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에서 호연한 수애는 데뷔 당시 ‘제2의 정윤희’라 불렸다. 이목구비 등 전반적인 얼굴 모습이 정윤희와 상당히 흡사했기 때문이다. 지금 세대에게는 낯선 정윤희는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의 아이콘이었다. 여러 영화에서 주연배우로 활약했고 특히 아무거나 걸쳐도 예쁜 몸매와 화장 안해도 예쁜 그의 얼굴은 당대에 함께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언(?)하는 바다. 60년대를 장악했던 여배우 김지미를 전형적인 동양 미인으로 꼽는다면 정윤희는 현대적인 미녀 배우로 일컬어졌다. 모 제과의 빙과류 모델로 처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정윤희는 남녀 모두가 반할 만큼 예뻤다. 지금으로 치자면 김희선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초기 영화에서 정윤희는 예쁜 얼굴만큼의 연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로맨스영화에서 멜로영화까지 다양하게 출연했지만 연기는 다소 뻣뻣했고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이 실리지 못했다. 입술 사이로 살짝 혀를 내미는 CF적인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처럼 돼있었다. 이에 비해 수애는 정윤희보다는 얼굴에 ‘드라마’가 많다. 데뷔했을 때 수애를 보고 한 영화평론가가 “어린 배우가 얼굴에 사연이 많네”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준익 감독이 <님은 먼 곳에>에 수애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수애에게는 모성의 DNA가 있다”는 표현을 했는데, 평론가가 말한 것과 같은 느낌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수애에게는 동세대 배우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멜로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정윤희가 당대의 다른 여배우에 비해 현대적인 분위기가 강했다면 반대로 수애에게서는 신세대 배우들이 가지지 못한 고전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님은 먼 곳에’ 언론시사회 자리에서 수애가 자신이 이 영화에 캐스팅된 것은 “외모가 촌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말해 한동안 ‘수애망언’이 인기 검색어가 1위를 차지했는데, 수애가 말한 촌스러움이란 세련되지 못하거나 예쁘지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멜로적인 또는 고전적인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으면 될 것이다. 만약 수애가 70년대 정윤희가 주연했던 영화에 출연했다면 외모상의 분위기로는 맞춤인 듯 잘 어울렸을 것이다. 또 만약 정윤희가 수애 주연의 드라마 ‘9회말 투아웃’에서 말괄량이 홍난희 역을 맡았더라면 그 역시 썩 잘 어울렸을 것이다. 정윤희는 요즈음의 트렌디 드라마 주인공으로 캐스팅돼도 조금도 꿀릴 것 없는 현대성을 지니고 있다.
비슷한 점은 정윤희와 수애 모두 외모로 인식된 것이 먼저였고 서서히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점이다. 정윤희는 수많은 현대물에 출연했지만 별로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당시 소설 원작을 영화화하는 붐을 타고 만들어진 문예물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1)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수애는 아직 많지 않은 필모그래피 속에서 <가족>에서의 연기가 좋은 평을 받았고 이번 영화 <님은 먼 곳에>에서는 단독 주연을 맡아 자신의 얼굴에 가득한 드라마를 여러 색으로 펼쳐 보이고 있는 중이다. 정윤희는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이미 은퇴를 했고 수애는 이제 막 연기의 물이 오르기 시작한 배우라서 두 배우의 연기 색감이나 질감을 견줄 수는 없다. 하지만 30여 전 정윤희라는 영화 아이콘이 일부는 보완되고 일부는 변주되어 수애라는 여배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이는 한국영화 여배우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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