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이야기, 사실 벌써 몇 년째 벌어지는 논의입니다. 보수정당을 표방한다는 모 특정정당이 20대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면서부터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현재의 20대는 정치에 관심 없기로 악명 높은 세대 중 하나입니다. 처절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대학 시절을 보냈던 소위 386세대들은 이런 20대를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원래 인간이란 자신의 눈높이와 잣대로 남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20대가 보수화된 것일까요? 정치에 관심 없다는 것, 단순히 20대가 386세대에 비해 무식하기 때문일까요? 글쎄요. 이렇게 단순하게 도식화하면 20대로서는 다소 억울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0대’인 제가 말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20대의 한 사람으로서 하는 이야기일 뿐, 제 스스로가 20대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386세대, 왜 공감을 얻지 못할까요?
일단 20대의 정치적 보수화나 무관심을 논의하자면, 386세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대의 ‘보수화 경향’에는 386세대에 대한 감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386세대가 대학생인 시절과, 현재의 20대가 대학생인 지금은 그 현실이 엄연히 다릅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의 희소성이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당시에는 대학생의 희소성이 높던 시절이기 때문에, 지금의 20대만큼 취업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막말로 ‘개나 소나’대학생인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386세대를 대표한다는 운동권 출신이 정치적으로 국민의 많은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저는 소위 ‘먹물 정서’를 그 근거로 듭니다. 대학생의 희소성이 높다는 것은, 한편으로 그네들에게 '더 많이 배운 자'로서 책임감이 부여됐다는 뜻입니다. ‘먹물 정서’는 바로 거기서 비롯됐겠지요. “저 무지한 국민들, 조금 더 배운 우리가 깨우쳐야 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가 그 당시엔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금은 '개나 소나' 대학생인 시절입니다. 그 때만큼 대접받는 현실도 아니고 지위도 당연히 낮습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통과의례가 된 것입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에게서 책임감을 느꼈던 세대가, 그것을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하고 강도 높게 현실을 걱정하는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개나 소나 대학생인 2007년
반대로 20대는 김대중 정권 출범 후 그 유명한 ‘이해찬 세대’라는 혹평과 함께 무책임한 교육정책의 희생양이 됐고, 학원비며 과외비며 한 달에 수십·수백만 원을 쏟아부어가며 어렵게 대학에 들어갑니다. 대학에 가도 마찬가지죠. 본인이 뭘 해야 하는지 대체 뭘 잘못 했는지 생각할 시간도 만들기 전에, 영어에 미쳐야 하고 취업에 안달복달해야 합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그럴 이유(대학생은 통과 의례이기에)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릅니다. 참고로 김대중 정권 시절은 1970년대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운동권들이 주축 정치인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386세대가 정치적 데뷔를 쏟아지듯이 하기 시작한 시절입니다. 노무현 정권은 아예 그 386세대가 주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대는 자신들에게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만들었던 정권들의 주체가 운동권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운동권, 혹은 386세대에 환멸을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운동권에 반대한다는 보수정당을 지지한다는 이들이 많아졌을 것입니다. 물론 진보정당도 원내에 진출했습니다만, 진보정당의 주축들도 어쨌든 운동권 출신이니, 평가가 크게 다르긴 어렵습니다. 20대, 아마 그런 이유로 보수화됐을 것입니다.
20대, 정말 정치에 관심 가져야 하나요?
20대란 어떤 연령대일까요? 정치·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미성년자이며, 사회적으로도 아직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 세대일 것입니다. 20대가 시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의무를 다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 역시 적극적으로 공감합니다. 그것도 다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 일 테죠. 하지만, 이들이 정치에 (386 세대만큼의)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 “요즘 20대는 문제가 있다. 요즘 20대는 무식하다”고 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저는 오히려 ‘386세대’가 20대 시절에 정치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문제점을 노출하고 공감을 얻지 못했다고 판단합니다. 그 근거가 뭐냐고요? 예, 그 ‘먹물 정서’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뭔가 특별하다고 여기면, 그 ‘특별함’을 갖추지 못한 타인을 계몽하려 듭니다. NL과 PD가 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끝없이 논쟁했고, 독재정권에 결연히 저항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입니다. 그 때는 1980년대고, 지금은 21세기라는 이야기입니다. 20대는 인간의 가치관과 관심사, 그리고 타인을 보는 관점이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정치’ 말고도 배우고 관심 가져야 할 것이 많습니다. 정치보다 더 중요한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 그리고 감수성, 이 모든 것들이 완성돼야 합니다.
그런 시기에 386세대는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운동을 했고, 그것이 과해지면서 타인을 선동하기 위한 ‘정치공학’ 마인드를 갖게 됐습니다. 게다가 특별함을 갖추지 못한 타인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먹물 정서’가 몸에 배어버렸습니다. 그리고 21세기에 이르러 '정권'을 탄생시켰음에도 그 마인드가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설득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1세기, 이제 먹물은 가라
참고로, 저는 얼마 전에 담뱃값 인상과 관련, 1970년대 민주화 운동 세대인 김근태씨를 비판했습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해도 타인의 이해관계나 취향이 걸린 문제는 좀 더 부드러운 태도로 접근해 대화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김근태씨는 전형적인 '먹물 정서'로 담뱃값 인상을 주도했습니다. 참여정부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일 많이 해놓고도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판단합니다.
또한 “20대가 근현대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역사의식이 없다”는 이야기도, 따지고 보면 386세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보수정당을 정권에서 배제시킨 10년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국사교육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싸움이 가능합니다. ‘친일파 청산’과 더불어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거 안 하고 뭐 했습니까? 보수적인 학계와의 싸움이 이유였다고요? 그런 싸움 안 하고 국사교육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정권을 잡았다는 유리함, 그럴 때 사용하는 것 아닌지요?
정치에 관심 가지라는 것인가? '정치공학'에 관심 가지라는 것인가?
신문이나 TV 뉴스를 보세요. ‘매일같이 얼마를 받아먹었네, 무슨 부정을 저질렀네, 무슨 게이트가 열렸네, 누가 단일화를 하네, 신당을 창당하네, 통합을 하네….’ 정치관련 뉴스는 이게 다입니다. 언론도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이 ‘정치공학적 감각이 뼛속까지 물들었습니다. 부정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걸 법과 상식에 의거해 명백하게 밝히려 하기보다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이 너무 뻔히 보이는 정치인, 당파적 입장에서 그걸 즐기려 드는 언론, 다 심각하긴 마찬가집니다.
‘스페셜 포스’도 하고 ‘와우’도 하고 ‘카트라이더’도 하고, ‘야심만만’도 보고 ‘커피 프린스’도 보는 20대가 이런 것에 관심가질 리가 있겠습니까? “대중문화에 너무 심취하고 정치에 관심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겠지만, 이 속에 어떤 정서와 가치관이 반영되고, 어떤 이데올로기가 드러나는지 고민한 적 있습니까? 기성세대가 이 정서, 이 가치관을 이해하고 고민하려 한 움직임이 있었는지, 가슴에 손 얹고 생각해봅시다. 장기적으로 이런 영상매체·영상산업이 21세기의 화두이자 이데올로기로 부각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이해하고 20대를 설득하고 유혹하려 한 적은 있습니까?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은, 그네들의 현실을 타개할 정책을 발견하고 그런 정책을 견지할 정치인을 찾아 지지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0대가 이 움직임이 둔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유효합니다. 그런데 언론의 정치 보도나 정치권의 반응을 봅시다. ‘정치공학 놀음’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놀음을 같이 즐기자는 것이 정치에 관심 갖는 것이라면, 저 역시 ‘무관심층’으로 남을 듯합니다.
20대는 대학생? ‘대학 못가는 것들’은?
‘개나 소나 대학생’인 시절의 중대한 오류가 하나 있습니다. ‘20대=대학생’이란 공식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이건 엄밀히 말해 정답이 아닙니다. 아니, 폭력입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20대도 아주 많습니다. '동호공고 사태'도 '20대=대학생'이란 공식의 폐단이라고 판단합니다. ‘대학 못가는 것들’ 혹은 ‘실업계 고교 졸업해서 전문대나 가는 것들’의 현실은 대체 누가 고민했을까요?
이들의 권리와 현실도 반영돼야 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고민하지 않습니다. 아니 '20대'에서 아예 제외해버립니다. 이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왜 누구도 이들의 정치적인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까? 못 배우고 공부 못 했어도 정치의 혜택을 입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입니다.
그리고, 20대가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정치에 관심하다는 이유로 보수적이라고 낙인찍는 것에 반대합니다. 20대는 태생적으로 이 땅의 보수정당과 화합할 수 없는 세대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커피 프린스’와 ‘국방색’이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20대의 보수정당 지지는 운동권 세대 주축 정권에 대한 불만의 표시입니다. 결코 그 기류가 모두 보수적인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운동권 주축 정권’에 대한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파생된 일시적인 움직임일 것입니다.
20대, 생각만큼 보수적이지 않다
‘무식하고 나약하다’고 판단하기 전에, 그네들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려 했는지, 그네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무관심한지부터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잔혹한 입시 위주 암기 교육체제가 이들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았고, 그 교육체제를 견뎌가며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는 토플 따위의 또 다른 관문을 요구하며 취업에 허덕이게 만듭니다. 이 땅의 20대와 유럽의 20대는 다릅니다. 제대로 된 토론문화가 있길 합니까? 나이를 떠나서 대화하고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문화가 있길 합니까? 없습니다. 이런 게 없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속을 터놓겠습니까?
지난 10년간 운동권 세대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후배들의 마음을 대해야 했으며, 그네들의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을 위해 교육체제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본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20대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단지 그들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고민을 할 뿐입니다. 너무 일찍부터 말입니다. 20대의 보수화, 혹은 무관심이 걱정된다면 지금이라도 나이를 떠나 대화해보세요. 그들이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해보세요. 하지만 그 시름을 잊고자 즐기는 대중문화조차도 무시할 마인드라면 아예 대화 자체를 시도하지 마세요. 그게 중요합니다. 그런 것부터 수반돼야만 20대를 이해하고, 그들을 사회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박형준/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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