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신부님, 저는 촛불을 들고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녹색세상 2008. 7. 4. 16:44
 

정의구현 사제단에게 보내는 한 인권활동가의 편지


시청광장을 되찾아 주신 신부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이명박 정부는 광속보다 빠르게 한국사회를 20여 년 전의 공안정권으로 되돌려 놓고 있습니다. 밤샘 시위의 피곤함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대국민담화가 발표된 지난주 일요일 정말 입술이 바짝 바짝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다시 거리로 나갔습니다. 거기엔 일부 언론들의 말하는 분노와 폭력으로 범벅이 된 시위대가 아니라 근심과 걱정 그리고 결코 촛불을 멈출 수 없다는 결연한 시위대가 모여 연좌를 통한 저항을 하고 있었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던 저는 새벽까지 거리를 돌며 저항하던 시민들이 경찰에 강제연행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광장에서 다시 촛불을 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의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가 시청광장에서 성사됨으로써 김인국 신부님의 표현대로 ‘9회말 역전 홈런’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촛불을 정리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는 9회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신부님들은 경찰에 쫓기던 시위대의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지난 3일까지 세 번의 시국미사가 있었고 ‘헌법1조’가 울려 퍼지는 장엄하고 신나는 미사집회였습니다. 신부님들은 시위대에게 다시 촛불을 들 수 있는 기운을 북돋아 주셨고 시청광장에 단식농성장까지 만들어서 다시 촛불광장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저희 인권활동가들은 신부님들의 행동에 깊은 감사와 연대의 박수를 보냅니다.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 운동 등 인권이 위협 받을 때 현장에서 늘 함께 해주셨던 신부님들은 활동가들의 가장 가까운 벗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국미사와 행진을 참여하면서 신부님들에게 꼭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 1일 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 시국미사에 참석한 신부, 수녀 및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마친 뒤 다시 광장에 모여 마무리 행사를 열고 있다. (사진: 오마이뉴스)

 

“이명박 대통령도 사랑합시다, 사랑해요?”

 

김인국 신부님은 시국미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니 그저 말치레는 아닐 겁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활동가들은 매우 어리둥절했습니다. 촛불은 사랑과 미움의 구도에서 시작된 게 아닙니다. 자연인 이명박에 대한 원한이나 미움이 촛불의 정신이 아닙니다. 시민들은 통치자에게, 국가권력에게 권리를 보장하고 실현하라는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교육, 공공재(물, 전기, 가스 등), 의료 등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기본적 권리가 너무나 심각하게 위협받는 공포와 불안이 시위라는 시민들의 정치적 힘을 폭발시킨 것입니다.

 

때문에 자연인 이명박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해야 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0대 청소년들이 대통령을 ‘쥐박이’라며 노래까지 만들어 놀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민들이 익살스런 조롱으로 권력자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권력자가 감수해야 할 일이지 개인화해서는 안 됩니다. 성서에도 묵시론적 은유문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사랑과 미움의 용서와 화해의 작동이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두 달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를 통해 쉽사리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서서히 양비론이 고개를 들고 이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도 해법을 내놓고 촛불도 자성해야 한다.’ ‘차분히 일상으로 돌아가서 어려운 경제를 살리자.’며 촛불집회를 대대적으로 방송했던 언론사들이 양비론을 시작했습니다. 시위대를 향한 신부님들의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요청이 촛불을 꺼보려는 여론몰이에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저는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정의와 불의의 대치 구도로 바꾸어 주셔야 합니다. 시민들은 인권의 실현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이명박 정부가 바로 불의입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저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을 매우 좋아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타인과 자신을 위해 슬퍼할 줄 아는 사람, 정의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 정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사람” 등 8가지 인간의 모습이지요. 저는 이 모습이 촛불을 든 시위대와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부자를 배격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과 함께 했던 예수,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단호히 행동했던 예수는 참으로 민중의 편에서 편파적이었습니다.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인권운동은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철학에 빚 진 바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인권활동가들과 신부님들은 이런 맥락에서 함께 만나왔고 앞으로도 함께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일 시국미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이 자리에 초대하고 싶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그 자리에 책임 있게 나와 국민들의 요청을 들어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신부님들이 이름 불러 초청해 주어야 할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정말 많습니다.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다’며 1,0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이랜드, KTX와 새마을호 여승무원 등 수많은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 정부의 단속을 피해 숨죽여 살아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등 일하면 할수록 더욱더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촛불에 모이고 싶어도 모일 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편파적이라는 비판을 듣더라고 그들의 편을, 이 땅의 ‘가난한 정의’의 편에 강하게 서야 합니다.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은 ‘약자에 대한 편애’라고 하지 않습니까? 침묵은 사소한 소란을 잠재운다며 구호를 외치지 말고 침묵하기를 요청하셨습니다. 지금 저는 7월 5일 인권활동가들이 어떤 직접행동을 해서 공안정권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킬 것인가 고민이 많습니다.

 

이를 위해 다른 활동가들과 논의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은 6월 10일 명박산성에 맞서 “민주주의는 차벽을 넘는다”는 구호로 시민 스티로폼 산성을 쌓는 일을 이른바 ‘선동’했습니다. 장장 5시간의 토론 끝에 산성을 쌓고 새벽을 맞았습니다. 너무나 소란스럽고, 무질서하기까지 했던 그날의 시민 직접행동은 차벽에 갇혀 있는 시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혼돈을 잠재우는 경험이었습니다. 이후 시민들은 차벽에 대항해 토성을 쌓는 등의 저항 행동에 비폭력 잣대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진전한다고 믿습니다.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소란스러움은 감수해야 할 하나의 덕목입니다. 물론 침묵이 금과 같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광야에서 외친 세례 요한처럼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구호를 목소리 높여 외치고 싶습니다. "너희가 외치지 않으면 돌들이 일어나 외칠 것"이라는 그의 메시지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래서 신부님들의 침묵시위와 다른 거리에서의 직접행동으로 7월 5일을 보낼 작정입니다. 한나라당만 제외한 모든 야당이 포함되는 원탁회의를 구성하고 7월 5일을 함께 주최해보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다행히 신부님들께서 강하게 반대하셔서 원탁회의 구성이 주춤주춤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잘 하셨고 고맙습니다. 촛불 향방이 그런 식으로 일부 정치집단과 사회지도자들의 결정에 넘어가 버린다면 ‘죽 쑤어 개 주는 꼴’이 되고 말죠. 신부님들의 고민도 참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민을 물어뜯기조차 하는 폭력경찰이 신부님들 앞에서는 쩔쩔 맨다지요? 신부님들의 종교적 진리의 힘이 모든 불의한 것을 잠재우는 저력이 있습니다. 감히 우리의 방패가 되어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정치권력이 얼마나 많은 개량적 시도를 하기 위해 신부님들을 찾아올까요. 그래도 지금처럼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찾아온 한 사람이 로마 동전을 내밀면서 이게 누구 것이냐고 물었다죠?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고 일갈 하신 예수를 떠올려 봅니다. 정의에 편에 선 예수는 현실 정치세력과는 단호히 선을 그었습니다. 저는 그 에피소드를 그렇게 해석합니다. “길은 원래 사람의 것이다” 김인국 신부님께서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청와대로 가는 길은 모두 차벽에 막혀 있습니다. 집회 시위의 자유가 정말 폐쇄공포증에 걸릴 지경입니다. 이럴 때 김 신부의 말씀은 참으로 ‘복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길은 원래 사람의 것입니다. 그 길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습니다. 우리 헌법 정신인 3.1 운동도 4.19 혁명도, 6.10 민주화항쟁도 그리고 광주항쟁도 모두 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외치고 쓰러지면서 만든 것입니다. 가난한 정의의 길을 되찾기 위해 나선 신부님들, 저희 인권활동가들도 그 길에 함께 하겠습니다. 무더위에 단식까지,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