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 달비골을 벗어나 주말 외박을 다녀와서

녹색세상 2009. 2. 15. 22:05

어제는 토요일 전교조에서 ‘나무 위 농성’ 당번이라 아침 먹자마자 청소에다 이부자리 일광 소독을 하는 등 부산을 떨었습니다. 처음 올라오는 사람에게 지저분하게 해 두고 갈 수는 없어 정리를 하고 덕분에 대청소도 하는 셈이죠. 2군데 진료 예약과 동영상 개인지도를 받으러 가도록 준비하고 시간 여유있게 미리 기다렸더니 ‘좀 늦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제 기준으로) 좀 늦는다는 것은 2~30분이려니 생각하고 기다렸으나 2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취소시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리 연락을 줘 몇 시간이라도 지킬 사람을 찾아 놓았으면 좋았는데 그러지 못해 조금 아쉽더군요. 모든 일정을 접고 한나라당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사건에 필요한 자료를 출력하러 갔습니다. 급한 약은 주치의사인 후배에게 연락해 챙겨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런저런 마음의 병을 앓으면서 불면증에 시달린 지 만 5년이 되었습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하기 좋은 말로 ‘마음 편하게 먹으면 된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된다면야 이렇게 오래도록 고생할 이유가 없지요. 병이니 치료를 하고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주치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어떤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요. 5년 넘게 시달리면 큰 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를 모르는 천박성을 드러내는 증거지요. 대수롭지 않은 듯이 하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 익숙해질 법도 하련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던지는 말에 상처는 차곡차곡 쌓여 어느 날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 사고가 간혹 벌어지곤 합니다.


어지간하면 그런 말 나오기 전에 아예 피해버리는데 피할 곳이 없을 때는 다른 방도가 없으니 한 판 일전이 벌어집니다. 일정 3개를 접어야 하니 그 스트레스 또한 보통이 아닙니다. 할 것은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탓에 ‘대충 포기하라’는 말이 그리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할 것 하고 못하는 것은 못 한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 처음 보는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더 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명확한 게 좋다’는 게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더 굳어진 삶의 방식이라 그리 쉽지 않더군요. 어찌 보면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이라고나 할까요.


‘사물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노력하지 억지로 하는 것은 접어버렸더니 내가 편하고 좋더군요. 편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마치 안 편한 것만 골라서 하는 것으로 오해할 때는 난감하기 그지없지요. 거기에다 술 만 들어가면 모든 게 풀리는 사람을 만나 또 시달렸더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습니다. ‘범 피하려다 여우 만난다’는 속담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더군요. 안 그래도 열 받아 있는데 맨 정신도 아닌 술 취해 긁어대니 그야말로 뚜껑이 팍 열려 폭발할 뻔 했는데 옆에 있는 분의 재치로 고비를 넘겼습니다. 상대의 철학과 가치관을 모르면서 술 취해 마구 말을 던지면 상처 받는다는 걸 모르는 가 봅니다. 덕분에 이래저래 수양 잘 한 1박 2일이었습니다. (2004년 2월 15일 ‘나무 위 농성’ 64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