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자유에 대한 행복감 평생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녹색세상 2007. 1. 4. 22:57

  2006년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싸움이 있다면 단연 KTX승무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일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투쟁'이란 말 조차 듣지 않고 살아왔을 여리딘 여린 그들이 '공기업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선봉에 서 있다. 자기 말처럼 나이가 많다 보니 얼떨겸에 맡게된 자리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텐데도 ‘지금에 와서야 평생 뭘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투쟁하는 정의’가 아니면 결코 믿지 않을 것임을 다짐해 본다. 2007년에도 끈질기게 싸울 그들의 섬검이자 언니인 민세원 지부장과의 인터뷰를 에큐메니안에서 감히 퍼와 일부 수정 했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기를......

 

  ▲KTX 여승무원의 맏언니 격인 KTX열차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이 26일 용산경찰서로 자진 출두해 다음날 풀려났다. 지난 29일 용산역 철도노조 건물 옆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민 지부장을 만났다

 

  12월25일은 KTX 여승무원들에겐 잔혹한 날이었다. 다름 아닌 파업 투쟁 300일을 맞은 것. 쉽사리 끝나지 않는 지루한 싸움을 벌이는 여승무원들에게 연말의 들뜬 분위기는 그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이 KTX 여승무원의 맏언니 겪인 KTX열차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이 26일 용산경찰서로 자진 출두했다. 민 지부장은 다음날인 27일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됐다. 지난 3월16일 서울지역본부 점거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9개월을 불안한 나날 속에서 보내야 했던 그였기에 자유에 대한 기쁨은 컸다.

 

  지난 29일 용산역 철도노조 건물 옆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민 지부장을 만났다. “걸어다니는 것, 밖에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며 “평생 이 느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나타낸 그에게 활기찬 기운이 느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그동안의 이야기 보따리를 푼 민 지부장은 투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과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최근 KTX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교수모임(교수모임)에서 입수한 기획예산처의 철도공사 경영평가 자료를 언급하며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말했다. 민 지부장은 “공기업으로써 정부평가와 정책에도 역행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버리고 새해에는 공기업으로써 윤리와 의무를 지킬 수 있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 20일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3천여 명의 정규직화에 대해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윤 추구가 최대 목적인 사기업조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회사 경영에 훨씬 발전적일 것이라 판단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인 철도공사는 오히려 사기업 발 뒷굼치도 못 쫓아가는 비윤리적 경영을 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아울러 11월30일 통과된 비정규직보호법안에 대한 비난도 함께 쏟아냈다.

 

― 지난 26일 용산경찰서로 자진 출두했는데
  3월16일 체포영장이 떨어져 제대로 된 활동 하나 못하고 바깥에 나갈 엄두도 못냈다. 조합원들은 열심히 활동하는데 지부장으로서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런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또, 12월들어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 속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태로 계속 가면 나 자신도 망치고 지부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판단돼 해를 넘기기 전에 신변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에서 출두하게 됐다. 아울러 서울지역본부 점거에 진두지휘 했던 이철의 대표도 집행유예 중이고 다른 조합원도 그 문제에 대해선 이미 결론이 난 상태여서 구속 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함께 작용했다. 특히 새해에는 좀 더 강하고 영향력 있는 투쟁해서 빨리 마무리하고 해결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 경찰 반응은?
  다들 놀랐다. (자진해서) 올거란 생각을 못했는지 굉장히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담당 경찰들도 모두 좋아했다. 여승무원 관련 건을 올해 안에 다 처리하니까 홀가분하다고 했다. 

 

― 이제는 자유의 몸인가?
  그렇다. 때문에 아직 실감이 잘 안난다. 27일 밤에 와서 조합원들과 시간 보내고 28일 처음 일정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올 한 해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특히 사회에서 약자가 털끝만큼도 보호받지 못하고 법도 사회적 약자에게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사회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기울어졌다. (조합원들과) 12월 마지막주를 어떻게 보낼지 의논한 결과 봉사활동을 통해 서로 보듬어주고 우리가 입은 심신의 상처도 서로 치료하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벽제 애덕의 집과 안암역에 위치한 승가원을 70명이 나눠서 갔다. 장애인, 어린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뜻 깊었다. 앞으로 한 달에 한번이나 더 자주 이런 시간을 보내려 한다. 

 

 ▲민 지부장은 걸어다니는 것과 밖에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며 평생 이 느낌을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 교수모임이 최근 입수한 기획예산처의 철도공사 경영평가서는 철도공사의 시정조치를 요구하고 있었다. 접했을 때 어땠나?
  기가막혔다. 이철 사장은 ‘기획예산처에서 제일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공사 예산 지출 항목이라 인건비 비율을 낮춰야 하기 때문에 직접고용은 못해준다. 때문에 다른 회사에 넘길 수 밖에 없다’고 변명했었다. 또, 기획예산처와 정부 핑계를 댔는데 기예처 평가서에는 KTX 승무원을 위탁 준 것은 비효율적이고 낭비기 때문에 직접고용하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철 사장과 공사 경영진의 근거 없는 고집과 거짓이 만천하에 밝혀진 순간이었다.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으로써 이제라도 파렴치한 행동과 고집을 접고 새해에는 윤리와 의무를 지키는 모습으로 변화되길 바란다.

 

― 지난 20일 우리은행 비정규직 3100명의 정규직화가 큰 관심거리였을 것 같은데?
  모두 부러워했다. 철도노조는 하반기에 임금협상을 합의했는데 비정규직 관련 문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정규직 임금인상만 (논의하는 것을) 바라보는 우리로선 우리은행의 노사합의 통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굉장한 일이고 부러운 일일 수 밖에 없었다. 
  또, 이번 일은 이윤 추구가 최대 목적인 사기업에서도 비정규직 양산이 생산률 향상이나 기업 운영에 좋은 메리트가 아님을 인식한 결과라 본다. 그러나 공기업인 철도공사는 어떤가. 공기업이나 정부 기관은 이윤 추구에만 매달려선 안된다. 국민세금으로 건설되고 운영되기에 경영윤리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공기업이 오히려 사기업 발 뒷굼치도 못 쫓아가는 비윤리적 운영을 한다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이 철 사장은 공기업 사장으로서 뭘 해야 하는지 하루 빨리 판단을 제대로 하길 바란다.

 

― 11월30일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됐다. 어떻게 보나?
  어처구니없다. 비정규직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비정규직을 보호키 위해 만들었다 주장하지만 비정규직 근처에도 못 가봤었나 보다. 비정규직 현실이 뭔지 모르고 순진무구해 이런 법을 통과시켰는지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법안은 고용불안을 더욱 부추긴다. 법안은 2년 이상 직접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명하지만 그런 조항 때문에 2년이 되기 전에 (사업주는) 해고한다. 법안에는 이런 해고에 대한 어떤 제재가 전혀 없다. 마치 일회용 소모품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것처럼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2년 가까이 근무해서 숙련된 인력을 씀으로 인한 효율성 보다는 단순히 임금이 싸고 편하게 부려먹는 편리함을 더 추구하는 것이다.
  현재 불법파견으로 판정 받을 수 있는 사업장이 꽤 있었는데 (법안통과로 인해) 앞으로 그런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26개 직종에 파견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했던 파견법 자체도 악법이라 했었는데 이제는 모든 직종이 파견 가능하다고 하면 모든 노동자가 위탁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 것이다. 또, 정규직화 되기 전인 2년 안의 해고는 일상화 될 것이다. 때문에 무엇 하나도 보호 될 수 없는 법안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뭔지 국회의원들이 모르든지 너무 잘 알아서 모른 척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 최근 철도공사는 새마을호 승무원들을 (주)KTX관광레저로 옮기겠다며 전적동의서를 강요하고 있는데?
  이미 알고 있어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마 우리가 투쟁하지 않았다면 상반기나 중반기 사이에 이미 (새마을호 승무원들을) 관광레저로 보냈을 것이다. 내년이 되면 새마을호 승무원 고용이 2년이 넘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기에 이제는 전직해라고 강요하는 거다. 철도공사 거짓이 밝혀져 잘못된 단추를 잘 끼우려는 노력을 기대했는데 우리들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새마을호 승무원까지 우리들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하려고 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철 사장을 비롯한 철도공사 경영진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철도공사는 관광레저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여승무원들은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철도공사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광레저 사정이 어떻기에 거부하는가?
  위탁된다는 것은 하청노동자가 된다는 것이다. 2004~2005년 하청노동자로 지내봤기에 잘 안다. 하청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은 비정규직보다 더 열악하다. 하청된 회사에서 정규직이라는 옷을 입혀준다는게 공사 얘기지만 하청된 회사의 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다라는 표현 문제일 뿐이지 사실 어떻게 표현하든 한 가지 색깔일 뿐이다. 하청노동자는 하청노동자일 뿐이다. 그래서 근무조건이나 임금수준 모두 직접고용된 비정규직보다 못하다. 때문에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철도공사의 비정규직 직접고용을 요청하는 것이다. 현재 관광레저 노동자들도 밖으로 표출되지 않게 입막음 하고 있어 그렇지 우리가 비정규직으로 2004~2005년 KTX 여승무원으로 일했을 때 보다 비슷하거나 더 힘든 여건에서 일하고 있다. 2007년이 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 질 것이다. 2년간의 하청노동자 경험이 없었다면 속아서 ‘감사합니다’라고 갔을 수도 있다. 공사에서 정규직이라 호칭을 불러주는 것이지 실제 내용은 직접고용된 비정규직보다 비참하다고 보면 된다.

 

― 크리스마스 때 파업 300일을 맞았다. 어떻게 보냈나?
  승무원들에게 너무 잔인한 날이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 6시에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촛불집회 열고 있는데 22일날 조금 앞당겨 300일 문화제와 겸했다. 가족과 보내고 싶어하는 승무원들이 많아 23~25일까지 가족과 보내라고 했다. 너무 지치고 힘든 상황인데 들뜬 연말 분위기에 승무원들이 힘들어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라는 뜻에서였다. 내가 신변정리하고 나왔기 때문에 여승무원들 모두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라 새해에는 좀 더 강력한 투쟁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 최근 여승무원들이 대학강단에 섰는데?
  11월달부터 대학 강연을 많이 했다. 부자유한 몸이었지만 사실 나도 2번 강의를 했다. 대학생들에게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갈 것인가와 사회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여승무원들 얼마 전 모습이 그들(대학생)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취업만을 생각한 채 사회에 뛰어들었을 때 우리가 겪었던 상황을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
  나 같은 경우나 여승무원들을 봐도 인식을 못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승무원이 되기 전까지 비정규직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고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이라 인식했었다. 근로기준법과 노동법이 뭘 의미하는지 내용도 몰랐다. 일반인들이 이런데 관심을 안 갖기 때문에 일부 소수의 권력 쥔 자들이 많은 대중을 좌지우지 하고 당치 않는 일들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에 많은 관심을 갖고 변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를 비롯한 여승무원들이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와 성장을 했다고 생각하기에 모두가 할 수 있다 생각한다.

 

― 파업 300일을 넘었다. 처음 파업을 벌였을 때와 비교해 반응은 어떤가?
  많이 낳아졌다. 처음엔 오해와 편견이 많았었다. 꾸준히 알려왔던 점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특히 각계각층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함께 해주기 때문에 저변이 넓혀졌고 KTX 문제가 뭘 의미하는지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기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활발한 홍보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홈페이지와 다른 많은 방법을 통해 노동자로서 같이 살아가는 일반인들이 우리를 이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현재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승무원은 몇 명인가?
  80명이다. 3월1일 파업 초기에는 380명 정도였다. 
      
 ― 많이 줄었는데?
  그게 현실이란 생각을 한다. 마음이 아프다. 승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해서 시작했던 일인데 부모의 반대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간에 포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때문에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아직까지 함께 하고 있는 80명이 더욱 소중하고 남아있는 이들에게 반드시 올바른 댓가와 보상을 받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 부모님들 걱정이 클 것 같은데?
  어떤 부모님들은 너무 지지해주셔서 오히려 승무원 본인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어도 부모님이 끝까지 응원해 줘 버티는 친구도 있다. 반대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지금까지 지켜봐주고 계시다는 것은 우리 선택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투자한 모든 노력의 결실이 맺기를 기다리는 계시는 것이다.

 

― 신정 계획은?
  집안 어른들 찾아뵙고 인사드릴 계획이다. 또, 영화도 보고 그동안 못 갔던 찜질방도 갈까 한다(웃음). 자유롭지 못하단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이번 일을 통해 알았다. 일상적으로 걸어다닐 수 있는 것,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필요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금새 망각할 수도 있지만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 지부장에게 신정 계획을 묻자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영화관과 찜질방에 가고 싶다고 웃었다. 이렇게 맑고 순수한 이들을 투사로 만든 이 시대와 어쩌면 이런 세상을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줘야할 현실이 원망 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