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금강산 총격사건, 길을 끊어서는 안 된다.

녹색세상 2008. 7. 14. 14:40
 

“시어미가 오래 살자니까 며느리가 방아동티에 죽는 걸 본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오래 살다 보면 별꼴 다 본다”라는 말이다. 내가 오래 살다 보니 정말 별일 다 본다. 전신과 교통의 발달로 지구촌이라고 할 만큼 세상이 좁아지자 별별 보도가 나를 놀래게도 하고, 당혹스럽게도 한다. 뉴욕 금융가의 주가에 우리 주식시장이 춤을 추고, 석유시장의 유가에 따라 강원산골 주유소의 유가가 날로 달라지는 현실이다. 지난 11일 새벽에 금강산 관광특구 군사지역에서 북한군 초병의 총에 맞아 남녘 관광객이 사망했다는 보도는 겨레의 한 사람으로, 생전에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열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간 당혹스럽지 않다.

 

  ▲ 여덟 명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상팔담(사진:오마이뉴스)

 


7월 12일부터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다고 하니, 애써 닦아 놓은 금강산 길이 하루아침에 다시 끊어지는 것 같아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철옹성 같은 이 금강산 길을 열기까지는 강원도 통천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인간 승리적인 노력이 있었다. 아버지가 소 판 돈을 훔쳐 서울로 올라간 소년이 반세기가 넘어 소 1000마리를 몰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휴전선 철조망도 감동하여 뚫렸다. 이 감동 드라마는 모든 겨레를 울려 마침내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행 바닷길이 열리고, 2003년 2월 21일 금강산 육로 시범버스가 휴전선 철조망을 넘었다. 어느 정치인도 못한 일을 그는 해냈다.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그에 삶에 대한 평가는 달리한다면 남북육로를 뚫은 노력만은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