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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모델 차별할 만큼 미스코리아가 대단한가?

녹색세상 2008. 8. 13. 16:02
 

‘출세ㆍ생존조건’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외모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가 처음 열릴 때 언론보도로나마 접하며 느낀 청량감이 떠오른다.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의 지지자이고, 한편으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스코리아 대회를 폐지하자는 사람은 아니다. 어떤 것에 반감을 가지는 것과 그것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비판자들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외모지상주의를 북돋는 주요 동력은 미스코리아 대회 수상자나 주최 측보다는 그 대회에 쏠리고 몰리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있다. 그런 면에서 대회를 지상파 텔레비전에서 몰아낸 것으로도 상당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 미스코리아 미로 뽑혔다가 수상자격이 박탈된 김희경 씨. 수영복 위의 치마만 벗으면 비키니모델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미모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연예인들이 날갯짓을 하면 온 사회가 S라인과 V라인의 태풍에 뒤덮인다. ‘원더걸스’ 소희나 ‘브라운 아이드 걸스’ 가인이 받는 각광은 미의 다원화와 개성의 분출을 증명하는 한편으로, 외모지상주의가 더 넓은 폭으로 견고해지게끔 교묘히 작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외모지상주의를 우려한다고 해도, 빼어난 외모를 향한 추앙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반대자들도 미모를 향한 추앙 자체가 아니라, 그를 기준으로 세워지는 서열을 비판하는 거 아닐까? 지식인이 미인보다 더 윤리적이라거나 지식이 미보다 사회에 더 효용이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지식이 노력의 결과인 반면 미는 그저 얻어진 상속물’이라는 설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유권자가 더 나은 정치인에 투표하여 그를 당선시키고 소비자가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고르듯, 미인을 선발할 수도 있고 나아가 직종에 따라서 또는 심사자의 필요에 의해 미모가 합격이나 돈벌이에 기준이 된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미모를 향한 추앙이 존재하는 한, 그에 발맞추는 쪽도 늘 생기게 마련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미모로 인해 차별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공부를 잘하지만 얼굴이 못생겼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특히 그가 여성이라면 ‘연애 시장’은 물론이고 ‘취업 시장’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에도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예쁘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몇몇 연예인들도 곧잘 ‘멍청하다’, ‘머리가 비었다’는 공세에 시달린다. 어쩌면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친다는 묘사는 한국사회에 그리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외모는 시쳇말로 ‘스펙’이라고 부르는 ‘출세와 생존의 조건’에 철저히 예속된 하나의 부속품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모토도 실상 ‘예쁜 게 최고야!’와는 꽤 거리가 있다. 마치 기여 입학제를 도입한다는 사립대학이 기부금 말고도 고교 내신 성적이나 학생집안의 사회기여도까지 검토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스코리아 대회도 지성과 교양까지를 아울러 수상자를 뽑는다는 걸 뽐낸다.

 

  ▲ 이 정도 노출의 사진이 문제가 될 정도로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가 비노출증에 걸려 있단 말인가?


누드화보 찍었단 이유로 자격 박탈당한 미스코리아

  

주최 측인 한국일보사는 미스코리아를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고 환경을 지키며 어린이를 보살피는 한국의 대표사절’이라고 정의한다. 그렇지만 이 대회가 참가자의 평화운동, 환경운동, 보육활동 경력을 따져 입상과 순위에 반영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질문은 매끄러운 언변을 테스트하고 그의 아름다움이 최소한 백치미는 아님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친다. 그렇다면 무엇이 준거가 될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대회의 수상자들, 특히 최고 수상자들 중에는 수도권 지역 대학교를 다니는 여학생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서울예선의 수상자가 전국본선의 수상자로 굳어지는 경향도 강하다.


세상의 흐름상 그들의 가정환경 또한 부유할 확률이 높다. 대회가 은밀히 귀띔하는, 그러나 아주 실질적인 모토는 대충 이런 게 아닐까? ‘재색 겸비한 최고의 스펙녀를 가장 좋은 혼처’로 또는 ‘얼굴도 예쁘고 지능도 빼어난 연예인 탄생’(물론 연기력이나 가창력은 보장할 수 없다). 미스코리아대회 심사위원들은 11일 긴급회의를 열어 누드모델 논란을 빚은 2008 미스코리아 미 김희경 씨에 대한 자격을 박탈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 벌어진 사건은 위선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의 누드화보가 세계평화를 깨트리거나 환경을 파괴한 것도 아니고, 화보가 어린이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쳤다고 보기 힘들다.


더욱이 주최 측은 ‘성의 상품화’를 들먹이며 자격박탈을 합리화할 처지도 못 된다.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똑같은 색깔의, 그것도 예전보다 더 얇아졌다는 의혹을 받는 수영복을 입혀 무대에 세우지 않았는가. 차라리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대회에 프로의 참여는 반칙이다”라고 주장한다면 몰라도. 게다가 주최 측이 이미 누드화보 촬영 사실을 인지했다는 김희경 씨의 증언이 진실이라면, 그들이야말로 심사의 자격을 박탈당해야 한다. 철학적 심미성은커녕 야트막한 통속적인 아름다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새삼스럽고 촌스러운 결정을 내린 이 대회로부터 '미의 대제전'이라는 수식어도 박탈해야 할 것 같다. 정말 치사한 짓이다. 자기 옷도 마음대로 벗을 자유조차 없는 곳이 대한민국이란 말인가? (오마이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