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국정원은 왜 내부 고발자를 해임했나?

녹색세상 2008. 6. 24. 01:18
 

이스라엘 한국대사관에서 벌어진 이상한 ‘거래’


국정원이 동료 직원의 비리를 들춰낸 직원을 석연찮은 이유를 들어 해임한 일이 일어나 논란이 되고 있다. 내부 고발자를 직장 내에서 왕따 시키고, 부당한 인사 조치를 내리는 것은 제대로 된 내부 고발자 보호 장치가 없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해외 공관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국정원은 물론 외교통상부까지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519호 법정. 재판장이 전직 국가정보원 4급 서기관 이 모 씨의 횡령 혐의를 인정,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씨는 2006년 주 이스라엘 대사관에 근무하던 중 귀국 지시를 받고 자신의 후임자가 살게 될 집을 미리 골라 3년간 9만 달러에 임대계약을 맺었다. 그 후 이 씨는 1년 치 임대료 3만 달러를 정부 예산으로 송금 받아 집주인에게 지불한 뒤, 곧바로 3년간 관리비 명목으로 1만8000달러(당시 환율로 약 1700여만원)를 돌려받았으나, 후임자에게 넘겨주지 않고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 이 사건은 지난 3월 30일 이스라엘 중앙지 글로브스(Globes)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신문에 실린 집주인 오므리 파단(왼쪽)과 황 씨의 모습. (사진:프레시안) 

 


이 재판은 국정원이 지난해 9월 이 씨의 비위사실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한 뒤, 지난 2월 서울중앙지검 외사부가 이 씨를 불구속 기소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날 법정 한 구석에는 판결 선고를 지켜보던 한 남자가 있었다. 2006년 이 씨의 후임으로 이스라엘 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부임했던 전직 국정원 직원 황 모 씨. 영문도 모르고 전임자 이 씨가 계약한 집에 들어가 살아야 했던 당사자였다. 황 씨는 판결 후 법정 밖에서 마주친 이 씨에게 “대체 왜 그랬습니까, 선배님. 나는 당신 때문에…”라고 말끝을 흐리더니 "관둡시다"하고 돌아서 버렸다. 그러면서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착잡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이 씨의 횡령에 유죄가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싸움은 왜 시작인 것일까. 그리고 이 씨 횡령 행각의 피해자에 불과한 황 씨는 왜 ‘전직’ 국정원 직원일까? 그 답은 이 씨의 횡령 사실을 인지한 2007년 3월부터 지금까지 황 씨가 겪고 있는 기막힌 사연 속에 들어 있다.

  

이상한 선악판단

 

2006년 3월 29일 대사관으로 부임한 황 씨는 이 씨가 법과 관행, 상식에 어긋나게 자신의 동의도 없이 계약해 놓은 집에 들어가 살 수밖에 없었다. 연 3만 달러라는 집값은 주변의 유사한 주택 시세에 비해 턱없이 높았고, 집은 불편했다. 불만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1년을 살았던 이 씨는 2007년 3월 29일 집주인으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전임자 황 씨가 계약을 하면서 3년 동안의 보수유지비 명목으로 1만8000달러를 가져갔는데 그걸 받지 못했냐는 것이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서도 임대 주택에 고칠 일이 생기면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이 돈을 부담한다. 그러나 이 씨는 자신에게 수리비를 주면 황 씨에게 전달할 것이며, 그렇게 하면 3년간 집수리 문제를 신경 쓰지 않게 하겠다고 설득, 18000달러(월 500달러×3년)를 받아갔다.

 

집 주인의 난데없는 얘기에 이 씨의 횡령 사실을 직감한 황 씨는 국정원에 이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전형적인 내부고발이었다. 그러자 이 씨는 자신의 국내 은행 계좌에 들어 있던 돈 1만8000달러를 반납한 뒤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책임을 지고 2007년 5월 16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2006년 귀국 후 정년퇴직하고, 계약직 연구위원으로 국정원에 다시 들어와 있던 때였다. 이 씨는 재판정에서 황 씨가 집을 구하느라 고생할 것을 걱정해 미리 임대계약을 했지만, 황 씨 부부가 자신의 선의도 모르고 집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다녀 괘씸한 생각에 집주인에게 돌려주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1년간 자신의 계좌에 둔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판사는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횡령을 인정했다. 다만 이 씨가 황 씨의 조사 의뢰 직후 횡령 전액을 반납했음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 ‘글로브스’에 실린 문제의 집 내부 모습 ⓒ프레시안


  내부고발 5개월 만에 보복성 인사 조치

  

문제는 2007년 3월 이 씨의 비리 혐의를 조사해 달라는 황 씨의 의뢰를 받은 국정원의 태도였다. 이 씨 변호사의 법정 진술에 따르면, 국정원은 조사 후 ‘사소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8월 인사 때 황에게 귀임 명령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정원은 통상 3년인 해외 주재관 임기가 반도 채워지기 전인 그 해 8월 황 씨에게 귀임을 명했고, 이 씨에게는 사직을 권고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황 씨는 인사명령에 불복하고 8월 1일 현지에서 일반퇴직을 신청했다. 국정원이 혈세를 횡령한 비위직원에 대한 조사를 흐지부지 끝내는 대신, 비리를 고발한 자신에게 보복성 인사 조치를 취했다고 여겨 항의를 표한 것이었다.


그러자 외교부는 9월 6일 공문으로 황 씨에 대한 의원면직(본인의 요청에 따라 해직) 처리 사실을 대사관에 통보했고, 대사관도 곧바로 황 씨에게 사실을 알렸다. 국정원이 황 씨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준 듯했다. 그 후 황 씨의 부인 김 모 씨는 감사원과 외교부 감사관실에 이 문제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고, 국가청렴위원회에는 국정원이 내부비리를 은폐하고 있다고 고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국가청렴위원회가 대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하기 전 국정원은 서울중앙지검에 이 씨에 대한 수사를 전격 의뢰했다. 국정원의 책임을 면하고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선수를 쳤다는 게 황 씨의 주장이다.

 

  사표 수리됐다더니 갑자기 ‘해임’ 통보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퇴직이 된 줄 알고 있던 황 씨에게 국정원이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라고 12월 4일 통보한 것이다. 그것은 황 씨가 여전히 현직 상태라는 것을 의미했다. 국정원은 12월 18일 황 씨가 불참한 가운데 징계위원회를 열고 그를 해임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귀임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게 표면상의 이유였지만, 황 씨는 자신의 내부고발에 대해 8월 귀임명령에 이은 또 한 번의 보복이라고 보고 있다. 황 씨는 말한다. 의원면직이 됐다고 알려온 9월 6일 이후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고, 8월 16일 부임한 후임자가 일반퇴직과 관련한 서류를 꾸며 달라고 해서 그대로 했으며, 외교관 신분을 벗어남에 따라 대사관이 낸 집값의 잔여분도 반납했는데 어떻게 자신이 현직일 수 있느냐고. 하지만 결국 황 씨는 해임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고,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국정원이 내부비리를 고발한 직원에게 귀임 명령이라는 징계성 인사 조치를 한 것도 모자라 내쫓아버렸다고 황 씨 측은 강조한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외교부의 실수로 의원면직 통보를 했지 국정원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외교부가 우리 직원을 의원면직할 수 없는데, 외교부가 일 처리를 미숙하게 했다”라며 “황 씨가 행자부 소청심사위원회에 낸 해임 관련 이의 신청(2008년 3월)도 기각되어 문제가 없는 걸로 결론 내려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9월 6일 이후 황 씨에게 봉급이 지급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근무지 이탈이라서 안 줬지만 소청심사위원회에서 ‘봉급 미지급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나중에 지급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황 씨 측에서는 “꼭 들어와서 퇴직 절차를 밟아야 했다면 잠깐이라도 귀국할 수 있었는데, 의원면직됐다는 공문이 왔고 월급도 안 나왔기 때문에 사표가 수리된 걸로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국정원이 문제가 커지니까 외교부와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황 씨는 지금 국정원의 해임 처분을 뒤집기 위한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싸움이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그의 말은 그걸 두고 하는 얘기다.

  

대사관은 속았나 공모했나?

 

2006년 당시의 석연찮은 주택 계약이 가능했던 것은 대사관 직원들의 공모 때문이라는 황 씨의 주장은 또 하나의 쟁점이다. 부임 전에 국가 예산을 받아 주택을 계약하려면 법률상 뚜렷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전혀 없었고, 황 씨에게 사전에 일언반구 알려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사관이 일종의 허위공문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2006년 3월 당시 이스라엘 대사 대리로 있던 박 모 공사와 민 모, 이 모 서기관 등은 유죄 판결을 받은 이 씨의 말을 듣고 3월 20일 주택 임차료를 미리 지급해 달라는 요청을 외교부 장관 앞으로 보낸다. 24일 장관의 승인을 받은 대사관은 1년 치 임차료 3만 달러를 이 씨에게 수표로 발행해 당일 계약을 체결토록 했다. 그 집에 실제 거주할 황 씨가 부임해 오기 5일 전에 이뤄진 일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있은 후 1년이 지나 이 씨의 횡령 사실이 드러나고, 황 씨 측에서 외교부 감사관실에 조사를 의뢰하는 등 사건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외교부는 대사관 직원들을 조사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외교부 감사관실 관계자는 “대사관이 이 씨가 조작해 온 서류를 보고 선지급 신청을 했을 수 있다”며 “부처(국정원)에서 조사를 했지 외교부 감사관실에서 이 문제를 다루진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한국대사관은 계약은 전적으로 이-황 두 사람의 문제이며, 자신들은 오히려 이 씨 횡령 행각의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대사관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대사관이 허위공문서를 작성했다는 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황 씨와 이 씨가 어떤 합의를 했는지 모르지만, 대사관은 이 씨가 가져온 계약서를 가지고 본부에 보고해 승인을 받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황 씨가 집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입주 전에 문제제기를 했어야 했는데 1년 이상 살아 놓고 엉뚱한 얘기를 했다”라고 덧붙였다.

 

“대사관이 피해자라면 법적 조치를 해야지…”

 

그러나 황 씨 측에서는 “이 씨가 우리의 위임도 받지 않은 채 미리 계약한 걸 문제 삼을 수 있었지만, 후배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그랬다니까 1년간 그냥 살았던 것”이라며 “1년 후에 문제를 삼은 것은 이 씨의 횡령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황 씨 측은 대사관도 피해자라는 주장에 대해 “그렇다면 국가기관인 대사관이 이 씨에 대해 법적인 심판을 받도록 했어야 했다”라며 “횡령 혐의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안 한 이유는 뭐냐”고 따져 물었다. 국정원과 외교부, 대사관이 이 문제를 이-황 두 사람의 문제로 보는 데에는 국민의 세금을 횡령한 사건이 아니라 개인 간의 돈거래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씨에 대한 판결은 이 돈이 공금인지 사금인지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황 씨의 처남인 김 모 씨는 “나랏돈이냐 개인 돈이냐를 가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라며 “혈세가 관행이란 이유로 빠져 나가고 아무도 심각하게 보지 않는 분위기가 제일 안타깝다”고 말했다.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