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장교와 내연관계…빼돌린 정보 기밀은 없어
탈북자로 가장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이 군 장교들과 사귀며 정보를 빼내 북한에 건넨 혐의(국가보안법의 목적수행 등)로 구속 기소됐다. 탈북자로 신분을 위장한 첫 간첩 사건인데다,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소재를 알아내려 했다는 진술도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수원지검과 경기경찰청ㆍ국가정보원ㆍ국군기무사령부로 구성된 합동수사본부는 수도권의 미군부대 사진과 한국군 장교들 인적사항, 탈북자들의 명단을 북한 쪽에 넘긴 혐의로 원정화 씨를 구속기소했다고 27일 밝혔다.
▲ 김경수 수원지검 제2차장검사가 2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회의실에서 탈북자 위장 간첩 혐의를 받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 원정화 씨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겨레신문)
원씨가 공작원임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그와 교제해 온 육군 대위 황아무개씨, 북한 고위직 출신으로 중국의 북한 보위부 조직과 접촉한 혐의로 원씨의 계부인 김아무개(63)씨도 구속됐다. 합수부는 원씨가 2001년 10월 조선족으로 위장한 채 한국 남성과 결혼해 국내에 들어온 뒤 국정원에 탈북자라고 신고했다고 밝혔다. 원씨는 2002년~2006년 중국을 14차례 방문해 ‘대북 정보요원 살해, 국정원ㆍ하나원 위치 파악, 군 장교 포섭, 황장엽 씨 소재 파악’ 등의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 기간에 북한도 세 차례 드나들었다고 진술했다.
합수부는 원씨가 2005년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군인들을 소개받고, 군부대에서 안보강연을 하며 알게 된 황 대위 등과 만나며 부대 위치 등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합수부는 김씨가 북한 쪽에 넘긴 장교들 명함에 적힌 전자우편 주소가 중국에서 해킹당한 흔적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합수부는 또 “원씨가 1999~2001년 중국 연길·훈춘 등지에서 탈북자 100여명과 한국인 7명을 북한으로 납치하는 활동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합수부는 원씨가 말한 인물들 가운데 사업가 윤아무개씨가 중국으로 출국한 뒤 실종된 것까지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3년 전 혐의 확인하고도 뒤늦게 구속기소 ‘의문’
그러나 계부 김씨는 살해 지령을 받았다는 대북 정보요원 2명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어 암살하지 못했고, 황장엽 씨의 거소도 파악하지는 못했다고 합수부는 밝혔다. 원씨는 국정원과 탈북자 심문ㆍ교육 기관인 대성공사 및 하나원, 일부 부대 위치 정보를 북한 쪽에 넘겼지만, 중요 군사기밀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어 의문이 간다. 부대 위치나 군병력 이동은 인공위성으로 수시로 확인이 가능한 것이라 기밀이라고 볼 수 없다. 황 대위는 원씨가 공작원임을 알고도 군 안보강사로 나선 탈북자 명단을 제공하는 등 간첩 활동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으나 어느 장교가 그런 짓을 할지 역시 의문이다.
원 씨의 계부 김 씨는 누나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의 사돈으로, 고위직을 맡고 있다가 2006년 탈북한 뒤 북한 쪽과 다시 접촉해 간첩 행위를 했는지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한편, 당국이 3년여 전 간첩 혐의의 꼬리를 잡고도 이제야 구속기소해 의문점도 생겨나고 있다. 경찰 등은 2005년 5월 내사에 들어가 그가 중국 심양의 북한 영사관을 출입하거나 공작금을 주고받은 사실 등을 확인했다. 군 당국은 지난해 원 씨가 군 안보강연에서 “북핵은 자위용”이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며 강연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원 씨가 공작원으로서 대담한 발언을 하고 다녔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도 아닌데 기밀 유지가 어려운 합동수사본부까지 꾸려 간첩 사건을 수사했다는 것 역시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전날은 오세철 교수를 중심으로 한 사노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밝히고, 불교계의 종교편향에 항의하는 ‘범불교대회’가 열리는 날 서울중앙지검까지 와서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등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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