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의 인사권를 이대로 둬야 하는가?
당이 시끄러울 때 이용길 대표와 독립적인 인사위원회와 관련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습니다. 민주적인 당 운영을 위해서는 대표에게 쏠린 인사 권한을 분산시키고, 함께 책임지려면 한 번 더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게 공통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평소 그런 기본적인 일치가 있었기에 대표가 저를 당헌·당규 개정 소위에 추천한 것이고, 저는 흔쾌히 받아 들였습니다.
당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아무개 씨를 비서실장과 대변인에 겸임 발령을 내고, 뒤풀이 자리에서 벌어진 고위 당직자의 폭력 사건을 접한 당원들의 심정은 처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번에는 부대표가 대변인을 겸임하고 있음에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할 말은 해야 된다는 소리를 듣는 저 조차 침묵만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뒷말만 무성할 뿐 검증과 평가의 기회가 없다는 건 진보좌파 정당으로서 비극 아닌가요?
6일 동안 무단결근해도 징계는커녕 시말서 한 장도 쓰지 않는 당, 근무 중 수시로 잠적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탈도 안 나는 근무 기강을 상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작년 총선 무렵 어느 당원이 ‘실명을 공개하고 탈당하겠다’고 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전날 같이 술을 먹었는데 자원봉사자는 출근했으나 상근자는 11시 무렵에나 전화를 해 ‘휴가로 처리하라’는 걸 보고 ‘아무리 월급 적게 준다고 해도 이래도 되는가’며 탄식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공무원은 무한 비판, 상근자는 무한 방치?
작년 마지막 전국위원회 때 서울의 조승현 동지가 전국위원 숫자 조정과 관련한 안을 상정했을 때 1표 차이로 부결되었습니다. 부결 시키려고 현장에서 어느 상근자가 어떻게 뛰었는지 알 만한 사람은 압니다. 이는 중립을 지켜야 할 본분을 망각한 월권으로 비난 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쉬쉬하고 있는 게 우리 당의 현실입니다. 공무원의 이런 문제에 대해 무한 비판을 하는 우리가 내부 문제는 침묵하고 있어도 되는가요?
누구보다 당원들과 접촉이 잦은 부서의 상근자 모두가 특정 정파의 구성원이란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상근자라고 해 자신과 정치적인 견해를 같이하는 모임에 참여하는 걸 막아서는 안 되지만 모두가 한 정파의 회원이라면 문제 있는 것 아닌가요?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임시킨 대표의 인사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 없는 지금의 당헌·당규를 그대로 두는 게 좋은지,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게 맞는지를 묻는 건 매우 어리석은 질문일 것입니다.
당헌·당규는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담아야 한다는 건 진보정당으로서 의무라 보는 게 저의 과한 욕심인지 모르겠습니다. 독립적인 인사위원회가 구성되면 대표의 인사권이 침해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검증과 침해’를 오해하는 것으로 지나친 걱정이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인사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당내 민주주의는 인사권 검증부터
우리 당이 원내 진출하고 지지율이 높아지면 민주노동당 시절처럼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대표의 인사권에 대한 검증 제도 마련을 미루어야 하는지, 지금부터 대비를 해야 하는 게 맞는지 다시 한 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표단이 선출되면 인사위원장인 사무총장이 인준을 받기 전에 당직자 발령을 내는데 이는 명백한 당규 위반으로 홍세화 대표 시절 첫 전국위원회 때 거론 되었고,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공식 사과까지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 바로 잡지 않고 그냥 두면 새 대표는 꼭 한 번은 당규를 위반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대표나 사무총장의 채용과 관련한 권한은 당연히 보장해야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되었는지 검증할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건 중학생도 압니다. 다만 조직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한 두 번 제대로 하자는 것이죠. 노심이 탈당할 때 남은 상근자는 5명입니다. 자기 패거리들만 집어넣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죠.
분당 후 2번의 대표단 선거가 있었고, 인사 발령이 있었지만 당원들이 시원해 하지 않는 건 눈에 보이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당내의 공식적인 목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4~50대 당원들이라면 관리자가 많아 직원 채용 경험이 있거나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당원들의 다양한 경험은 당의 공정한 인사를 검증할 수 있는 충분한 잣대가 되기에 충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를 잃고도 외양간조차 고치지 않는 것이야 말로 더 심각한 문제 아닌가요? ‘인사는 만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의 인사권이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한 번 더 검증하자는 것이지 침해하자는 게 아닙니다. 비록 소는 잃었지만 이번 기회에 외양간만은 튼튼히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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