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대통령후보 개방형 선출방식 비판

녹색세상 2007. 2. 17. 14:40

자랑스러운 진성당원제도를 지킵시다.


- 대선후보 개방형 선출방식에 대한 비판 -


  최고위원회는 당의 대통령 후보를 개방형 예비경선방식으로 선출할 수 있도록 당헌 부칙개정안을 중앙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하였고, 중앙위원회에서 과반수가 조금 넘어 통과되어 대의원대회에 상정되었다. 오랜 기간 침체를 벗어나 다시금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야할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최고위원회가 대선 승리를 위한 전반적 논의보다도 후보선출 방식 중심으로 논의를 집중하고 그 결과로서 진성당원제의 근간을 흔드는 개방형 선출방식을 안건으로 제출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2000년 창당 이후 당을 지금껏 지키고 성장시켜온 동력은 진성당원제의 힘이었다. 그 어떤 정당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성당원제야말로 보수정당과 확연히 다른 민주노동당의 실체다. 당헌 개정안이 제출되는 지금까지도 ‘개방’의 구체적인 방식조차 논의되지 않은 채 무조건적인 ‘개방’만을 결정하려는 것은 진성당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지나치게 무모한 일이다. 전진은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는 당원들의 직선에 의해 선출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개방형 선출방식을 전제하는 당헌 개정안에 단호히 반대한다.


1. 개방형 경선제는 진성당원제의 근간을 흔들게 될 것이다.


  당이 무엇보다도 자랑으로 여겨온 진성당원제는 단순히 3개월 이상 당비 납부한 당원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당원들은 당에 가입하면 교육을 받아야할 의무, 분회에 가입해야할 의무, 당의 규율을 지키고 활동에 참여해야할 의무 등 수많은 의무와 책임이 부여된다. 오죽하면 ‘민주노동 당원으로 살기 피곤하다’는 얘기를 할 정도이겠는가. 쉽고 편한 길보다는 어렵고 피곤해도 민주노동당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당원들이 더 많은 게 민주노동당이다.


  당의 강령과 당헌, 당규를 교육받고, 성평등 교육을 이수하고, 매번의 선거 때마다 부과되는 특별당비를 내고, 수도 없는 핸드폰 문자메시지에 시달리고 때때로 집회와 분회에 나가야 하는 피곤함을 감수하는 당원들이 민주노동당의 근간이다. 당원 신분을 유지하기가 힘들고 고달픈 만큼 자부심과 책임감도 크다. 대통령 후보는 그런 민주노동당의 진성당원들이 일궈온 당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낼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다. 투표권은 수많은 의무를 수행해온 당원들에게 부여된 가장 기본이자 최고의 권리이다. 당원들 스스로 자신의 존재와 무게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바로 후보를 선출하는 선거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단 한번 5,000원만 내도 후보선출의 권리가 주어진다면 앞으로 누가 그 피곤한 당원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입당을 하겠는가. 그냥 민주노동당 지지자로 있다가 선거인단에 참여해서 당원과 동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 매달 10,000원의 당비와 선거 때마다 특별당비를 내면서까지 피곤한 당 생활을 자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당의 강령을 배우고 당의 창당정신에 부합되도록 노력해온 당원들의 의사가 선거인단의 선택으로 왜곡될 수 있다면 당원들은 더 이상 민주노동당의 주인일 수 없다. 개방형 선출방식이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지지자를 모을 수 있다는 취지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선후보 선출이라는 한 번의 이벤트가 결국 당의 근간을 흔드는 독이 될 수 있다면 이는 진보정당이 취할 바가 아니다. 소탐대실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 이번 대선이야말로 진보정당이라는, 진성당원 중심이라는 당의 정체성으로 승부할 기회다.


  이번 대선이야말로 진보정당이라는, 진성당원 중심의 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분명한 정체성이 당의 최대 자산이 될 시기다. 그런데 바로 이런 때 오히려 우리의 자산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정을 해서야 되겠는가? 열린우리당이 이미 이합집산을 시작했다. 한나라당도 대선 주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 없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게 민주노동당의 위상을 드높이는 길이다. 진성당원 중심의 제대로 된 정당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누가 진정 ‘백 년 갈’ 정당인지 대중에게 확실히 인정받을 때다.


  그런데 이런 때, 보수정당이 개방형 예비경선을 하니까 우리도 따라간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이것은 모처럼의 호기를 우리 스스로 훼손하는 꼴이 될 것이다. 우리의 장점이 비로소 장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오히려 그것에 반하는 선택을 한다니,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는가?  


3. 제출된 선거인단 제도는 그 상도 불분명하고 허점투성이다.


  제출된 선거인단 제도에 따르면 선거인단 모집방안은 전방위적이고 또 무작위이다. 당원이면 누구나 어떤 사람을 추천하든 5000원만 내면 된다. 이러한 모집방식은 지역조직을 통한 지지자의 모집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예비후보들과 선거캠프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선거인단을 모집하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당의 이념보다는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선거인단을 모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예비후보 지지자들이 또다시 그 후보에 대한 애정으로 다른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애정이 번져나가는 것이라기보다는 후보자 개인들에 대한 애정이 선거인단의 분위기를 지배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과연 경선을 치른 후에 그들이 당에 대한 지지자로 남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 사이에 소외되는 것은 진성당원들 자신이다.


  제출된 선거인단 제도에 따르면 당원에게 51%, 선거인단에게 49%의 의결권을 준다. 얼핏 당원 중심성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만약 당권자가 5만 명이고, 선거인단이 5만 명이 되면 당원 한사람의 투표권이 가진 힘과 선거인단 한사람의 투표권이 가진 힘이 거의 동등하게 나타난다. 만약 선거인단의 숫자가 당권자보다 적을 경우는 오히려 선거인단 개인의 투표권이 진성당원들의 투표권보다 더 강력하게 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되게 된다. 


  사소한 문제를 하나 더 예로 들면, 제출된 선거인단 제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당에 수 십 만원을 납부했으나 잠시 경제적으로 어려워 당비납부를 못해 당권이 소실된 당원은 투표권이 없는 반면에 5천원만 내면 되는 선거인단은 투표권을 가지게 되니 이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의문이다. 이번에 제출된 당헌 개정안은 ‘어떠한’ 개방형 예비경선인지에 대해서는 치밀한 결정 없이 ‘열겠다’는 결정만 내리면 된다는 식이다. 안건자료에 해설안으로 제출되어 있는 것도 말 그대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안이다. 당의 근간을 바꾸고자 하는 제도로서는 그 처리방식이 아주 무책임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 개방형 예비경선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는가?


  어떤 식으로든 개방형 예비경선을 추진할 경우 닥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제대로 검토되지 못했다. 보수정당들이 개방형 예비경선을 무슨 대단히 새로운 것인 양 내세우고 이것으로 자신들의 비민주적 당 운영이 다 가려질 수 있는 것처럼 들지만, 이 제도는 한국 사회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평소 ‘당원 없는’ 정당을 유지하다가 당직 공직 선거가 있을 때에만 대중을 동원해 표 찍는 기계로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 보수정당들이 빈번히 반복하던 행태다. 그리고 그 때마다 당 내 각 파벌들 사이에서 온갖 부정과 부작용이 자행됐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이런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부정과 부작용의 여지가 큰 제도임을 알면서도 우리 스스로를 굳이 그 시험에 들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5. 당원확대가 선거인단 모집으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


  대중의 정치적 관심이 높아지는 대선시기야말로 당원을 획기적으로 배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정작 당원 모집보다는 개방형 예비경선을 치르기 위한 선거인단 모집에 집중하게 될 위험이 있다. 선거인단 모집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하는 바람에 우리 스스로 당원 배가의 더 없이 좋은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6. 대선준비와 후보 선출이 늦어질 것이다.


  당이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은 가급적 빨리 후보를 선출하고 후보 중심의 선거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를 마치면 곧바로 대선 준비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의원대회에서 당헌 개정안이 통과되어 개방형 예비경선을 치르기로 결정된다면, 대선 준비의 대부분이 선거인단 모집 방식에 대한 논의로 집중될 것이다. 지금까지 ‘개방’의 구체적인 방식과 문제점을 검토하지 않았던 만큼 수많은 우려와 문제점에 대한 논의로 상당기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결국 선거인단 모집 방식에 대한 결정과 선거인단 모집 과정으로 인해 시간을 허비하고 대선 후보선출은 늦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후보를 중심으로 조기에 선거 태세를 갖추고 공세를 취해도 부족한 마당에 뒤늦은 후보 선출과 부실한 대선 준비는 대선에서 당의 대응력을 취약하게 만들 것이다. 이상의 이유에서 우리는 당헌 부칙개정안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가 무엇보다도 당원들의 열정과 헌신을 불러일으킬 때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창당 이후 7년 동안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소중하게 가꾸어 온 ‘진성당원제’가 제대로 설 때에만 당의 발전은 가능하다. (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