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성모병원 투쟁 37일째…“우리와 한 번만 눈을 맞춰주세요”
“저기 새 병원 건물 보이시죠. 2006년 저희들이 파견직으로 바뀔 때부터 세워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거의 완공을 앞두고 있는데,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짜내서 지어진 건물이에요. 저렇게 큰 건물을 또 짓는데 저희가 일할 공간은 없어요”
▲12월 완공예정인 서울성모병원 건물 앞에 서있는 이영미 조합원 대표 (사진=손기영 기자)
23일 오후에 만난 이영미 보건의료노조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 대표는 농성천막 옆으로 보이는 새 병원 건물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남성모병원을 운영하는 가톨릭 중앙의료원(CMC)은 오는 12월 완공을 목표로 병원부지 안에 서울성모병원을 짓고 있다. 이 대표가 서 있던 농성천막 앞에는 ‘투쟁 37일째’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9월 17일부터 '해고 철회,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간 강남성모병원 간호보조 비정규직 노동자 28명은 지난 2006년 10월 병원 측이 이들을 ‘파견직’으로 전환한 지 2년째가 되는 지난 9월 30일 계약해지 되었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동안 병원 행정동, 본관 로비에 천막을 치며 농성을 벌였지만, 용역깡패와 구사대원들의 침탈에 현재는 병원 본관 옆에 ‘세 번째 농성장’을 마련한 상태이다. 28명의 해고자 중 8명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사랑과 봉사 …그러나 여러분들을 위한 대책은 없다"
병원 주변에서는 가톨릭 수녀들과 신부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민중가요를 틀고 선전을 벌이고 있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냉소적인 표정으로 바라보며, 농성장을 무심히 지나갔다.
“여기서 일할 때, 항상 병원에서 ‘가톨릭 정신’을 강조했어요. 사랑과 봉사 그리고 공동체 정신…. 이런 말들이었죠. 하지만 ‘여러분들을 위한 대책은 전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행정부원장 신부, 수간호사들을 시켜 농성 중인 저희들을 쫓아낸 병원 고위직 수녀의 모습은 성직자의 탈을 쓴 자본가의 모습 같았어요.”
이영미 대표는 자신의 억울한 심경을 말하는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자신을 ‘일회용품’처럼 취급한 병원 측의 만행이 자꾸 생각나는지 분노를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이 대표는 농성천막 안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의 옆에는 '우리는 일회용 주사기가 되기를 거부한다'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간호보조 업무를 하면서 주사기들을 정리하는 일도 했는데요, 일회용 주사기의 유효기간은 3년이에요. 3년이 지나면 주사기의 소독처리가 날아가서 이 주사기를 쓰면 위험하죠. 하지만 저희들은 일회용 주사기만도 못하나 봐요. 유효기간이 2년밖에 안 되잖아요. 저희들을 2년 넘게 쓰면 위험하나 봐요.”
▲농성장 앞에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차판매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일회용 주사기 유효기간은 3년, 비정규직은 2년
오후 1시 반, 농성 중인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을 맞아, 병원 구내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에는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 간호사들 그리고 수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박정화 조합원은 주변을 잠시 살피더니 웃음을 지었다.
“구내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올 때, 가끔 병원 인사팀장하고 마주쳐요. 오늘은 안 온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인사팀장을 피하려고 일부러 멀리 앉아서 식사를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옆에 가서 같이 밥을 먹고 싶어요. (웃음) 마음에 들어서 같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저희를 가시 같은 존재로 보니, 가시 같은 저희들이 인사팀장을 ‘톡톡’ 찌르면서 혼내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식당에 있던 병원 직원들은 주변을 지나면서 이들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또 멀찌감치 앉아 식사를 했다. 박정화 조합원은 “다 이유가 있고 이해를 해야 한다”며 넉살웃음을 지었다. 박씨의 표정에는 서운한 기색은 볼 수 없었다.
“아침마다 병원 주변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어요. 유인물도 나눠주고, 서명운동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보는 눈들이 있어 직원들이 유인물을 받거나 서명하는 것을 어려워 하세요. 그런데 마음 속으로는 저희들을 지지하고 있어요. 그걸 드러내놓고 하기 힘든 것뿐이죠. 주머니에 슬쩍 유인물을 챙겨주면, 몰래 화장실에 가서 읽어보는 직원들도 있어요.”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바쁘게 다시 농성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2시 반부터 진행될 ‘병동 선전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농성천막 한편에서 직원들에게 나눠 줄 유인물을 챙기고 있던 천성자 조합원은 커피 한 잔을 기자에게 건네며, 말문을 열었다.
“처음에 병동에서 선전전을 할 때는 병원 측에서 방해를 많이 했어요. 인사팀장하고 인사팀 직원들이 저희들을 따라다니면서 선전전을 막으려고 했죠. 또 기자들이 선전전에 동행하면 사진촬영을 못하게 제지하기도 했어요. 지금도 병원 보안과 직원이 병동 선전전을 하는 저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죠.”
▲병동 선전전을 벌이고 있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노동자들 (사진=손기영 기자)
이영미 조합원 대표, 박정화 천성자 박종묵 조합원이 선전전을 위해 병원 본관 안으로 들어갔다. 조합원들은 병동을 돌며, “안녕하세요. 또 왔어요. 저희와 눈을 한 번만 맞춰주세요. 29일 병원장과 면담이 잡혔어요.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의사, 간호사 등 병원 직원들은 다른 일을 하면서 이들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했고, 유인물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병동 선전전을 하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메아리 없는 외침’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몇몇 직원들은 주변을 잠시 살피며, ‘눈인사’를 짧게 건넸고, 한 청소용역 직원은 이들을 복도 끝으로 데려가 “자네들 때문에 힘이 난다”며 격려하기도 했다. 일부 직원들의 응원에 천성자 조합원은 “다른 때와는 달리 반응이 왜 이렇게 좋지”라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동료 조합원들과 함께 병동을 돌고 있는 박종묵 조합원은 자신을 향한 카메라 셔터가 쑥스러운 듯 연신 피켓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는 농담이 섞인 어조로 자신이 농성장에 남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솔직히 계약해지를 당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했죠. 그런데 9월 29일 얼떨결에 농성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30일 집회에 참여했죠. 이후 ‘아줌마 공갈단(박정화, 천성자 조합원을 지칭)’이 저를 협박해 여기에 남게 되었죠.(웃음) 솔직히 딱 한 달만 있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이 안 들어요. 아줌마들이 얼마나 고생하는데…. 끝까지 여기 남아 투쟁할 거예요”
2시간 가까이 병동 선전전을 벌인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잠시 쉴 틈도 없이 이날 저녁 7시부터 농성장 앞에서 열리는 집중 촛불문화제 준비에 들어갔다. 이날 조합원들은 시민들과 함께 강남성모병원 문제를 알리는 연극을 공연하기로 했다. 병원장, 수간호사, 용역깡패, 인사팀장, 보안과 직원…. 조합원들은 병원에서 자신들을 탄압하는 사람들의 이름표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악역'은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맡기로 했다. “내가 당한 것도 소름끼치는데, 어떻게 그 놈들이 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못살게 굴어…. 아무리 연극이라도 그 놈들 역할은 내키지 않아.” 매직 뚜껑을 닫은 천성자 조합원의 입에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답을 내 놓지 않으면 향후 공신력 추락은 물론이려니와 대내외적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을 죽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기 때문이다. (레디앙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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