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

광우병을 말하는 호주 한인 한의사

녹색세상 2008. 5. 7. 22:29

 

호주 시드니 북쪽 작은 동네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는 교민입니다. 한 번도 이런 토론에 글 올린적도 없고 그저 읽기만 했습니다. 왜냐면 교민이라서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너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저 귀신처럼 맴돌기만 했었습니다. 90년대 초에 길바닥에 엄청난 땀을 흘리며 데모했던 세대입니다. 수십만 수백만의 인파속에서 시청 앞을 메웠던 그렇게 나라가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또 이렇게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이민을 온 다음에도 언제나 조금씩 내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선거전에 제 나이든 환자 한 분이 너무나 이쁜 미소를 보내시면서 “선생님요 이제 이맹박 씨가 대통령이 되믄 나라가 잘 살아지겠지요? 그라고 가난한 사람도 잘 살게 되겠지요? 하므요 가난한 출신 아임니꺼?” 하시기에 “글쎄요 올챙이적을 생각하는 개구리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겠지요”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그 할머니 환자분이 얼마나 실망하실지 눈에 선합니다. 매주 교민언론에 한방칼럼을 씁니다. 헌데 오늘은 도저히 건강이고 뭐고 생각나는 것은 없고 그 놈의 소고기 문제만 생각나서는 칼럼을 그렇게 써놓고 여기에도 올립니다.

 

▲안양시민사회단체가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면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광우병에 걸린 소로 등심스테이크, 우족탕을 만들어 먹어도 안전하다”는 주장을 편 심재철 의원 사무실 앞 규탄집회.(사진:오마이뉴스)


미친 소 이야기–광우병 공포를 보면서…

 

오늘은 한방칼럼 문 닫고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무슨 소린가 하시겠지만 아직 젊어서 저러려니 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극적인 한미자유무역협정 (Korea-US FTA) 타결 이후 연일 한국이 소고기 문제로 들썩들썩 하고 있습니다. 몇 일전 치료 중에 소고기 이야기를 하다가 “뭐 이제는 한국인도 아니고 뭘 바꿀 수 있지도 않은 처지에 말해서 뭐하겠어요” 하고 자책 반  포기 반으로 말했다가 “선생님은 벌써 호주화 했기 때문에 보는 입장이 다른 거”라는 환자분의 말을 들었습니다. 과연 그럴까 생각해 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긍정하시겠지만 나와서 사는 우리들은 언제나 더 한국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두고 온 곳이기 때문이고 그리운 곳이기 때문이고 아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의 발전이 이 사회 속에서 나의 위치가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속 타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모두가 늦잠 속에 날려버린 그래서 지금은 후회할지도 모르는 그 기본권인 선거권도 우리에겐 없기 때문에 아주 작은 목소리도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래 내가 뭘 할 수 있다고…”라며 자책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한국에서 공부한 전공이 지금의 광우병 논쟁에서 아주 가까이 있고 현재는 한의사이기 때문에 더욱 더 걱정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여기서도 오랜 기간 생물을 가르쳤고 대학에서도 통계과목을 가르쳤으니 이번 논쟁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번 광우병 논쟁은 살짝 본질을 비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광우병은 원래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BSE)라고 하는 병으로 소의 뇌가 스펀지처럼 변해서 결국은 미쳐 죽는 병입니다. 인간에게 걸렸을 때는 치매와 유사한 병증을 보이다 죽습니다. 지금까지 발병이 확인된 모든 환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100% 치사율 입니다. 병 자체가 무시무시한 만큼 지금 한국은 연일 광우병의 공포에 대해 성토 하고 있습니다. 탄핵 서명도 이미 120만명을 넘어섰다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고 있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그게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전체 다해서 3명의 인간 광우병 환자가 발생해서 사망했습니다. 따라서 아닌 게 아니라 165명이 사망한 영국의 케이스에 비하면 미국소는 안전하다고 미국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미친 소가 한국에 있는 사람을 죽게 만들 가능성은 그래서 아주 작다고 말하는 정부의 말도 숫자상으로는 맞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사실은 이번 합의 자체가 매우 불평등한 협약이었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11번째 규모의 경제라고 하는 게 왜 그렇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계약을 한 것인지, 어느 계약이나 가능하면 공정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거긴 없었습니다. 가장 극명한 예는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강 건너 불구경 하면서 여전히 들어온 소고기를 유통하고 국제기구가 결정해 줄 때까지 랜덤으로 몇개식 제비뽑기 하면서 검사 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검역도 나라의 주권행사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아마도 자신들이 어느 나라에서 수입해 온 음식이 자국 국민 건강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될 대 최소한 모두 검사하는 그리고 수입을 거부할 권리도 남겨둘 것입니다.


호주는 고등학교 생물 교과 과정에 Quarantine – 검역 부분을 따로 배웁니다. 매년 시험에도 꼭꼭 나와 줍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다 버립니다. 여기 교민 분들 한 두 번은 한국에서 친지들이 보내주신 귀한 멸치며 오징어며 검역에서 걸려 버려지거나 보내진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수십년 전에 육안 검역으로 통관해 들어온 외국산 팀버에서 들어온 솔입 혹파리는 한국의 오래된 소나무를 다 죽이고도 모자라 북한까지 넘어갔습니다. 몇 마리 풀어 놓은 황소개구리도 이제는 뱀도 다 잡아 먹습니다. 검역은 국가안보와도 맞먹는 나라의 안전에 대한 한 나라의 주권행사 입니다. 검역할 권리도 다 없는 상태에서 언젠가는 발생한 광우병 환자가 미국에서 발생하면 온 국민은 확인 받을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해하게 되고 나라는 그저 혼란으로 치닫을 것이 뻔합니다.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의 꿈은 그 날 부터 모든 서비스 산업의 마비부터 시작해서 아주 빨리 가라앉을 것 입니다. 경제논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먹고 살아야겠다는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