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비바람에 씻기는 470일의 투쟁

녹색세상 2007. 4. 29. 23:16

사진으로 보는 르네상스호텔노동조합 집중집회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산대가 멋대로 휘어지는 강풍에 실려 세찬 빗줄기가 마구 몰아쳤습니다. 날씨까지 이 모양이니 집회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우려는,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100명이 넘는 해고 조합원들이 강바닥 같은 집회 장소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새 해고된 지 470일째,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이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겨울에 시작하여 사계절을 두루 보내고 두 번째 맞는 봄입니다. 구조조정을 하겠다면서 여성노동자들만 몽땅 잘라내고 용역으로 전환한 것이 2001년입니다. 정년이 임박한 호텔 인사부장이 용역회사 사장으로 옮겨 앉았을 뿐 똑같은 사무실에서 업무 지시받으며 일한 노동자들의 임금은 연 3000만원에서 1300만원으로 반 토막이 났습니다.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자 탈퇴종용과 노조원 차별과 업무강도 강화, 징계 등 온갖 부당노동행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스스로가 비정규직인 줄도 몰랐던 나이든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집회장 뒤에 번듯하게 걸려 있는 현수막은 한국노총 르네상스서울호텔 노조의 것입니다. “노사화합으로 최고의 고객서비스를 실천”한다는 내용을 한국어와 영어로 걸어놓았습니다. 노조의 묵인 하에 구조조정으로 용역으로, 끝내는 해고자로 밀려난 이들도 한때는 모두 그 노조의 조합원들이었습니다.

 

 

  2004년에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이 났지만 호텔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끝내 조합원들을 18년 근무한 일터에서 내쫓았습니다. 그 후 거리에서 눈비를 맞으며 오로지 조합원들과 고락을 같이 해온 피켓입니다. “하도 비를 맞아 군데군데 곰팡이가 번진 피켓을 보면 마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합니다.

 

 

  조합원 중 한 분이 집회에서 발언하기 위해 글을 적어왔지만 세찬 비바람에 종이는 다 젖어 찢어졌습니다. 찢어진 종이에 담긴 470일의 투쟁과 말 못할 갖가지 사연들 위로 빗물이 흘러갑니다. 가슴속의 응어리도 다 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호텔 측이 법원에서 받은 가처분 결정 고시문을 집회 장소 앞에다 게시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조합원들의 주민등록번호까지 그대로 내다걸었다가 항의를 받자 지웠습니다. 이 가처분 때문에 집회를 할 때마다 조합원 1인당 50만원, 전부 750만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정작 조합원들은 당장의 생계도 막막한 상황입니다. 차비가 없어서 한 달 동안 투쟁을 쉰 적도 있다는 이들에게 벌금 낼 돈이 있을리 없습니다.

 

 

  힘찬 비정규직철폐 노래와 함께 집회가 모두 끝났습니다. “우리가 정규직이었을 때 비정규직이 뭔지, 파견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당하게 된 것이겠지요. 잘리고, 불법파견 되고, 해고까지 당해봤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합니다. 정규직 노동자들, 노동조합이 정신 차리고 앞장서서 싸워야 합니다. 비정규악법을 반드시 저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