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유난히 더웠던 1987년 여름을 전두환은 아는가?

녹색세상 2010. 8. 11. 14:17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으로 타 올랐던 6월 항쟁


1987년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고문으로 죽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발표는 웃기는 것을 넘어 국민을 홍어생식기로 아는 짓거리였다. ‘진사규명’을 외치는 시위가 수시로 벌어졌다. 마침내 ‘직선제 쟁취’를 내건 6월 항쟁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연일 시위가 이어지니 두꺼운 방석복을 입은 전경들이 지쳐 버렸다. 옷을 말릴 틈이 없었으니 피부병을 앓는 건 부지기수였다. 거리시위에 나선지 얼마 안 되는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같은 연배인 동지는 용감하게 싸웠지만 초보인 나는 도망갈 길부터 찾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시위대열 뒤에 있던 내 몸이 점점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같이 몸싸움도 하고 사복경찰의 급소를 걷어차는 일도 더러 벌어졌다. 지금도 큰 목소리는 몇 날 몇 일 고함을 질러도 끄떡없이 쩌렁쩌렁 울려 잘 활용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면서 ‘6.29선언’을 하자 시민들의 시위는 누그러졌으나 노동자들의 투쟁은 세차게 불타올랐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며 절규하는 노동자들, ‘우리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자’며 울부짖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최루탄을 덮어 쓰면서도 꼼짝도 하지 않고 외치던 그 모습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떠오른다. 백골단은 먹이를 만난 사냥개 마냥 시위대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같이 나갔던 여 후배들이 다치지 않도록 먼저 대피시키는 게 주 급선무였다. 장소를 옮겨가면서 시위는 계속되었고, 수 없이 쏘아댄 최루탄 냄새는 지독하기 그지없었다.

 


아닌 것에 저항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정당한 권리


6월 항쟁으로 열린 공간을 비집고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울산과 창원에서는 지게차와 중장비를 이끌고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경찰은 진압을 포기해 버릴 정도였다. 모두 불법시위였음은 물론이다. 그 불법시위를 이젠 ‘6월 민주항쟁, 노동자 대투쟁’이라 부르며 역사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세상은 변했다. 권력과 싸울 때 ‘불법 과격’ 운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광우병 정국을 지나면서 많은 촛불시민들이 ‘평화적인 시위’를 말하고 촛불을 들었다. ‘대통령은 국민과 대화하자’고 외치면서 명박산성을 넘는 건 물론이요, 새총으로 쏘는 것 조차 ‘과격하다’며 말렸다. 그 때 나는 ‘지금처럼 싸우면 절대 못 이긴다’며 ‘강력하게 저항해야 한다’고 했다. 촛불시민들과 네티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은 것은 물론이다. 경찰의 물대포에 갈비뼈가 부러지면서도 ‘비폭력’을 외치던 그들에게 ‘지금도 비폭력’이냐고 물어 보면 ‘아니라’고 한다.

 


민주시민이라면 비민주적인 요소에 대해 저항하는 게 권리이자 의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와 전국토를 거들 내는 ‘4대강 파괴’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정당한 권리다. 여기에 합법의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은 불의와 싸우지 말고 투항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로 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틀린 것에 대한 저항이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아서라도 아닌 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아름답다’고 한다. 살인마 전두환ㆍ노태우가 돌아다니는 것은 이 나라의 수치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곳곳에서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유물이 부활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갈아엎으려는 독재의 유전자를 타고 난 자들이 활개를 친다. 경찰의 폭력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백골단은 물론이요 고문까지 부활시켰다. 경찰특공대 병력을 철거현장과 파업 현장에 투입시키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도 투쟁의 수위를 국제화 시켜야 한다. 짱돌을 들고 새총으로라도 무장해야 한다. 올해처럼 유난히 더웠음에도 치열하게 싸웠던 87년 여름이 생각난다.


덧 글: 전두환을 국가 중요 행사에 부르는 걸 모두지 이해할 수 없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안두희 처럼 험하게 마지막을 맞이하는 꼴을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