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인문학 위기를 불러 오는가?
문제 제기를 하는 괴짜를 용납하지 않는 게 어디 대학사회 뿐이겠는가. 우리 사회 전체가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사람'을 수용하기는커녕 '별종'으로 낙인찍어 생매장을 시키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 제기자들이 있기에 사회가 발전 한다'고 말은 하면서 정작 그런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중적인 잣대가 뿌리깊이 박혀 있다. 직장인들이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업무 외의 일로 사람을 괴롭힐 때라고 한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러나 업무 외의 것으로 사람을 괴롭히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그것은 직장 내 인화단결을 저해하고 업무 능률을 떨어 뜨려 생산성 저하로 나타난다. 학문 역시 마찬가지다.
전직 대학교수의 현직 판사에 대한 석궁 테러 사건에 대해 신문 방송 등 대부분의 주류언론이 말초적 흥미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보도에 매달리고 있다. 사건의 원인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신,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한 무모한 편집증환자의 기구한 인생역정을 들춰내거나, 김 교수가 사전에 현장답사를 하고 석궁 연습을 했다거나 회칼 같은 흉기까지 소지하는 등 치밀하게 살인을 준비했다는 경찰 측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기에 급급하다. 판사들은 게시판을 통해 자기들의 주장을 피력하고 있지만 김명수 박사는 구속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것부터가 불공정한 것 아닌가?
동정론과 사법부 불신론
그러나 인터넷 매체의 네티즌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시각과 정서로 이 사건을 바라본다. 오죽이나 억울했으면 전직 대학교수가 원시적인 석궁 테러까지 저질렀겠느냐는 동정론, 사법부가 기득권자들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뿌리 깊은 사법부 불신론이 인터넷 댓글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는 김 교수를 현대판 로빈 후드로, 그의 테러 행위를 '국민저항권' 행사로 본다는 사람들도 줄을 잇고 있다. 어떤 네티즌은 '김 교수 돕기 운동'을 제안하여 뜨거운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교수재임용제에 있다. 그리고 대학과 학회라는 조직이 얼마나 완강한 기득권의 보루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서 기초과학과 인문학의 위기, 이공계 기피현상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계기까지 이 사건은 내포하고 있다. 자기보다 연구 성과물이 많고 실력이 뛰어난 것을 포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침묵의 카르텔이 학문의 전당에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우선 사건의 근본 원인은 김 교수가 원칙에 충실한 수학도 답게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데도' 대학입시 수학문제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끈질기게 지적함으로써 선배 교수와 자기가 속한 대학의 사회적 공신력과 체면을 손상시킨 데 있다. 이럴 경우 교수사회와 대학은 '그 친구 안 되겠군. 원칙이나 정직도 좋지만 먼저 인간이 돼야지' 하며 집단 왕따에 나선다. 가령 부산의 한 대학에서는 입시부정을 고발한 교수들이 학교의 공신력과 체면을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재임용에 탈락되었다가 17년만에야 복직되었다.
다른 조직사회와 마찬가지로 대학은 입시부정이나 인사부정 같은 조직내부의 오류를 인정하고 시정하기보다는 적당히 덮어두고 넘어가는 것을 최선으로 알고, 학회는 이런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사법부도 교수 재임용은 대학의 재량권에 속한다면서 사실상 대학의 편을 들어준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불을 낸 사람보다는 불났다고 신고하는 사람이 괜히 문제를 일으킨 말썽꾼으로 치부되어 도태되는 곳이 대한민국의 대학이다.
대학문화 바뀌지 않는 한, 학문의 위기극복은 어려워
물론 재임용 탈락의 공식적인 사유는 '학생지도 능력 부족'이나 '교원 품위 손상' 등으로 표현되지만, 실제 이유는 학생들이 성적 때문에 불만을 표시했다거나 학과 교수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든가, 선배 교수들에게 버릇없이 따지고 들었다거나 하는 '사소한' 비본질적인 문제들이다. 쉽게 말해서 인간성 안 좋고 건방지다는 것이다. 국내외 일류대학 출신으로 연구 실적이 뛰어나고 자부심이 높은 젊은 교수들 가운데 동료 교수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해 재임용에 탈락하는 경우를 필자는 드물지 않게 보아왔다. 아무리 수술 잘하고 환자에게 친절한 의사라 할지라도 선배들의 눈에 찍히면 대학에 남을 생각을 말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대학은 실력은 좋으나 사회성이 좀 부족한 '괴짜'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선배나 동료들도 그런 교수를 보호하고 포용하기보다는 가차 없이 왕따 시키고 탈락시킨다. 그러면서 기초과학과 인문학의 위기를 기회 있을 때마다 외쳐댄다. 그러나 오로지 학문 연구와 강의에 충실한 정직한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하고 올바른 답을 제시한 수학자가 테러리스트로 전락하도록 조장하고 방치하는 대학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인문학은 물론이요 모든 학문의 위기는 결코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영남대독문과/정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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