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당헌ㆍ당규 개정의 알파와 오메가는?

녹색세상 2013. 3. 13. 12:05

 

‘재창당 수준의 당헌·당규 개정’은 이용길 대표의 공약이다. 이는 민주적인 당 운영을 위해 전면적인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2008년 당시 만든 당헌·당규가 문제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인 조직이 정당이니 최소한의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 놓고 나머지를 자발성에 맡겨야 한다는 건 상식 아닌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성서 구절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난 5년 간 문제가 드러난 조항을 바꾸고, 필요한 걸 신설하는 건 당연하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당헌·당규를 검토해 보면 엉성한 조항이 얼마나 많고, 초기 집행부가 당을 임시로 끌고 가겠다는 게 곳곳에 보이고, 우린 너무 믿고 맡겼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을 지킨 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전국위원회에서 의장석을 점거하는 등 추태를 보면서 많은 당원들이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렇게 드러난 문제점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뛰어난 개인의 결단에 맡기거나 방치하지 말고 바꾸어야 한다. 당직 선거에 출마하면서 내 건 공약이 ‘민주적인 당 운영을 위한 당헌ㆍ당규 개정’이라 십 여 차례 넘게 검토해 본 고민을 바탕으로 제안을 하고자 한다. 개인의 경험이라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은 함께 고민하고 채워 나갔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1. 전국위원회 위상 재정립과 의장 선출

 

먼저, 전국위원회 의장 선출과 권한에 관한 것이다. 전국위원회 의장을 대표가 겸임하는 건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은 겸임하지 않고 따로 선출하며, 현재는 통합진보당과 우리만 겸임하고 있다. 전국위원회는 집행기구이기도 하지만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비판 기능이 주요 임무 중 하나이다. 그렇게 하려면 대표가 전국위원회 의장을 겸임하도록 규정한 현행 당헌을 개정해야 한다. 권한과 책임의 분산이란 측면에서도 너무 당연하다.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의장이 회의 진행을 방해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의장만 따로 선출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 아닌가? 조승수 씨가 대표였을 때 통합 논의 안을 무리하게 전국위원회에 상정해도 막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 적어도 당의 진로와 관련해서는 전국위원회에서 제대로 검토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대의원대회 상정할 수 없도록 당헌·당규에 규정해 놓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기회에 전국위원회 권한을 새로 규정하고, 의장을 대표가 겸임하지 않고 따로 선출하도록 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집행책임자인 대표가 의결기구인 전국위원회 의장을 겸하고 있는 건 납득할 수 없다. 평소 알고 있는 대표가 낸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사회를 보는데 반대하기가 쉬운가? 제출한 안건 통과를 위해 현장에서 대화도 하고 설득도 해야 하는데 의장을 겸하고 있기에 그렇게 할 수 없다. 당직 선거과정에서 전국위원 출마자들이 ‘전국위원회 의장 선출’에 관한 공약을 많이 내었기에 상당부문 공감이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2. 독립적인 인사위원회 구성

 

현재 인사위원장은 “당규 제10호 중앙당 집행규정에 대한 규정 제 3장 제10(인사)”에 명시한 바와 같이 사무총장이 맡도록 되어 있다. 즉, 인사위원장까지 대표가 임명하는 것이다. 이런데 대표단의 당직 인사 문제를 제대로 검증할 수 있다고 보는가? 눈 가리고 아옹이란 비난을 듣고도 남을 일이다. 인사에 상근자노동조합(가칭)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독립적인 인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지방자치 단체조차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인사위원회를 구성할 정도로 인사 문제에 관한한 공개해 투명하게 하려는 추세다. 외부 인사 참여 문제는 충분히 토론해야겠지만 원내 정당이 되면 국민의 세금인 정부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게 도리라 본다. 대표의 인사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 당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인사를 다시 한 번 검증하고, 그로 인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독립적인 인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인사위원회는 당직자에 대한 연수(교육)까지 맡는 걸 검토하는 게 좋다. 인력이 제한되어 있는 당의 사정이 아니라 할지라도 3~4년 정도 근무하면 순환 보직을 하는 게 맞다. 특정인이 한 업무에 오래 종사하는 게 효율적일 수도 있으나 관성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상근자 개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근자라면 최소한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서는 논평과 평론을 바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당직자에 대한 수시 교육이나 연수는 필수다.

 

3. 사고 당한 당원에 대한 생활비 지급

 

우리 당의 지지율은 바닥이다. ‘이런 정당은 전술이니 뭐니 잔머리 굴리지 말고 피 터지게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유럽 좌파 활동가의 말이 생각난다. 매우 일리 있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행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당력을 집중해 싸울 수 있는 곳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싸우다 감옥에 가거 다쳐 입원하면 조직이 책임을 져 주기는 하는가? 이와 관련해 우리 당은 아무런 제도적인 장치가 없다.

 

배우자의 경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덜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무리 싸우려는 의지가 있어도 월말이면 날아오는 각종 공과금과 전화 요금 등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전화 요금은 한 달만 늦으면 ‘불이익을 준다’는 문자가 들어와 머리가 복잡하다. 현실이 이러니 몸이 움츠려 드는 건 당연하다. 희망버스와 관련해 감옥 갔다 온 정진우 부대표의 경우 상근을 했기 때문에 적은 급여나마 당에서 지급하고, 당원 중 변호사가 변론을 해 주었으나 상근자가 아닌 당원이 조직의 결정에 따라 감옥 갔을 경우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냥 당원들이 십시일반 모금하고, 무료 변론해 줄 변호사 찾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러고도 우리가 ‘삼성과 대항해 투쟁하는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매우 의문을 갖고 있다면 지나친 편견인가? ‘자본과의 싸움’을 하려면 당장 어떤 어려움이 닥치는지 눈 앞에 선해 아무리 간 큰 사람이라도 망설이기 마련이다. 권력과의 싸움 역시 마찬가지다. 당력을 집중해 싸우는 탈핵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해 해고 되거나 사고로 입원할 경우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다. 명색이 진보좌파 정당이라는 우리가 조직의 결정에 따라 싸우다 감옥 간 동지에 대한 생활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 아닌가? 상근자는 물론이요 비 상근자가 할지라도 조직의 결정에 따라 활동하다 감옥에 가거나, 다쳐 입원했을 경우 민주노총이 정한 그 연령에 해당하는 생활비를 지급하고, 진료비와 변호사 선임과 관련한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4. 중앙과 지역 상근자 순환근무

 

중앙당과 시도당 상근자들이 중앙과 지역을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순환근무를 당규에 명시해야 한다. 중앙당에 근무하거나 수도권의 활동가들 대부분은 지역 문제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중앙당의 문건이나 활동 방식을 보면 지역이 아닌 수도권 말고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건 이용길 대표도 평소 거론하고 있고, 시도당의 상근자 역시 중앙과 전국을 고민하는 게 부족하다.

 

이는 상근자 개개인의 게으름 탓이 아니라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출퇴근이 가능한 충남이나 충북도당을 시작으로 순환 근무를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하는 게 좋다. 경남이나 전남북으로 파견 보낼 경우 열악한 당의 재정으로 인해 주거 문제를 책임지기 매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문제 해결의 답은 늘 현장에 있다’는 건 상식이다. 우리 당의 문제와 해결책은 지역에 있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는 걸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5. 중앙당 상근자의 정무직 최소화

 

현행 당규에 의하면 중앙당 상근자의 모든 실장은 정무직이다. 상근자의 정무직을 최소로 줄여 비서실, 대변인실, 정책실장, 기획실장 정도만 정무직으로 하고, 당의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다른 실국장은 정무직이 아니라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고용을 보장해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야만 위에서 거론한 모든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대표가 바뀔 때 마다 그만 두어야 할지 모르는데 제대로 일할 수 없다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6. 선출직 당직자 연임제한 규정 신설

 

선출직 당직자에 대한 연임 제한 규정이 없다. 시도당지역위원장들이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지만 새로운 인물들이 당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기 위해 ‘선출직 당직자는 1회에 한 해 연임한다’는 제한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통합 논의과정에서 지금은 탈당한 경선 상대는 지역위원장을 4번이나 연임했다. 사정이 이러니 지역 활동에 대해 누가 입을 열기 어려워 문제가 있어도 말하지 않는 분위기가 굳어 있다.

 

우리 당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려면 ‘정치적인 전망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아무리 출중하고 뛰어난 활동가라 할지라도 한 자리를 오래 맡으면 타성에 젖기 마련이라는 건 인간이 가진 분명한 한계임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많은 당원들이 당 활동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당직 출마 기회를 열어주어야 당에 활력이 생긴다. ‘사람이 없다’는 현실만 탓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