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권 규약
“노동조합의 파업을 공권력으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
이들에게만 무거운 짐을 맡겨선 안된다
이랜드 노조 조합원들은 별칭은 스머프다. 노조에서 단체로 맞춘 여름 반팔 티셔츠가 파란색이라서 그런 별칭을 얻었을 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스머프라고 부른다. 가령 노조 집행부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연대하러 와 주신 동지들께서는 계산대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말아주십시오. 거긴 우리 스머프들만의 공간입니다.” 또는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우리 스머프들은 공권력이 투입돼도 놀라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 계시면 됩니다.”
스머프와 가가멜의 대결
그러고 보면 그들은 만화 속의 스머프 같다. 그들이 부지런하고 착한 스머프를 닮았다면 이랜드 자본의 박성수 회장은 딱 가가멜이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불린다. 착한 스머프와 나쁜 가가멜의 대결. 생애의 첫 싸움이자 노조를 만든 후 첫 싸움이 전국적인 투쟁이 돼버린 지금, 상암동의 스머프들은 고도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긴장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들은 파업 투쟁을 스머프와 가가멜의 싸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꼭 가가멜 박 회장만이 아니다. 연대를 위해 농성장을 찾아주는 그 고마운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손님들은 하나 같이 이번 투쟁에 대해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의미를 부여한다. 새내기 노조원들의 입장에서는 좀 주눅이 들만도 한다. 물론 연대를 위한 방문객들이 고맙고 힘이 되는 거야 너무도 분명하다. 다만, 그들의 선택과 상관없이 감당해야 할 그들의 짐을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스머프와 가가멜의 비유는 퍽이나 편해 보이고, 스머프의 지혜로도 보인다.
▲ 지난 8일 상암점 연대투쟁에 나선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연대단체들의 참가자들과 대오를 좁혀오는 경찰병력.
그 많은 투사들은 어디 가고, 이들이 짐을 짊어져야 하나?
고마운 ‘손님’들은 거의 누구나 빼놓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 “전체 비정규 문제가 여기에 달렸다, 여기서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서 850만 비정규 노동자의 운명이 걸려 있다.” “여러분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여기서 새로운 노동운동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 도대체 그 많던 선수들은 어디 가고, 투사들은 어디 가고, 여기 있는 조합원들이 전체 비정규 노동자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가. 여성이라서, 나이가 많아서, 그런 걸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 중에는 노조에 가입한 지 몇 개월도 안 된 사람들도 있다. 투쟁 속에서 잔뼈가 굵고 용기백배한 선수들이 모여 있어도 부족한 판에, 경찰이 이동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대번 긴장하는 이 ‘초짜 투사’들이 왜 비정규 노동운동의 역사의 짐을 짊어져야 할까.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가 함께 철야농성을 하자, “대표님이 계시니까 지들(경찰)도 어쩔 수 없을 거에요. 이제 안심하고 자도 되겠네요”라고 말하는 순수한 혹은 순진한 스머프가 왜 노동운동의 위기라고 하는 이때에 그것을 돌파하는 자리에 서게 됐을까.
노동운동을 열어왔던 유서 깊은 대공장 노동자의 거친 함성 소리가 아니라, 한 명이 울면 무조건 함께 울어버리는, 남편이 생일 날 편지를 보냈다며 그 편지를 읽다가 확 울어버리는, 또 그 우는 모습을 보고 덩달아 울어버리는 그 아주머니들이 왜 이토록 큰 임무를 짊어지게 된 걸까. 긴장의 끈을 잠시도 놓을 수 없는 현장에서 이런 '감상적' 생각이 문득 그리고 불쑥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이럴 수밖에 없었다. 스머프 아줌마들의 투쟁은 이미 예정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신비론’적인 생각마저 든다.
이제 그들은 테러리스트가 돼 가고 있는 건가
고마운 ‘손님’들은 거의 누구나 빼놓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 “전체 비정규 문제가 여기에 달렸다, 여기서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서 850만 비정규 노동자의 운명이 걸려 있다.”며 “여러분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여기서 새로운 노동운동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비한 것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고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결과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눈앞의 이들이, 내가 있는 이 현장이 그 임무가 수행되는 주체이고 장소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소외의 지대. 비정규직에 여성 그리고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이혼한 가정에서 홀로 독립하기 위해, 남편과 사별한 후 자녀를 키우기 위해, 그들 각자가 몸속에 간직하고 있는 사연들 하나하나에는 처절한 현실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국 자본주의 천국 대한민국이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모순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왔던 이랜드 노동조합의 대다수 여성 노동자들이 '역사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것이다.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걸 보노라면 안타까움과 연민, 그리고 존경심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율동패 어딨어요?” 50대의 노조원이 묻는다. 그는 전형적인 ‘아줌마 퍼머’에 동그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눈매가 선하다. 잠이 덜 깬 그 눈은 졸음의 공격을 받아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 눈을 부비며, 손을 들고 답한다. "“ 000은 오늘 타격조입니다.” 세상에, 저 아주머니 입에서 ‘타격조’라는 말이 나오다니. 이들은 이제 정말 이랜드 자본에서 얘기하듯, 테러리스트가 돼가고 있는 건가. 타격조라는 말을 들을 때, 난 무슨 감정인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가슴 한 켠이 심하게 저려왔다.
자본주의처럼 앞에 버티고 있는 '용역들'
14일 새벽,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한밤의 정적을 깬다. 밖에서 경찰에 막혀 농성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울부짓는 조합원들의 함성소리가 들린다. 내가 들어가서 농성장을 ‘사수’ 해야 지금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잠깐 만나고 올 수 있는데. 격렬한 몸 싸움이 벌어졌다. 그들은 타격의 대상이 돼서, 연대를 하러 온 ‘동지’들을 포함해서 26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는 걸 이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더 두려운 건 이른바 ‘용역’이라는 이름의 완력이다. 경찰은 용역의 활개짓을 그냥 놔둔 채 보고만 있다. 그리고 그 완력이 아줌마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경찰은 움직이겠다고 한다. 싸움을 말리려고! 폭력을 예방할 생각이 없다. 폭력이 발생하기만 기다린다. 가증스러운 세상이다. 거친 용역들이 또 매장 안으로 들어온다. 아주머니들이 겨우 허리만큼 높이의 바리케이드 앞에서 그들과 맞서 있다. 조그만 몽둥이를 들고서. 그 몽둥이란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계산대에서 손님들의 물건을 구분짓기 위해 사용하는 아주 조그마한 막대기다. 그거라도 들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하지만 무슨 수로 저 우람한 몸뚱이들을, 자본주의처럼 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저 덩치의 무리를 당해낼 수 있겠는가. 밖으로 통하는 출입구는 경찰이 처들어올 것에 대비해 스스로 막아놓은 상태다. 사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이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바로 이곳에서 당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들이 지금 민주노동당을 부르고 있다. ‘인민의 호민관’으로 자임하고 있는 정당을 부르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 민주노동당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족과 전화 통화를 하는 그들. 타격대라는 말이 쉽게 터져 나오는 그들이 전화기를 붙잡고 하는 말은, “밥은 먹었냐?” “숙제는 했어?” “여보, 고생시켜 미안해”.....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온통 가족 걱정이다. 순진하고, 순수한 아주머니 조합원들. 국회의원이 오면, 당 대표가 오면 여기는 철처하게 안전한 줄로만 알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지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당은 그런 힘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스머프 노조원들이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파업이 비정규직 투쟁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본이나 권력도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싸움의 무게가 한 사업장의 문제를 넘어섰다. 풀어나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평론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이 싸움이 이길 수 있게 할 수 있도록, 큰 힘이든 작은 힘이든 모아내야 한다. 그 힘 아니면 버티기가 어렵다. 이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쟁취’하고 기쁜 마음으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살아있는 연대'를 보여주어야 한다. 승리든 패배든, 파장은 크고 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투쟁하는 착한 스머프들, 파란 옷을 입고 싸우는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지길 농성장의 한 구석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빌어본다. (정경섭/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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