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 상수리나무 위에서 사랑하는 조카에게

녹색세상 2009. 3. 20. 00:45

 

 

사랑하는 조카 태현아 잘 지내니?

아무리 꽃샘추위가 발악을 해도 곳곳에 다가온 봄소식 앞에 밀려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순리’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깨닫는구나. 자주 얼굴 보지는 못해도 명절에는 보곤 했는데 큰 애비가 너희들 못 본지 제법 되었네. 마냥 어리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네가 벌써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 하는데 사정이 있어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난 지금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 작년 말부터 그곳에 지내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이상 아름답고 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지만 그것은 더 아름답고 귀한 일이고. 난 흔히 말하는 농성을 하고 있어. 나와 무슨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 아니지만 ‘옳다는 신념’에 따라 하는 것이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대구의 심장부이자 허파인 앞산을 지키기 위해 달비골 초입에 자리 잡은 상수리나무 위에 작은 성을 짓고 앞산터널 반대 ‘나무 위 농성’을 하고 있어. 나쁜 일이 아닌 정의로운 일이니 너희들을 불러 같이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해야 하는데 여건이 그러지 못해 너희들 볼 낯이 없구나.

 

신약성서를 가장 먼저 기록한 바울은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보고 기뻐한다’고 고백했듯이 아닌 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사회는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더구나. 설사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할지라도 남의 생각을 존중할 줄은 알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하지 않으려 하니 말야. ‘큰 아버지 연세가 몇 인데 그런 거 하시냐’고 걱정하겠지만 지금까지 몸 관리 잘 해 온 덕에 칼바람 몰아치는 엄동설한의 추위도 무사히 넘기고 봄을 맞이하고 있다.

 

한 겨울 추위보다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한 지금의 변덕스런 날씨가 오히려 견디기 힘이 드네. 무엇보다 5분도 안 되는 곳에 오래도록 내 몸을 믿고 맡겨온 주치의사인 후배가 있어 누구보다 조건이 좋은 편이지. 무엇보다 몸이 받쳐주어 이런 일을 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모르는 사람들이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데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하고 있다. ‘우리 몸은 하느님의 영이 머무는 성전’이라고 한 바울의 고백이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왔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단다.

 

▲ 갓 사회생활을 하는 직원들의 손에 작업과 관련한 서류는 보이지 않고 불법 채증용 사진기만 주어져 있다. 우리 자식과 조카들은 ‘난 이런 짓 못한다’고 거부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상수리나무 위로 올라오던 날 후배에게 들렀더니 ‘비상용 처방’을 주면서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오라’며 신신당부를 하더구나. 이런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정성이 있기에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고 믿는다. 난 그저 앞에 서 있을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 없이 도와준 따뜻한 손길과, 틈만 나면 찾아와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는 ‘고마운 마음이 모인 아름다운 교향곡’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나무 위 농성’이라 생각한다. 중학교 때도 온갖 고민 많았을 텐데 너희들 이야기 제대로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나이 든 나 보다 더 완고한 너희 아버지와 싸우느라 고생 많지? 그럴 때 마다 내가 지방 현장에 가 있거나 다쳐서 누워 있는 바람에 온갖 가슴앓이하며 지내는 너희들의 사연을 들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지금까지 너희 형들이나 누나들에게 공부와 관련해 어떤 말을 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같이 발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너희들은 ‘함께 가는 동지’들이기에 몇 가지 당부를 하지 않을 수 없구나. 흔히 평등을 말하면 기본 예의조차 무시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첫째, 무엇보다 ‘예의를 갖추되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말라.’는 말을 먼저 해야겠구나.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이 옳을수록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관철시키기 어렵다는 게 살아오면서 절실히 느낀다. 천하달변이라고 그 사람의 말을 남들이 듣는 게 아니라 진정이 담긴 말을 할 때 듣는다는 것을 알아야 해.


둘째로 ‘복수는 하지 말되 억압에 맞서서 권리를 지키라’는 말은 무엇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 억압에 맞서서 끝까지 싸우며 자신의 권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남들의 권리도 지켜줄 수 없어. 내 권리가 소중하기에 남의 권리도 소중히 여길 수 있다고 믿어.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남을 존중할 줄 모른다는 걸 수 없이 봐 왔어. 그리고 ‘약자의 벗이 되고 정의를 사랑하라.’는 말은 꼭 해야겠구나. 사람을 평가할 때 약자에게 관대한지 강자에게 관대한지를 보면 알 수 있어.

 

무엇을 하던 그 사람 됨됨이는 아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지. 너나 다른 조카들이 약자를 짓밟고 그 위에서 즐기지 않고,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고민하고 있다고 큰 애비는 믿는다. 아무리 살아가기 힘들다 해도 너희 형제는 이 땅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기 집이 없어 해 마다 이사 가야 하는 현실에 그런 걱정 한 번도 하지 않고 살아오지 않았니? 반 가까운 이웃들이 집 문제로 머리 싸매고 걱정하는데 나머지 절반이 행복하다면 그것은 사기나 도둑질이라고 봐.

 

그 행복은 약자인 집 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짓밟고 있는 것이기에 참 행복일 수 없어. 내 말이 지금의 현실에서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불가능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가능한 것도 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봐. 희망을 꿈꾸는 자 만이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 끝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고, 약속한 것은 꼭 지키라’는 당부를 해야겠다. 지킬 자신이 없으면 입에서 꺼내기 전에 아예 담지 말아야 돼. 약속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남들로부터 결코 신뢰를 얻을 수 없어.

 

▲ 주민들의 출동 요청에는 늑장을 부리던 경찰이 건설자본과 대구시의 말 한 마디에 새벽부터 출동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정당성이 없는 경찰력을 ‘공권력’이라 부를 수는 없다. 

 

사랑하는 조카 태현아.

큰 애비는 네가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모르겠으나 옆의 벗을 짓밟아 가면서 살아가는 파렴치한 인간이 아니라 같은 길을 가는 동지로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 믿는다. 지난 20여년 넘게 세상을 바꾸겠다고 고생 다 하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입시 지옥인 현실을 물려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구나. 때로는 비굴하기도 하고 약자를 밟아 가면서 살아가는 게 잘 사는 것임을 네가 더 잘 알거야. 그렇지만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한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구나. 이제 ‘나무 위 농성’ 100일이 가까워 온단다.

 

구체적인 문제를 두고 이렇게 오래도록 싸운 게 처음이지만 뭇 생명들이 살아 있는 이곳에 있으면서 생명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이 깊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끝까지 싸워 이 아름다운 자연을 너희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지금의 고생은 큰 보람인데 그러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서글퍼구나. 태영건설이 벌목작업을 하면서 용역깡패를 동원해 사람을 다치게 하더니, 급기야는 경찰까지 동원하는 별 희한한 일이 다 벌어지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 사회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세상을 너희들에게 물려줄 수 없기에 비록 몸뚱이 하나뿐이지만 마지막까지 저항을 멈출 수 없구나.

 

지금 네가 온 몸으로 앓고 있는 사춘기 갈등과 고민은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확 달라진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아끼는 너희들이 이 땅의 건강한 젊은이로 자라리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나무 위 농성’의 보람이 깊어간다. 오늘 따라 잘려나간 숲의 울음처럼 비바람이 많이 불어 상수리나무 위에 자리 잡은 작은 성이 더 심하게 흔들리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주어질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너희들이 있어 마무리 잘 하고 내려가도록 하마.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에서 큰애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