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 쟁취
1886년 고속성장의 미국, 자본가들은 주체할 수 없는 이윤으로 배를 불리고 있을 때 노동자들의 삶은 하루 12-16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살인적인 저임금으로 노예와 같았습니다. 이러한 참담하기 그지없는 당시의 생활은 5월 1일 수많은 미국의 노동자들을 총파업에 나서게 했고, 노동자들이 일손을 멈추면 세계가 멈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하루 8시간 노동’의 보장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국가 권력과 경찰은 파업 중이던 시카고 노동자들에게 발포를 해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어린 소녀를 포함한 6명의 노동자들을 살해했고, 다음날 이러한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는 30만 노동자들이 ‘헤이마킷 광장 집회’로 모였습니다.
그러나 평화적인 집회에 누군가에 의해 폭탄이 터졌고 이를 이유로 경찰의 폭력진압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8명의 노동운동가들에게는 폭동죄를 뒤집어 씌워 사형과 장기형을 선고했습니다.(헤이마킷 사건) 그로부터 7년후 당시 구속된 노동운동가들의 무죄가 증명되었는데 그 사건은 자본가들과 미국 정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었습니다.
그 뒤 3년이 지난 1889년 7월 세계 각국의 노동운동가들이 모인 ‘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에서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고자 5월 1일을 ‘세계 노동절’로 결정했습니다. 다음 해인 1890년 5월 1일, 세계 모든 나라에서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연대 시위를 벌였으며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국제적인 기념일로 정해 이 날을 ‘메이데이’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절의 역사
우리나라는 일제 치하인 1923년 조선노동총연맹 주도로 첫 노동절 기념행사를 연 이래 매년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고 일제와 싸우며 생존권과 민족해방을 위해 투쟁해왔습니다. 해방 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전평이 깨지면서 노동절을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노총의 설립일인 3월 10일로 바꾸어 버렸으며 그 후 박정희 정권은 그 이름마저 ‘근로자의 날’로 만들어 노동절에 새겨진 노동자의 정신을 말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89년 권력의 탄압과 삼엄한 경찰의 봉쇄를 뚫고 연세대학교에서 5천여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절 쟁취 투쟁을 벌였고 마침내 노동자의 힘으로 5월 1일 ‘메이데이’를 쟁취하고야 말았습니다.
매년 세계 노동절인 메이데이에 모든 노동자들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칩니다. 이것은 이윤추구를 위해 사회를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든 자본과 권력에 대한 연대와 단결을 상징하는 외침이자 정신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메이데이의 유래가 된 ‘헤이마킷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미국 노동운동가 스파이스의 법정 최후 진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로이 새기고 있습니다.
“만일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서 노동운동을 쓸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 만 노동자들의 운동을 없애겠단 말인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의 앞과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계속 타오르고 있다. 그것은 들불이다, 어느 누구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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