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어청수의 운명은 어디로?

녹색세상 2008. 8. 28. 21:09
 

인권ㆍ여성ㆍ시민단체에 종교계ㆍ정치권까지 “어청수 파면하라!”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퇴 여부가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촛불정국부터 시작된 어 청장에 대한 각계의 사퇴 요구는 청와대와 불교계의 갈등 국면을 맞으면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어 청장은 촛불집회에 대한 과잉ㆍ폭력 진압에 이어 동생의 성매매 업소 운영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인권단체는 물론 여성계로부터도 사퇴 압력을 받아왔다. 경찰청이 일선 경찰관들에게 ‘전통적인 정부 지지 세력을 복원하기 위한 방안을 수집하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이 드러나면서는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권으로부터 줄곧 표적이 돼 왔다. 어 청장의 사진이 조용기 목사와 함께 ‘경찰 복음화 금식 대성회’ 광고지에 실리고 경찰이 조계종 지관 스님을 불법 검문하는 등 불교계와의 갈등이 끊이지 않자, 결국 여권 일각에서도 어 청장에 대한 문책론이 나왔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기동본부에서 열린 ‘경찰관 기동대 창설식’에서 경찰관 기동대장들에게 기를 전달하고 있다. 백골단을 부활시킨 장본인이다. (사진:오마이뉴스)

 

오래전부터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을 비판해 온 불교계가 어 청장의 파면을 정면으로 요구하고 있는 이상, 여권으로서는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박희태 대표는 지난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어 청장이 특정 종교에 편향적인 자세가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상황을 수습하려면 어 청장에 대한 책임 있는 조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느냐, 이게 나라에 충성하는 일도 아닌데 왜 쓸데없는 일을 해 말썽을 피우느냐”고 강한 불쾌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까지만 해도 어 청장의 경질이 불교계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이날 회의 내용은 김장실, 신재민 문화부 1, 2 차관에 의해 청와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어청수 청장에 대한 경질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박희태 대표의 어 청장 경질 요구에 대해 “전혀 논의된 바도, 거론된 바도 없다”며 “왜 그런 얘기가 당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박 대표는 27일 KBS 라디오에 출연, 어 청장 경질론에 대해 “내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어려우니 이해해 달라”며 한발 물러섰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나서서 불교계에 사과입장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경찰청장이 불교계를 방문해 사과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이 마저도 없던 일이 되면서 오히려 불교계의 반감만 부풀린 꼴이 됐고 말았다. 이젠 사과할 시기를 놓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월 5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승리선언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벌이던 중 종로경찰서 앞에 모여 어청수 경찰청장의 죄명이 적힌 ‘수배전단’을 들고 즉각 파면과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청와대의 어청수 감싸기 왜?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쇠고기 파동의 책임을 지워 청와대 2기 개각을 단행하면서도 어청수 청장을 남긴 것이나 불교계와 정치권의 경질 요구를 외면한 채 ‘똥고집’을 부리고 있는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어 청장은 이 대통령과의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 청장은 1992년 서울 강남서 정보과장 재직 시절 당시 민자당 비례대표 의원이던 이 대통령을 처음 만난 교분을 쌓았다. 당시 어 청장은 이 대통령에게 비례대표 대신 서울 종로와 같은 큰 지역구에 가서 정치를 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대통령이 종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할 당시 어 청장은 종로서 정보과장으로 옮겨와 이 대통령과 인연을 이어갔다.


지난 2000년 서울 은평경찰서장 시절에는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전 의원(서울 은평을)과도 친분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후 이재오 의원과 깊은 인연을 맺었고, 이 의원은 대선 직후 차기 경찰청장 인선 과정에서 어 청장을 강하게 추천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참여정부에서 3차례에 걸쳐 지방청장을 지내는 등 소위 ‘잘 나가던’ 어청수는은 새 정부의 경찰청장으로까지 발탁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 측은 그의 인선 배경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과 불법 집회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강조해온 이명박 당선인의 지론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사과는 물론 어 청장에 대한 경질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채 ‘시간을 좀 갖고 지켜보자’며 불교계와의 냉각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불교계 역시 20여만 명이 참여한 ‘범불교도대회’를 통해 정부 측에 강력한 의지를 전달했다고 보고, 추석 전까지는 추가조치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의 조치가 미흡할 경우 시민단체와 연대투쟁에 나서는 것은 물론, 지역에서부터 순차 집회를 열어 대정부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거기에다 야권은 정기국회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의 종교적 편향성을 문제 삼아 공세를 한층 강화할 태세다. 당장 다음 주 부터 본격적인 상임위 활동이 시작되는 가운데,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어청수 청장 사퇴 문제 등을 둘러싸고 여야 간 격돌이 예상된다. 인권ㆍ시민단체는 물론 불교계와 정치권 등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는 어청수 청장의 운명이 향후 국정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 변수라는 점에는 이견을 달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