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이번 대선 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불분명하지만 나름으로는 고민이 많았다.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겠지만 도무지 대안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백부터 하자면 지난 대선까지 나는 이른바 ‘비판적 지지자’였다. 하지만 소위 민주화된 정부의 실체가 바닥까지 드러난 노무현 정부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정말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다시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정당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가 출현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 계층적 대표성을 가지고, 그 대표성이 조직적 연계로 나타나고, 유의미한 당원제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근대 정당의 모습을 갖춘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치를 실험한다고 나섰던 열린우리당의 처참한 실패를 보면서, 그리고 현재 소위 범여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리멸렬한 합종연횡과 아무런 내용도 없이 도토리 키 재기로 진행되고 있는 경선을 보면서 이러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대통합을 부르짖지만 나는 이처럼 ‘통합’이란 단어가 추잡해 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일한 현대적 정당인 민주노동당, 하지만 여전한 답답함
하지만 여전히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것은 민주노동당 역시 대안 세력으로 제대로 성장해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답할 수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선택은 현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의 의미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사회적 요구를 정치적으로 끌어안아 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는, 그래서 한국정치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조건은 혼자 다 가지고 있지만 그에 걸 맞는 내용은 여전히 매우 부족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내용을 갖출 기미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 아닌가?
가장 큰 원인이 당내 종파주의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 전체를 바라보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주도하기 전에는 껍데기에 불과한 당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극히 편협하고 비생산적인 계파싸움과 조직놀음이 민주노동당을 갉아먹는 제1의 적임은 부인할 수가 없다. 누구는 이들을 ‘의견 그룹’이라 부르고 이들 간의 논쟁과 경쟁이 생산적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현재까지 스스로의 자기 내용 혁신에는 무척 게으른 이들 집단에게서 그런 여지를 발견한 적이 없다. 정말 생산적인 정파구도는 현재의 종파주의적 구도를 극복함으로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에 책임 있고, 종파주의와 타협한 권영길 후보 답 아니다
이러한 점들에서 이번 대선을 바라보는 민주노동당에게 권영길 후보는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이 보여주고 있는 지리멸렬한 모습에 대한 책임에 있어서 지난 10여년 간 당의 얼굴로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으로는 당 혁신의 제1의 적인 종파주의와 결합하여 ‘대세론’의 강화를 꾀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그 대세란 우리 사회에서의 대세가 아닌 당내 대세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이는 그간 악습의 반복이었다. 당장의 대선후보 당선을 위해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발목잡은 셈이다. 이는 본선에서 몇 표를 더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심상정 후보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대선후보로 출마선언을 하면서 부터이다. 안 그래도 그 때는 민주화 이후의 정부가 얼마나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손쉽게 관료들의 포로가 되어버리는가를 목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관료 집단 중의 핵심인 재경부 관료들과 상대하면서 명성을 얻은 심상정 후보가 그 자산을 기반으로 정책적 선도성을 보이면서 등장한 것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그라면 무언가 가능할 수 있겠다 생각해지만 그 때 까지만도 여전히 권영길 후보가 대세였고, 1강1중1약 구도에서 1약으로 구분되는 시기라 이번 대선 본선까지 나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심상정 후보에 대한 기대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이미 경선이 시작되자마자 마음을 정했던 나는 심상정 후보에게 주저 없이 표를 던지면서도 기대를 안했지만 날이 갈수록 무언가 변화를 바라는 마음들이 ‘대세론’ 속에서도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결국 1약이었던 후보가 권영길 후보와 결선투표 진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 몇 표를 더 얻어내기 위한 '대세'가 아니라 변화를 통한 '미래'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재경부 관료 상대한 실력과 정당정치 새로운 가능성 보여줘
이러한 변화가 미리부터 대선구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던 민주노동당을 다시 관심의 중심으로 끌어오고 있다. 따라서 권영길 후보가 더욱 알려져 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신선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심상정 후보보다 본선에서 더 많은 득표를 할 것이라는 주장은 김빠진 것에 불과하다. 권영길 후보에 대한 인지라는 것은 아직까지 제대로 희망을 보여주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현재 이미지와 맞닿아 있을 뿐이다.
또한 심상정 후보는 당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가능성과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공약들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도 중요한 것이겠지만 그가 보여주고 있는 비전과 방향 또한 가장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가 제시하고 있는 사회공공체제론에는 여전히 허점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위기를 대처하는 데에 있어 ‘공공성 확대’가 그 중심이 있다는 것은 관련된 공부를 하는 나로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가장 제대로 할 수 있는 세력은 민주노동당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민주노동당이 우리사회의 전진을 위해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단 여전히 그 공공성의 주체를 국가(state)에 한정하고 있어 과거의 한계로 부터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 심상정 후보가 경제에 강하지만 정작 대안적 경제 전략이 잘 잡히지 않는 다는 것이 아쉽긴 하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씩 민주노동당의 정책적 정체성을 확립해 가면서 구체적 정책화를 통하여 새로운 수준의 정치를 선보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현재 저급한 수준의 한국 정치에서 떠올라 수권정당으로 가는 올바른 방향임은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심상정 후보의 당 대선후보로의 선출로서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국현 후보는 여전히 기업인이며 인물중심 정치 한계 답습
그래서 심상정 후보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대선 후보들 중에서 당선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민주노동당의 미래 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본선에서 정말 가치 있게 표를 던질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현재 문국현 후보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소위 범여권까지 뿌리깊이 물들어버린 ‘개발지상주의’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대선후보로 나선 지금까지도 여전히 기업가로서의 비전에서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더욱 중요하게는 그는 또다시 인물중심 정치의 한계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현재 그는 그냥 ‘개인’에 불과하다. 그가 의미 있는 계층적 사회적 정치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그가 정당을 창당한다 한들 결국 이후 그 한 개인에 따라 정당의 운명이 춤추는 전근대적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정치적 대표성과 축적된 조직적 역량이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한들 다시 관료의 포로가 되고 결국 말과 정책이 따로 노는 현 노무현 정부의 운명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번 대선에서 나의 답은 심상정이다. 그가 본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제로라고 해도 그의 민주노동당 대통령선거 후보로의 당선 자체부터가 민주노동당의 혁신에 있어, 그리고 이를 통해 한발 전진의 기회를 가지게 될 한국 사회 정치에 있어서 이번 대선에 건질 수 있는 최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김보영/idea.borong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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