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한미FTA’ 통신주권 반 토막 났다

녹색세상 2007. 5. 30. 22:45
 

국가의 기술표준 선택권 ‘만신창이’

중복투자, 호환성 문제, 외국대기업 기술종속 우려

 

  정부는 그 동안 “한미FTA 협상에서 통신 기술표준 정책 추진권한을 인정받았다”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협정문은 우리의 통신기술 선택권이 반 토막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미양국은 그 동안 기술표준 선택의 자율성을 놓고 마찰을 빚어왔다. 무선인터넷플랫폼 표준 위피(WIPI)와 최근 상용화된 휴대용무선인터넷 표준 와이브로(WiBro) 등이 대표적이다. 무선통신 환경이 급변하면서 새로운 서비스 영역에서 우위를 굳히기 위한 마찰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기술표준 선택권 인정받았다더니.....

 

  통신에서 기술표준 선택권은 IT와 연관산업 발전, 소비자보호, 정보화 진전에 필수적이다.  때문에 한미FTA 협상에서 이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협정문은 표면상 기술선택의 자율성을 인정한 것처럼 보인다. 14.21조(기술 및 표준에 관한 조치) 2항은 ‘정당한 공공정책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중통신과 부가서비스 공급자에게 ‘무역에 불필요한 장애’를 일으키지 않는 방식으로 기술 또는 표준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조항에는 국가의 기술표준 선택권이 위축됐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첫째, 한국은 포괄적인 공공정책 목적을 정의할 권한을 인정받지 못했다. 국가는 무선통신 관련 △주파수의 효과적 이용 보장 △소비자의 국내외 망·서비스 지속접근 보호 △원활한 법집행 △건강․안전보호 등의 목적으로만 기술표준에 관여할 수 있다(제3항). 다시 말해 이 네 가지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국가는 와이브로 같은 국내표준을 강제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국가가 정당한 정책목적에 따라 국내 기술표준을 정했더라도 추가로 기술표준을 허용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협정문에는 공급자가 ‘효과적이고 합리적으로 정책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대체기술 또는 표준을 추가로 허용하는’ 규범제정 절차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제5항-나). 게다가 추가허용은 협정발효 이전에 채택된 조치에까지 적용된다(각주15). 따라서 비단 미래의 신규서비스만이 아니라 이미 상용화된 서비스에서도 복수표준 문제가 생길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적잖은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와이브로가 이미 상용화된 상황에서 경쟁하는 기술표준이 등장해 복수표준을 허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구개발과 설비의 중복투자, 호환성 문제와 함께 위험회피를 위한 외국대기업 추종으로 기술종속이 우려된다. 협정문 관련 조항은 이런 위험을 회피할 수단을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우리뿐 아니라 유럽연합과도 기술표준 관련 통상마찰을 빚어왔다. 유럽연합이 3세대 이동통신 기술표준으로 W-CDMA를 공표하자 논란을 벌인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최첨단 이동통신 국가라는 우리와 FTA를 통해 소원을 이룬 셈이다. 이는 미국 쪽의 평가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측 “다른 FTA 뛰어넘는 성과” 자평


  미국 정보통신 기술 서비스 전자상거래 산업무역자문위원회(ITAC8)가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은 이렇다. “한미FTA 협정은 당사국이 기술을 특정할 수 있는 요건을 제한함으로써 다른 FTA를 뛰어넘었다. 따라서 기술선택을 자의적으로 거부할 수 없도록 돕는다.” 다시 말해 한미FTA를 통해 우리정부의 기술표준 선택권한이 축소됐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살펴본 대로 국가의 기술표준 선택권은 정보통신 정책에서 더 없이 중요하다. 국가 미래산업의 문제이자 주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통신주권을 포기하면서까지 한미FTA를 체결할 통신의 기술선택은 국가 미래 산업에 대한 문제이고, 주권의 문제이다. 이렇듯 통신주권까지 포기하면서 한미FTA를 체결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