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임명은 이명박의 신뢰가 낳은 불행
조현오 신임 경찰청장이 천신만고 끝에 임명되었다. 최소한 ‘김ㆍ신ㆍ조는 안 된다’고 했음에도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무리하게 밀어 붙였다. 한나라당의 홍준표 최고위원은 ‘차명계좌에 대한 자신이 있으니 임명했을 것 아니냐’는 정치인 특유의 애매한 말로 답을 대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을 수사해야 하는 검찰의 속내는 착잡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여당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밀어 붙일 정도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 한명숙 전 국무총리(왼쪽부터), 이용섭 민주당 의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8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노무현재단에서 조현오 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려고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한겨레신문)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야권의 반발에도 조현오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한 것은 여러 가지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인 이유는 ‘도덕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정한 사회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자진사퇴했지만 나머지 분들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충분히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조 청장은 이미 정치적 구설에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조 청장에 대한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나라당의 친이명박계 핵심 의원은 “이 대통령이 대선 무렵 지방에 갔을 때 멀리 있는 조 청장에게 ‘야, 조현오 이리 와 봐’라며 부를 정도로 가깝게 대했다”고 전했다. 조현오 청장이 노무현 정권 때부터 여야 정치권에 보험을 들어 놓았다는 증거다. 조 청장이야 말로 전형적인 권력지향적인 경찰 총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인물이다.
조현오의 앞날은 과연 순탄할 것인가?
하지만 조 청장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논란이 여전히 정치적 활화산인데다 그는 당장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이날 충남 천안 지식경제부 공무원 교육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차명계좌 존부에 자신이 없었다면 고발된 사람을 임명할 수 있었겠느냐”며 차명계좌 논란에 다시 불을 지펴 시정잡배보다 못한 짓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의 첫 단추는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존재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인데, 수사 과정에서 자칫 검찰 조직이 다시 한 번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 표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가장 큰 고민은 노 전 대통령 수사기록이라는 ‘판도라 상자’의 봉인을 뜯을 것 인지다. 검찰로서는 조 청장의 발언이 허위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혀내려면 지난해 ‘박연차 로비’ 사건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상급기관인 대검 중수부의 수사기록을, 이번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검찰 내 일부에선 조 청장이 발언에서 적시한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리기 전날’, 곧 지난해 5월22일에 차명계좌가 나왔는지 여부만 확인하는 것으로 수사를 끝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검찰이 우여곡절 끝에 조 청장의 발언이 허위라고 결론을 내게 되면, 다시 현직 경찰총수를 기소해야 하는 전례 없는 부담을 지게 된다.
▲ 8월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조현오 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제공)
검찰의 수사와 조현오의 운명은?
이는 정권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 결론이 반대쪽으로 난다면 ‘친노’ 인사들은 물론 민주당 등 야당의 격렬한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유시민 씨의 말처럼 “임명되기 전까지는 조현오 개인의 문제였지만 임명장을 준 순간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다.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검찰은 특유의 ‘소걸음 행보’를 보일 전망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6조원대 비자금’을 방송에서 언급한 주성영 의원을 고발된 지 2년이 가까운 최근에 처리한 것과 비슷한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도 고소ㆍ고발장이 접수된 지 2주일 정도 지났지만, 고소·고발인에게 소환 통보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검찰이 조 청장의 수사를 김 전 대통령 수사처럼 무한정 미룰 수도 없다. 민주당과 친노 그룹의 반발로 검찰이 또 다시 정치적 논쟁의 한가운데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정국 상황에 따라 자칫 국정 조사와 특검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바로 수사를 할 수 없고, 마냥 미룰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한편 조현오 청장은 임명장을 받자마자 말썽이 되었던 ‘성과제를 개선해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혀 ‘G20회담’을 비롯한 모든 일을 정권의 입 맛에 맞추겠다는 것을 바로 보여주었다. 인사청문회에서 조차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할 정도니 인권의식이 있을리 만무하다. 퇴임한 강희락 청장마저 “조현오는 쌍용차 진압으로 서울경찰청장이 되었다”고 할 정도니 정권의 하수인 노릇에는 어청수 뺨치고도 남을 인물이다. (한겨레신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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