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이랜드 연대투쟁, 비정규 폭발 도화선될까"

녹색세상 2007. 7. 10. 01:58

  이랜드 그룹 20개 매장 영업 중지…… 당-노조-학생 연대 움직임 활발

   

“오늘 동지들의 힘으로 전국 20개 매장을 완벽히 세웠습니다. 상암월드컵 매장은 노동자의 해방구입니다. 오늘 부촌의 상징인 강남 뉴코아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제2의 성지로 선포합니다.”


  8일 밤 10시 강남 뉴코아 아울렛 앞.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뙤약볕 아래서 ‘뜨거운’ 연대투쟁을 전개했던 노동자, 학생들은 서비스연맹 강규혁 사무처장의 우렁찬 외침에 강남 아파트가 떠나갈듯 한 환호로 화답했다. 장장 12시간 동안 처절하게 진행됐던 일명 ‘텐텐투쟁’. 일요일 아침, 퍼지게 자고 싶은 욕망을 뒤로 한 채 노동자들은 고단했던 몸을 끌고 뉴코아 강남점으로 향했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건너편에 나란히 서있는 뉴코아백화점, 뉴코아아울렛, 킴스클럽 앞에 민주노총 조합원과 학생, 민주노동당 당원 500여명이 연대투쟁에 나섰다.


 

 ▲ 민주노총과 이랜드그룹 노조원들이 8일 오후 비정규직 대량해고사태에 반발하며 잠원동 킴스클럽을 점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0시부터 10시까지 '텐텐투쟁'


  이랜드그룹 뉴코아노조 조합원들은 지하 1층 식품매장과 1층 계산대에 집결해 농성을 벌였다. 노동자들의 농성과 경찰의 봉쇄로 자연스럽게 영업은 중단됐다. 노동자들은 세 곳으로 나뉘어 매장 입구 앞에서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집단해고’를 강력히 규탄했다. 노동자들은 집회를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집회를 해야 했다. 매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일명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쫓겨나고 있는 현실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견디기 힘든 '마라톤 집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연대했다.


  금속노조 김일섭 부위원장은 “머저리 같은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악법을 만들어 전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게 만들고, 윤리 경영을 한다는 이랜드 그룹은 법이 시행되기 직전에 대량 계약해지와 용역 전환이라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데 어찌 지탄을 받지 않을 수 있겠냐”고 규탄했다.


  전교조 송원재 서울지부장은 “개도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데 하물며 먹고 있는 멀쩡한 밥그릇을 아무 이유 없이 빼앗아 가는데 가만히 있는 것은 개만도 못한 것”이라며 “남의 밥그릇을 가져가 자기의 황금 밥그릇을 키워가는 저들이 부끄러운 일이고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은 당당하고 자랑스런 투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는 비정규직이고, 기업가가 맘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쫓을 수 있는 법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며 “지금 우리의 투쟁은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이면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지키는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이랜드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의 도화선


  이랜드, 홈에버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저 많은 투쟁 중의 하나가 아니다. 1999년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시작된 ‘비정규직 투쟁’이 하이닉스, 기륭전자, KTX로 이어지면서 전국으로 확대됐지만 승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연신 패배해왔다. 민주노총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 확산법안’에 맞서 가장 먼저 저항을 시작한 이랜드그룹 비정규직 노동자들. 상암 월드컵 매장을 시작으로 한 이들의 투쟁이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는 가면을 벗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이상우 비정규국장은 “이랜드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이지만, 이는 비정규직 법안으로 인해 전국에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투쟁이고, 전국으로 투쟁의 불길을 확산시켜낼 수 있는 선도적인 투쟁”이라고 말했다. 이랜드 투쟁이 비정규직 투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이날 전국의 조합원들에게 이랜드 노동자들과 연대할 것을 촉구했고, 홈에버 시흥·면목·중계·안양 평촌 NC백화점·뉴코아 일산점·야탑점·인천점·순천점·울산점·부천중동점 등 전국 20개 매장이 영업을 멈췄다. 민주노총은 9일부터 이랜드 소속 전국 유통매장들에 대해 본격적인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이랜드그룹 전국 20개 매장 영업 중지


  밤 9시 30분. 갑자기 백화점 안에 있던 직원들이 노끈과 쇠사슬로 출입문을 막기 시작하자 평온히 앉아 있던 경찰들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노동자들은 경찰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며 ‘진격’해 들어갔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9시 50분.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더니 “여기 뉴코아 조합원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지하 1층 킴스클럽 매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의 목표를 달성했습니다.”라고 외쳤다.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고, 몸싸움은 중단됐다.


  공공운수연맹 김동성 수석부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는 연대투쟁을 통해서 돌파하는 길밖에 없다”며 “오늘의 투쟁이 86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투쟁의 첫 출발”이라고 말했다. ‘텐텐 투쟁’은 끝났고, 이날 노동자들은 상암 월드컵 매장에 이어 강남 뉴코아백화점에 두 번째 진지를 구축했다. 숨죽여 살아왔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고, 그곳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하고 있다. KTX 승무원 노동자들의 투쟁이 공공부문 30만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라면,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은 민간부문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이 투쟁을 어떻게 승리로 만들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