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국민존엄을 선언하는 구국미사, 촛불 정국의 구원 투수로 등단

녹색세상 2008. 7. 1. 16:54
 

“신부님, 우리 신부님… 사랑합니다!”

  

30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진행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 미사 참석한 6만 여명의 시민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눈물을 글썽이거나, 웃음을 함박 머금은 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며 제각기 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렸다. 신부와 수녀들도 ‘우리도 사랑합니다’라며 기쁜 목소리로 화답했다. 이날 8시 무렵 시작된 시국 미사는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미사에는 150명의 신부와 200여명의 수녀가 참석했다. 이후 사제단과 참가자들은 남대문-명동-을지로를 거쳐 행진했으며, 오후 10시경 시국 미사와 이어진 촛불 행진은 시청 앞 광장으로 다시 돌아와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사제단 신부들은 곧바로 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단식기도를 시작했다. 

 

 ▲ 입장하는 신부들. 이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시국 미사에는 150여 명의 신부들이 참석했다.

 


  문화계엄사령관 유인촌, 미사 전 사제단 방문

 

애초 저녁 6시로 예정했던 미사는 무대차량을 마포 부근에서 제지 당하고, 시청 앞 광장을 경찰 버스로 전면 봉쇄하는 등 경찰의 방해로 1시간 30분가량 늦어졌다. 시국 미사를 막아보려는 정부의 시도도 집요했다. 사제단 관계자는 “오늘 오후 2시경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제기동성당에 사제단의 원로인 함세웅 신부를 찾아왔다”고 전했다. 사제단 측은 정황상 많은 사람이 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탁자 하나로 단상을 차렸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오후 6시경 이미 1만여 명 가량 모여 들었고, 미사가 끝난 오후 8시 30분 무렵에는 광장이 발 디딜 틈 없이 차고 넘쳐 차도까지 서 있었다. 시민들은 미사를 진행하는 신부의 말에 일일이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다.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며 미사를 시작하자 참가자 모두는 "아멘"이라고 화답하며 환호했다. 전종훈 신부는 “오늘 이 자리는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자리”라며 “오늘 기도가 반드시 이뤄져서 국민 모두가 신명나는 삶을 살아가는 출발점이 되길 기도한다”고 말했고, 박수는 뒷자리까지 메아리치며 이어졌다. 

 

 ▲ 문정현 신부 등 사제단 신부들이 기도를 드리는 모습. (사진: 프레시안)

 

“촛불의 진실성 확인해준 신부들…촛불의 구원투수”

 

특히 이날 신부들은 시민들에게 무기한 단식기도와 매일 저녁 7시에 이어질 시국 미사 소식을 알리며, 비폭력 촛불 집회를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 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는 “촛불을 지키는 힘은 비폭력이다. 오늘 비폭력 원칙이 깨지면 촛불은 영영 꺼진다”며 평화의 원칙을 지켜나가자고 호소했다. 김인국 신부는 “오늘 가두 행진은 우리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욕받고 상처받은 국민들의 자존감을 위로하기 위해서 나서는 것”이라며 “촛불이 꺼지면 민주주의도 꺼진다”고 말했다. 사제단 측은 “우리의 조건 첫 번째는 질긴 놈이 이긴다, 두 번째는 누가 질긴가 따져본다, 세 번째는 60일 동안 촛불을 들었다는 것 아니냐”고 물으며 “촛불이 승리한다. 평화 시위 보장하라. 국민을 때리지 말라”를 연호하자고 당부했다. 이날 미사와 이어진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의 분위기를 차분하면서도 밝았다. 행진하던 시민들은 여느 때처럼 ‘이명박은 물러나라’, ‘어청수도 물러나라’, ‘조중동은 폐간하라’, ‘민주시민 함께 해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사제단과 종교인의 참여에 거는 기대도 컸다.

 

미사에 참가한 박 모 씨는 “사제단의 결정에 감동했다. 촛불 집회가 변질됐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사실 못 느끼겠다. 소위 조중동에서 그런 말을 많이 만들지만 실제로 경찰의 폭력 진압에 맞서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시민은 매우 소수다. 그리고 오늘 미사와 행진이 언론에 보도되면, 누구도 촛불 집회를 비난할 수 없을 게다.”라고 말했다. 김은희 씨는 “역사적으로 늘 국민 입장을 대변하고 민주화에 기여해온 사제단이 나선 것에 굉장히 감사하다”며 “정부가 국민을 폭도로 몰아가며 탄압했는데, 신부님들이 든든한 방패막이 되준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신민아 씨도 “나오기 전에 겁을 많이 먹었는데, 신부님들이 있으니 안심이 된다”며 “경찰이 먼저 때리지 않으니 이렇게 평화적으로 집회가 진행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임모 씨는 “어제 폭력 진압으로 인해 촛불이 꺼질 것 같았는데 공평함의 상징인 신부들이 나서면서 촛불의 진실성이 다시 확인되고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부침이 있겠지만 촛불은 앞으로도 쉽게 꺼지지 않을 것 같다”며 “국민의 진심에 정부가 승복할 때까지 계속 타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경운동연합 안병옥 사무총장도 “촛불을 들고 60일간 모였던 국민은 처음부터 비폭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며 “최근 일부 시민과의 충돌 과정을 보면 정부가 의도적으로 촛불을 끄기 위해 조장하는 전략을 택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목적은 시민에게 공포심을 유발해서 평범한 이들의 참여를 막으려는 것이었다고 본다”며 “개인적으로 걱정이 많았는데, 정말 다행히 흐름을 꿰뚫어본 신부들이 앞장서서 비폭력 원칙을 외치며 시민을 보호하고, 광장을 지키는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촛불 집회의 근본적 원인이 정부의 잘못에 있다는 점, 그리고 비폭력이 촛불집회의 원칙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를 왜곡하는 세력에 준엄한 경고를 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촛불 집회와 거리 행진은 6만 여명의 시민과 사제단 신부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진행됐다.

 


   할 일 잃어버린 경찰…촛불 행렬은 청와대를 버렸다

 

한편, 시청 앞 광장을 봉쇄하며 시민들의 이동을 통제했던 경찰은 이날 미사에 참석하려는 시민 두 명을 이전 집회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광장 부근에서 ‘묻지마’ 연행을 해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제단 측이 “풀어주지 않으면 우리가 항의하러 가겠다”며 연행자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자 경찰은 그제야 이들을 풀어줬다. 또 경찰은 미사와 행진 내내 태평로 조선일보 사옥 앞쪽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청와대 방향의 접근을 막은 것은 물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부근도 차도를 원천 봉쇄했다. 하지만 행진 대열이 청와대가 아니라 남대문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경찰은 할 일을 잃었다. 사제단은 남대문 쪽으로 행진을 시작하며 “더 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진짜 소통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대통령은 국민 가운데 한 명일 뿐”이고 밝혔다. 이로써 청와대는 촛불 행렬에게서조차 버림받은 셈이 됐다. 동시에 촛불 행렬은 강경진압의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참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경찰의 폭력 진압에 따른 부담 때문에 참가를 망설였던 시민들이 촛불 행렬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  경찰은 마치 촛불집회가 폭력적이었다고 시위라도 하려는 듯 전날까지 시민들이 부순 차량을 인도 앞에 배치해 시민들의 비웃음을 샀다.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