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기술자 이근안이 그리운 경찰
어떤 이유로도 고문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사라진 줄 알았던 고문이 이명박 정권과 경찰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되었다. 아무리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닦달한 ‘성과위주의 평가가 낳은 병폐’라고 해도 고문한 자들은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들은 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고문을 하지 않았다’며 거짓말로 일관하다 검찰에서 수사를 하자 마지못해 일부만 시인을 했다. 참으로 파렴치한 자들이다. 고문을 해서라도 실적을 쌓아야 한다는 발상을 부활시킨 자들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고문으로 거부하고, 고문으로 얻은 증거는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형사사건에서 고문으로 실적을 쌓은 경찰이 다른 사건까지 고문의 유혹을 받는다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이명박 정권이 실적을 만들어 내라고 강요하는 마당에 고문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고문을 해서라도 빨갱이를 만들고, 사람을 패 죽여서라도 시위진압을 해 실적을 쌓으라는 부당한 압력에 어느 누구도 거부하지 않은 게 경찰 아닌가? 고문사건은 경찰이 자초한 자업자득이다.
시계를 잠시 되돌려 보자. 주먹과 구둣발로 정신없이 두들겨 맞은 뒤 커다란 욕조에 가득 담긴 물에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머리를 쑤셔 박았다. 남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칠성판 위에 눕혀져선 발목부터 가슴까지 혁대로 꽁꽁 묶였다. 이윽고 남자의 전신에 찬물을 끼얹은 뒤, 지지짓~ 거리며 새파란 불꽃을 튀기는 전선을 발가락과 젖꼭지 심지어 성기에까지 끼워 넣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한 한 남자의 처절한 투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문까지 부활시킨 이명박 정권과 경찰
짐승의 시간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죽음의 시간에서 삶의 시간으로 건너오기 위한 발버둥은 참담했다. 남자는 “제발 고통 없이 죽여만 달라”고 애원했고, 그들은 “너 같은 놈 하나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1985년 9월.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 간 김근태 민청련 의장이 꼬박 22일간 당한 물고문과 전기고문의 기록,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 원한다’의 일부 내용이다. 김근태는 살아남았고 국회의원이 된 후 고문기술자를 찾아가 용서까지 했다.
▲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6월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초등학교 여학생 성폭력 사건 현장을 방문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성과주의를 독려해 인권 침해를 불러온 당사자란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 오마이뉴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10년, 군사독재시절의 유물로만 알았던 ‘고문의 악령’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고 있다. 김근태 민주당 고문의 몸을 조각냈던 고문기술자는 일명 ‘불곰’이라 불린 이근안이다. 뭇 사람의 영혼을 파괴한 그는 7년 징역살이 끝에 어설픈 회개와 사죄를 한 뒤 목사가 됐다. 그런 그가 올해 초 자신은 ‘빨갱이를 잡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근안에게 ‘고문의 추억’은 애국의 길이었다. 고문기술자에게 목사 안수까지 준 한국교회는 개망신을 또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며 이제 고문의 악령까지 부활시키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사면위원회)는 2010년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정부가 공포를 이용한 정치를 하고 있다”며 “정부와 권력자가 억압의 도구로 기소와 조사가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한국의 인권상황이 심히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폭압적인 환경에서 벌인 수사 역시 고문이다. 밤을 세워가며 조사하는 검찰의 악랄한 관행 역시 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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