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타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졸속추진 논란과 찬반을 둘러싸고 숱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온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결국 참담한 결과로 매듭지어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협상은 얻은 것 없이 '퍼주기 협상'으로 마감됐다는 평가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 사이에선 대한민국 정부엔 체면도 실리도 없었다는 회의가 증폭되고 있다.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협상이었나’하는 공허한 외침만 울릴 뿐이다.
철저하게 짓밟힌 국민의 알권리와 참여
이번 협상은 출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진 채 시작됐다. 갑작스런 대통령의 제안과 미국이 정한 무역촉진권한(TPA)에 따라 협상이 꿰맞춰졌다. 그 과정에서 국민여론 수렴은 없었다. 과거 한칠레FTA의 경우 정부는 수년간 사전 논쟁을 거친 뒤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협상은 사회 구성체를 대상으로 그 흔한 공청회도 열리지 않았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전혀 배제된 채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협상 초기 집권여당의 수장이었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조차 “(한미FTA를 둘러싼) 격렬한 분위기에 비해 논쟁의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며 “협상 정보는 정부 관계자들이 독점하고, 정치권과 국민들은 귀동냥에 의존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더 나아가 “국민은 실험실의 쥐가 아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국민적 합의 없이 출발한 데다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국민의 알권리와 참여는 짓밟혔다. 국민의사의 수렴 통로가 막혀버린 가운데 국내 여론은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이익단체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FTA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다급해진 청와대는 이 같은 목소리를 외면한 채 FTA체결지원위원회를 구성해 한미FTA의 당위성만 강조했다.
최재천 국회 FTA특별위원회 위원은 “단 한 차례도 정부와 여당은 한미FTA 협상에 앞서 의원들과 상의를 한 적이 없다”며 “국민들만 뒤통수를 맞은 게 아니라 노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도 뒤통수를 맞았다”고 말했다.
‘체면’ 구겨가며 ‘실리’도 못 챙긴 협상
협상 시한이 48시간 연장된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가 이번 협상에서 미국에 얼마나 끌려 다녔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애초 협상시한 결정과 연장 모두 미국이 결정하면 우리는 그대로 따를 뿐이었다. 이처럼 ‘체면’을 구겨가면서 까지 우리 정부는 미국 측 입장에 맞춰 협상에 임했지만 그렇다고 '실리'를 챙기지도 못했다. 우리측 협상단에 협상전략은 없었고, 타결해야 한다는 과제만이 있었다.
오히려 미국은 협상을 연장하면서까지 자신의 요구수위를 높여갔다. 반면 우리 측은 협상이 거듭될수록 움츠러들었다. 정부가 협상 타결에 목을 맨 데 따른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쌀 추가개방은 협상대상이 아닌데도 끝까지 여기에 끌려 다녔다. 쇠고기 수입 위생 검역 문제도 선결 과제로 제외하지 못해 의제화를 막지 못했다. 우리가 '4대 선결조건'을 미국에 내주었다면 농업과 같은 '피해 분야'는 미국으로부터 미리 양보를 받았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한미FTA 협상이 최종 단계에 이르러서도 국민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이익이고, 무엇이 손해인지 알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가 협상 내용과는 상관없이 타결 자체에 목을 맨 결과다. 결국 협상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졸속으로 진행됐고, 미국 측의 강경자세에 짓눌렸다. 자연스럽게 국민들은 '왜 지금 한미 FTA를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 누구로부터도 설득력 있는 답을 얻지 못했다. 정부가 최대 기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선전해 온 섬유 분야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뒀다.
협상 초기 우리 정부는 1500여 품목의 개방을 요구했으나 결국 5개로 줄었다. 정부가 핵심 사안으로 내걸었던 무역구제, 개성공단 제품 한국산 인정 부문에서도 내세울 만한 성과는 없었다. 자동차는 세제에 집착하다 수입차 점유율만 올려준 꼴이 됐다. 한마디로 한미FTA협상의 추진 명분이 퇴색한 셈이다. 정부는 협상 초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미국과 대등한 협상이 가능할 것처럼 포장했지만, 우리 측은 공세를 퍼부어야 할 섬유나 자동차 부문에서조차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협상 주도권을 미국에 내줬다.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한미FTA 협상 타결을 지상 최대 목표로 내세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처음부터 넓지 않았다”며 “이게 실패한 협상으로 이어진 주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타결은 됐지만 이제부터 제대로 된 논쟁 필요
이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는가. 이에 대한 답은 협상이 끝난 지금,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논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협상 타결은 실무적인 협상이 끝난 것을 의미할 뿐이며, 한미FTA협상 체결 과정은 계속 이어진다. 앞으로 국회 비준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등 후폭풍이 일 것이다.
협상은 끝났지만 이를 수용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국회와 국민의 몫이다. 졸속협상 타결을 대통령 혼자서 하겠다는 것은 독재나 다름없다. 최재천 의원은 “더 이상 대통령은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며 “국민의 뜻을 모아서 나아가야지 마치 도박을 하듯 그런 식으로 결단을 내린다면 그건 민주적 통치자의 자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협상은 처음부터 미국이 정한 시한에 얽매어 졸속으로 추진됐다. 그 과정에 국민의견 수렴은 쏙 빠졌다. 노 대통령은 줄곧 ‘경제적 이익이 없을 경우 협상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원칙은 결국 무시됐다. 이처럼 불균형한 협상의 과정과 책임을 묻는 것은 국회의 몫이다. 국회는 이제라도 한미FTA를 국익의 관점에서 철저히 따지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따라서 한미FTA협상이 한국 사회 전체에 몰고 온 논쟁은 갈 길이 멀다. 한미FTA 반대 싸움 역시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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