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과 인권

승려와 언론의 신정아 벗기기 경쟁

녹색세상 2007. 9. 16. 01:58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건가요?”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35)는 억울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당했다. 신씨는 “매사추세츠공대(MIT) 입학처장이 28년 동안 학력을 속이다 들통났는데 뉴욕 타임스에 몇 줄 나고 끝났다고 들었다. 가짜라고 판명되면 쫓겨나는 것으로 끝인데 한국에서는 나와 아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예일대 박사 학위 논문이 표절이었다는 것 이외에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이렇게 피해 다니는 내가 용서가 안 된다. 기자들이 내가 서울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함부로 기사를 쓰고 있다. 서울에 가면 반드시 문제 삼겠다.”

 

 


  신정아씨 파문을 정치권에서는 ‘정권 실세의 부도덕과 무너진 청와대의 자정 시스템’이라고 규정했다. 학계에서는 ‘썩어빠진 학벌 공화국에 대한 일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신씨 파문은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굴러갔다. 언론은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데 매달렸다. 검찰도 신이 나서 마구 내달렸다. 연애편지, 선물, 누드 사진…. 문화일보에 보도된 여자의 벗은 몸 사진은 이 사회 집단 관음증의 정점이었다. 연애편지 한 통만 공개된다면 관음증 종합선물세트라 부를 법하다.


  사실 지금의 신씨를 만든 것도 8할이 언론의 공이었다. 1997년 말 금호미술관에 영어 통역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된 스물다섯 살 신정아. 신씨는 이듬해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로 정식 채용된다. 병아리에 불과한 신씨에게 조선·중앙·동아를 비롯한 중앙 일간지들은 문화 칼럼을 내주었다. 조선일보에서 신씨는 전시를 소개하는 필진이었고, 동아일보에서는 지난 6월까지도 칼럼을 썼다.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중앙미술대전에서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국민일보와 동아일보는 신씨가 예일 대학에서 서양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2000년 7월 언론에 얼굴을 처음 내민 신씨는 불과 2년 만에 미술계의 샛별이 되었다.


  신씨는 기자들을 관리하는 데 엄청난 공을 들였다. 현직 미술 담당기자는 물론 다른 부서 기자들에게도 신씨는 정성을 다했다. 금호미술관에 근무할 때 신씨는 지방 출신 기자들의 귀성 비행기표를 마련해주곤 했다. 이후 신씨는 명절 때마다 비행기표를 선물로 보냈다. 한 기자는 책으로 보답했다고 한다. 신씨는 “기자들에게 잘한 것은 부모님께서 베풀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추석 때마다 신씨 어머니는 고향인 경북 청송에서 사과 40상자를 기자들 몫으로 올려 보냈다. 주부 기자들에게는 참기름과 고사리 등 맞춤선물을 따로 챙겼다.


  하지만 10년 동안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기자들이 최근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며 신씨는 “기자들이 악마 같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기자들이 치근덕대는 바람에 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기자간담회가 끝나면 남자 기자들이랑 가라오케에 가는데, 블루스를 추자고 해놓고 더듬는 기자들이 굉장히 많았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 울고불고 했다. 나중에는 대처하는 법이 생겨 ‘내가 얼마나 비싼 몸인 줄 아느냐’며 피해갔다.”


신씨 “문화일보에 법적 대응하겠다”


 신씨는 기자들과 함께 미술계 원로들을 극진히 모셨다. 원로들의 전시회나 생일 때면 꽃과 고가의 선물을 챙겼다. 특히 식사 대접을 잘했다고 한다. 신씨의 후견인 역할을 한 사람은 동국대 출신 원로 사진작가 황 아무개씨(69)다. 신씨는 “문화일보에 보도된 누드사진은 100% 합성이다. 다만 황선생님이 지난해 전시회에서 백인 여자의 몸에 내 얼굴 사진을 붙여 화를 내고 뗀 적은 있다. 문화일보에 관해서는 법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69)도 신씨의 든든한 우군이다. 이 명예교수는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 후보로 신씨를 추천했다. 2003년 신씨는 <월간미술>이 제정한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대상을 타, 상금으로 1천만원을 받았다. 월간미술대상은 이 명예교수의 출연금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신정아씨는 “성곡미술관 이사장 김석원 회장이 구속됐을 때 미술계 인사들에게 탄원서를 받았다. 그런데 이 교수님이 지방에서 올라오자마자 사인해줘 고마움을 갖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2002년 성곡미술관 큐레이터로 자리를 옮긴다. 언론과 원로들의 지지를 업고 있던 신씨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58)과 가까워지면서 날개를 단다. 신씨는 “성곡미술관으로 직장을 옮기고 얼마 후 변 실장을 예일대학 동창회에서 처음 만났다. 예일대 총동창회장인 박성용 금호 회장님과 같이 만나 서너 차례 밥을 먹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신씨와 변 전 실장은 러브레터를 이메일로 주고받으며, 서로 그림을 그려주는 사이였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이였을 뿐 불륜 관계면 그렇게 오랫동안 변 실장님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림을 봐달라고 해서 본 적은 있지만 대학 졸업 후 그림을 그린 적은 한 번도 없다”라고 말했다.


  변 전 실장과 교제 이후에 신씨는 자금을 모으는 데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신씨의 전시에 가장 많은 후원금을 낸 기업은 대우건설과 산업은행. 두 기업의 수장 박세흠 전 대우건설 사장(현 주공 사장)과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변 전 실장의 부산고 21회 동기다. 신씨가 성곡미술관에서 후원금 10억원가량을 유치한 점, 정부 부처의 미술품 구입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 등은 변 전 실장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던 신씨는 변 전 실장을 배경으로 영역을 넓혀간다. 서른세 살 신씨는 2005년 9월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조교수로 특별 채용됐다. 동국대는 동양미술사만을 가르치는 학교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신씨를 임용하자 반발이 컸다. 지난 9월12일 검찰은 “2005년 변 전 실장이 홍기삼 전 총장에게 예일 대학을 나온 유능한 후배라며 신정아씨를 추천했다”라고 밝혔다. 당시 동국대는 개교 1백 주년을 앞두고 발전기금을 모으는 데 관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신정아 씨는 “서울대·중앙대·동국대 3개 학교에서 교수 제의가 있었다.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겸임을 허락해 동국대를 선택한 것이다. 동국대에 들어갈 때 영배 스님이 재단 이사장이 아니었고 인사드린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동국대학교 재단이사장 영배 스님은 “홍기삼 총장이 올려서 결재해준 것뿐이다. 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전했다.


불교계 갈등, 신정아 파문 촉발


  2007년 2월 신씨의 학력 위조 의혹이 일었다. 하지만 지난 7월 파문을 딛고 신씨는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정된다. 롤러코스터 상승이다. 여기서 신정아 파문은 폭발하고 만다. 변 전 실장이 서둘러 나섰지만 진화는 역부족이었다. 도화선은 동국대 전 이사 장윤 스님의 폭로였다. 배경에는 조계종 내부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총무원을 장악한 여당과 동국대·불교방송을 장악한 야당이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다. 2004년 장윤 스님은 필동 중앙대 병원 인수과정 문제를 검찰에 제기하며 동국대 재단 영배·영담 스님을 압박했다. 이를 문제삼아 동국대 이사회는 지난 5월 장윤 스님을 이사직에서 해임했다. 그러자 장윤 스님은 지난 2월부터 제기한 신씨의 가짜 학위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동국대 이사진을 압박할 호재로 생각한 것이다.


  처음에는 장윤 승려의 주장이 별 주목을 끌지 못했다. 배후에 변 전 실장 이름이 나돌 때도 시큰둥했다. 하지만 신씨와 변 전 실장 뒤에 몸통, 즉 유력한 대권 주자 또는 그 이상이 있다는 주장 때문에 스님의 주장은 폭발력을 갖기 시작했다. 몸통은 이해찬 전 총리와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의미했다. 하지만 변 전 실장의 혐의가 확실한 데다, 몸통임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몸통 논란은 사그라지고 있다. 신씨는 “왜 이해찬 총리와 권양숙 여사 이름이 나오는지 정말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장윤 승려는 조계종 총무원장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다. 총무원장의 8대 가신으로 꼽히기도 한다. 신씨에서 촉발된 학력 위조 파문의 칼날은 불교계의 든든한 후원자인 변 전 실장을 날려버렸다. 지관 총무원장 또한 피해 가지 못했다. 당대 최고 학승(學僧)으로 동국대 총장을 역임한 지관 총무원장은 중·고등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고 해명해야 했다. 지관 총무원장은 “신정아씨 문제와 동국대 재단 문제로 학력 문제가 불거졌다. 창피스럽고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이후 지관스님은 ‘총무원장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소송을 당했다.


  조계종 총무원에서 만난 한 승려는 “신정아 사태는 동국대 이사진을 공격하기 위해 능력 있는 공무원의 로맨스를 권력형 비리로 만든 사건이다. 동국대 이사 자리 몇 개를 얻으려고 장윤이 절에 불을 지른 꼴이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스님은 “불난 절에서 여자가 뛰어나오는 것을 기자들이 중계하면서 장사를 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