 큰일이다. 연예인들이야 도덕적으로 욕은 먹을 수 있지만 학력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별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나오지도 않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고 받지도 않은 학위를 받았다는 것으로 교수직에 올랐다면 그것은 사기가 분명하다. 자기도 잘 모르는 학문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는가. 문제는 대학 당국이 당연히 거쳐야 할 학력검증 절차를 생략하고 마구잡이로 강행한데 있다. 명색이 대학교수가 되려면 ‘하늘 별 따기’라는 말도 있는데 신정아는 아예 학력과 경력을 인정받아 특채되면서 학력조회도 생략한 것이다.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면 문제가 발생하는 게 당연하다.


  이제 그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려 잠시미국으로 갔다가 돌아와 수사를 받고 있지만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를 자꾸 미루고 있는 것은 큰 사건이 아니란 증거다. 그를 에워싸고 권력 비호설이 난무한데 학력비리를 맨 처음 폭로한 동국대 전이사 장윤 승려는 청와대 변양균 정책실장과 만난 사실과 그 이후 신정아에 대한 평가를 바꿨다는 광주 비엔날레 한갑수 이사장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몸을 숨긴 채 나타나지 않고 있어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할 수도자로서 너무 비겁한 짓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서도 비리의 한 복판에 젊은 여성이 서있다면 온갖 신원파악에 열을 올릴 텐데 이상하게도 불륜으로만 몰아가고 있다. 미국 켄자즈대와 예일대를 나오지 않았다면 국내에서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 정도는 캘 텐데 이 부분만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김옥랑과 윤석화ㆍ최수종 등은 모두 출신고교 등이 드러났는데 신정아는 그것도 없을뿐더러 실제 유학여부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은 ‘알몸사진’까지 실을 정도로 용감무쌍한 기자들의 직무유기라고 우기고 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반드시 터져 나오는 가계(家系)가 연일 터지기 마련인데 언론이 이를 외면하는 것은 이색적이라고 주장하는 얼빠진 인간들이 있다. 젊은 여성이 학력은 거짓이지만 능력은 출중한 것으로 인정받고 권력의 비호를 받는다면 그의 배후에는 뭔가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 후보마다 숨겨놓은 딸 얘기가 나오곤 했는데 장윤이 ‘유력 대선후보 중의 한 사람이 배후’라고 했다가 이해찬 후보가 나서서 해명하면서 장윤은 바로 잠수하고 말았다. 과연 이래도 신정아가 누군가의 숨겨 놓은 딸이라는 주인공인가? 주인공이라면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권력과 지위를 남용해 저지른 짓이 있다면 알리는 게 언론이 할 일이기 때문이다.


  신정아가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그에 대한 처벌만 받으면 된다. 그러나 당사자의 사생활은 엄밀히 보호해야 한다. ‘카더라’식의 폭로는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5년 사이에 발행 부수가 반 토막이 나 영향력이 급격히 떨어져 장사가 안 되는 종이신문의 최후 발악이 측은하기 그지없다. (네이버 전대열 글 인용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