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합동수사본부가 여공작원(간첩) 사건 발표를 하더니, 경찰은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원로 경영학자인 오세철 박사를 비롯한 노동운동가 등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회원 7명을 긴급체포했다.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의 ‘이적단체 구성ㆍ찬양및 고무ㆍ국가변한 선동 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했으나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되어 일단 풀려났다. 국가보안법에서 ’적‘이라 함은 북한을 뜻하는데 공개 단체인 사노련은 공개적으로 북한을 비판했다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안다. 유엔까지 ’폐지권고‘를 한 국가보안법의 낡아빠진 틀로 재단해 이적단체 찬양ㆍ고무죄를 뒤집어씌운 것은 지나친 억지다. 더구나 오세철 박사는 예전부터 공공연하게 북한을 비판해 온 사람이다.
경찰은 사노련이 ‘광우병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도 문제 삼았다. 구성원도 얼마 안 되는 공개 단체를 이적으로 몰아 국민들의 거대한 뜻이 모인 촛불집회를 빨간색으로 덧칠하려는 짓이라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가장 기본권인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자 촛불을 든 국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사노련이 사회주의를 표방한 것이 이적행위라는 경찰의 주장은 1980년대부터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밝히고 공개적으로 활동해 온 오세철 박사를 가만히 두다 뒤통수를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알고도 방치했으니 공안기관의 직무유기임에 분명하다. ‘밥 먹고 세금 축 낸다’는 말을 듣는 대공경찰이 잘못 이해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란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자유로운 활동도 보장하는 것이고, 그게 대한민국 헌법정신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런 것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편협하지 않고 국민들의 민주주의 수준은 매우 높아졌다. 사회주의를 내걸었다는 이유로 잡아 가두려는 것은 유신독재와 전두환ㆍ노태우 군사독재 정권 시절로 되돌리려는 ‘신공안정국 조성’에 다름 아니다. 이는 헌법에 명시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훼손하는 위헌 행위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공안정국 조성 기도는 최근 이명박 정부의 강경 일변도의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촛불 민심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했던 정부가 얼마 전부터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강경일변도의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국사회를 이념적으로 분열 시키려는 북한의 시도’에 대한 대비책 마련까지 강조한 것은 검찰ㆍ경찰ㆍ국정원ㆍ기무사 같은 공안기관의 ‘충성경쟁수사’로 이어지는 것은 뻔한 이치다.
촛불집회에서 연행한 시민들 수사가 아닌 공안부서에서 조사하고, 인터넷에 글 올린 군인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사하는 등 무리한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세금 축 낸다’는 비아냥을 상쇄시키고 자기 조직의 필요성을 부각 시켜려는 공안기관의 실적 경쟁이 가짜 빨갱이도 만들었던 얼룩진 과거사였다. 그런 공안기관이 국민들의 비판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이명박 정권의 눈치를 보다 다시 국가보안법을 들이대어 신공안정국 조성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사노련 사건 관련자 전원에 대한 법원의 영장 기각에서 보듯이 이런 낡아 빠진 시도는 당장 중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엔 가입국이 유엔으로부터 ‘폐지권고’를 받은 ‘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붙들고 있는 것은 국제적인 망신이다. ‘범불교대회’날 발표해도 국민들은 까딱하지 않고 있다. 공안기관의 약발이 안 먹힌다는 명백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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