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협상 타결 이후, 나무보다 숲을 보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됐다. 협상 타결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인데 아직도 국회 비준 등 협정 발효까지는 많은 과정이 남아 있다. 분야별로 꼼꼼하게 득실을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그림을 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딱 세 가지만 얘기하자.
미국과 FTA 맺어 선진국 된 나라 있나?
첫째, 한미 FTA를 해야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다는 주장이 난무하는데 과연 그런가?
“개방 없이 선진국 되는 방법이 있느냐?”며 한미FTA 체결의 당위성을 주장한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다. 노무현 대통령이 협상 타결 보고를 받고 “우리 경제가 선진경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데에도 동일한 인식이 배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과 FTA를 맺어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한 나라도 없다는 사실이다. 캐나다와 호주는 미국과 FTA를 맺을 당시 이미 선진국이었고, 이 두 나라 외에 다른 어떤 선진국도 미국과 FTA를 맺지 않고 있다. 멕시코 등 미국과 FTA를 맺은 다른 모든 나라들은 아직 선진국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정부가 선전하는 대로 미국과의 FTA가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온갖 추론이 가능하지만, 이런 복잡한 사회현상에 대한 예측은 유사한 경험이나 비슷한 사례를 보는 것이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그림 1>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미국, 캐나다, 멕시코 및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일인당 국민소득은 구매력 평가에 의한 것으로 실질적인 물질적 생활수준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 <그림 1> 미국, 캐나다, 멕시코,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 변화: 1994~2005
이 그림에 따르면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았던 한국이 외환위기 때 겪은 일시적 후퇴에도 불구하고 NAFTA 3개국에 비해 월등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또 NAFTA 3개국 중에서 캐나다는 미국보다 조금 더 뒤처지게 되었고, 멕시코는 훨씬 더 많이 뒤처지게 됐다.
정말 문제도 많은 미국식 자본주의
둘째, 한미 FTA를 통해 미국식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경제 선진화요 개혁이라는 주장이다. 정부와 찬성론자들이 협상 초기에 무척 강조하던 말이다.
그래서 들어오는 제도가 뭔가? 공공정책의 자주적 결정권에 위협을 가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도입,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독점이윤을 증가시켜 주기 위한 의약품 관련 특허권 강화, 소위 ‘미키마우스법’이라 불리는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 환경보호나 사회 정책적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배기량이 큰 자동차에 대한 중과세 완화 등이 선진국 되는 길인가? 이런 게 글로벌 스탠더드인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깨야 한다. 미국은 분명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고, 미국은 풍부한 자원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미국의 일부 산업은 강력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미국경제는 정말 문제도 많다.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가 최근 부각됐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소위 ‘세계적 불균형(Global Imbalance)’의 핵으로서 전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은 소득분배가 매우 불평등하고, 빈곤률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 우리나라와 더불어 최상위권에 있다. 유연한 노동시장 덕분에 유럽에 비해 실업률이 낮다고는 하지만, 감옥에 갇혀 있는 인구를 실업자에 포함시킨다면 미국의 실업률이 유럽보다도 더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을 정도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의료비로 쓰고 있지만, 국민의 20% 이상이 의료보험이 없는 등 의료서비스의 전달체계는 형편없다.
▲ 한미 FTA의 주역들. 오른쪽부터 노무현 대통령,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
한미 FTA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셋째, 백번 양보하여 한미 FTA가 한국경제에 득이 되는 것이라고 하자.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경제적 득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다. 돈 몇 푼 더 벌자고 (누가 더 버는지 따져 봐야겠지만) 민주주의를 희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쟁취한 민주주의인가?
한미 FTA의 추진 과정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중대한 사안을 아무런 국민적 위임도 없이, 사회적 합의도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판단하여 밀어붙인 것이 그렇고, 공청회의 파행으로부터 시작해 여론수렴 노력을 방기하고 오히려 반대의견의 표출을 탄압한 것이 그렇다. 한미 FTA를 비판적으로 다뤘던 공영방송국 PD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것도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협상내용 공개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비밀주의로 일관했고, 협상이 타결된 지금도 구체적인 협상 내용을 소상히 밝히는 대신 정부가 협상에서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대국민 홍보용으로 내놓고 있다. 한국 국민들은 이제부터 적어도 한 달 동안은 눈과 귀가 따갑도록 정부의 대대적인 한미FTA 홍보를 아침저녁으로 보고 듣게 될 것이다.
아, 대한민국! 어디로 가려는가? (유종일/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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