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원노동자연대 한 회원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벌을 서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철벽 요새를 자랑하던 삼성본관이 드디어 뚫리고 말았다. 집시법의 맹점을 악용해 삼성직원들을 동원해 편법으로 각종 집회 신고를 해 정당한 집회를 방해해 왔다. 완벽한 보안장벽은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 시원한 장면을 보면서 시원한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너무나 시원한 그 곳으로 가 보자.
'무집회 성역' 삼성 본관 앞이 뚫렸다.
19일 오후 3시 서울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앞 집회는 추운 날씨에도 '삼성에스원 대량해고 규탄 및 삼성-경찰 유착 진상규명, 해고자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스원공대위)' 소속 노동 시민단체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순조롭게 열렸다. 이날 집회는 그동안 삼성 측이 독점해온 '성역'을 깬 첫 합법집회. 에스원 노동자연대가 3일 동안 밤샘을 통해 신고를 마친 첫 합법집회.
그 동안 삼성 측은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직원을 상주시키고 매일 '에너지 절약 및 환경보호 캠페인' 집회를 신고했다. 그러나 에스원 노동자연대는 지난해 12월 20일 자정에 맞춰 경찰서에 들어서며 이를 카메라로 찍어 집회신고서와 함께 제출했다. 기습작전으로 신고에 성공한 집회 참석자들은 "철통같은 삼성 앞마당을 뚫었다"며 고무된 모습들이었다.
▲ '삼성에스원 노동자 부당해고 규탄 및 해고자 복직을 위한 결의대회'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앞에서 삼성에스원세콤영업전문직노동자연대 주최로 열렸다.
무릎 꿇고 벌선 '이건희'
이날 진행된 '삼성에스원 부당해고 규탄 및 해고자 복직을 위한 결의대회'는 경찰과 삼성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김오근 에스원 노동자연대 위원장은 연단에 올라 삭발식을 단행하는 등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삭발식이 끝나자 빡빡 머리에 '단결 투쟁'이라고 적힌 붉은 색 머리띠를 동여맨 뒤 결연한 표정으로 경찰과 삼성 측을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경찰청의 잘못된 질의회시로 1700여명의 에스원 영업전문직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됐다"면서 "지난 5일 법제처에 의해 '경비업체 영업딜러의 위탁 영업은 합법'이라는 판정을 받았는데도, 회사 측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 "부당 해고 이후 6개월 동안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며 복직 투쟁을 벌여왔다"면서 "노동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해 나가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이어 권미정 민주노총 경기본부 부위원장은 "삼성을 키운 것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었는데도 삼성은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면서 "세계 일류면 일류답게 처신할 것을 충고한다"고 꼬집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경찰과 삼성의 유착 진상규명을 위한 국민감사청구운동을 전개하고 해고자 복직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스원 해고 노동자의 딸인 초등학교 3학년 정아무개 어린이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 등이 담긴 내용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해 집회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날 집회가 시작되기 앞서 삼성본관 정문 앞마당에서는 이건희 회장 형상의 탈을 쓴 에스원 해고자가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들고 벌서는 모습의 퍼포먼스를 연출해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기도 했다.
▲ '삼성에스원 노동자 부당해고 규탄 및 해고자 복직을 위한 결의대회'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앞에서 삼성에스원세콤영업전문직노동자연대 주최로 열렸다.
경찰청 앞 기자회견은 도로교통법 위반?
경찰과 삼성 측은 이날 집회 불상사에 대비해 삼성본관 건물 주변과 정문 현관 앞 등에 전경 200명과 사설 경비 100여명을 배치했지만 몸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정작 경찰과 단체 활동가들이 대치한 것은 이날 오전이었다. 경찰청 앞 에스원공대위 출범 기자회견이 경찰의 과잉저지로 파행을 겪은 것이다.
에스원공대위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경찰청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에 항의서한을 전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대위 회원 30여명이 경찰청 정문 왼쪽 인도에서 펼침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준비하자 경찰은 회원 14명을 강제로 연행했다. 경찰은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에스원공대위 회원들 가운데 이상무 민주노총 경기본부장을 비롯해 최준영 문화연대 활동가, 김갑수 삼성 해고 노동자, 삼성에스원 노동자연대 회원 11명 등 모두 남자회원들만 골라 연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연행에서 제외된 일부 공대위 여성회원들이 강력히 항의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수십 명의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여성회원들을 에워싸는 바람에 결국 기자회견은 약식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 연행자들은 서울 서대문과 성북경찰서 등 3곳에 분산격리돼 간단한 조사를 받은 뒤 하루종일 경찰서에 억류돼 있다가 이날 저녁 9시 30분쯤 모두 풀려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연행자는 "갑자기 경찰서로 연행돼 수사과 지능2팀에서 조사를 받았다"면서 "경찰은 정확한 혐의도 알려주지 않은 채 하루종일 나를 붙잡아두었다"고 말했다.
▲ 경찰이 삼성에스원공대위 소속 여성 회원들을 둘러싼 채 기자회견을 저지하고 있다.
"경찰-삼성 유착관계 진상 밝히겠다"
경찰이 연행자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도로교통법 위반. 단체 활동가들은 "경찰이 자신들과 관련된 기자회견과 삼성본관 앞 집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서대문경찰서장과 경비과장 등에 대해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한상렬 대표는 약식 기자회견 규탄발언에서 "경찰은 최근 한미FTA 반대 기자회견도 막는 등 갈수록 폭력경찰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진 활동가는 "경찰이 잘못된 유권해석으로 1700여명의 생존권을 박탈한 경찰이 노동 시민단체의 기자회견까지 방해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권미정 부위원장은 본관 앞 집회에서 "경찰청 유권해석으로 1700명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났을 때 경찰과 삼성의 야합을 의심했으나 오늘 오전 경찰이 하는 짓을 보고 경찰과 삼성이 한 통속이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참석자들은 오후 5시 30분쯤 삼성본관 앞 집회를 마치고, 중구 순화동 에스원 본사 앞까지 행진을 벌인 뒤 마무리 집회를 열고 해산했다. 에스원공대위와 에스원노동자연대는 다음달 2일 오후 2시 삼성본관 앞에서 2차 규탄집회를 열 계획이다. (오마이뉴스에서 인용)
▲ 삼성에스원공대위 소속 남자 회원들이 경찰에 연행되자 현장에 남아 있던 여성 회원들과 한상렬 대표 등이 약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옥화 민주노총 이마트 수지분회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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