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정치적으로 침묵하던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섰다.

녹색세상 2008. 5. 5. 15:02

 

 

 

이명박을 지지한 적 없는 우리 청소년들


이번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의 가장 큰 특징은 중고등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 특히 20대가 점점 보수화되고 있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 흐름을 뒤엎을만한 10대들의 반란을 기성세대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지금의 청소년들은 이명박을 지지한 적이 없다. 한국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는 극도로 제약되어있다. 정치적 권리가 없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는 정확히 말해서 대선은, 청소년들의 관심 밖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10대들은, 지난 대선 때,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해 현재의 사태에 대한 책임이 청소년들에게는 없다. 사상 최악의 투표율을 나타냄으로써, 정치적 기권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20대들과 실패한 개혁에 대한 386이 느끼는 죄책감도, 이 시대를 만든 장본인이 기성세대가 느끼는 죄책감도 없다. 따라서 10대들은 한국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이명박 경제’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세대이다. 


오직 경제성장 논리의 마수에 빠져 이명박 반대에 머물거나, 심지어는 FTA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대안을 내놓았던 민주당류의 반 이명박 세력이 겪는 함정에도 빠지지 않는다. 이명박 시대에 대해 가장 상식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세대가 10대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10대들과 이명박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비극 그 자체였다. 전국 일제고사가 바로 10대들이 처음 만난 이명박 세상이었다. 청소년들이 가장 싫어할 전국 성적표와 이명박 대통령이 겹쳐졌다. 자살하는 친구들까지 생겼으니 오죽하겠는가? 0교시 부활에다, 수준별 학습까지 하나하나 10대들과는 철천지원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을 가득 메우고 저마다 촛불을 들고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독 집회 참가자들 중에는 10대들이 많다. (사진:프레시안)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은 바로 ‘나의 일’


게다가 하루 종일 학교에서 붙잡혀 있는 중고생들의 특성상 단체급식은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10분간 휴식 이외의 시간에는 공부만 해야 하는 10대들에게, 하루 중 유일하게 에너지를 얻고 여유 있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급식시간뿐이기 때문이다. 급식은 강제적인 선택이다. 대부분의 가정이 맞벌이를 해야 하는 현실에서 부모가 도시락을 싸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것은 10대들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친구들은 다 급식 먹는데 자기 혼자서 도시락을 먹을 수도 없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좋든, 싫든,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급식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은 가뜩이나 입시 중압감 때문에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생명을 걸 것을 강요하고 있다. 꾸역꾸역 밥 먹다가 체하는 것과 미국산 쇠고기 먹고 20대에 광우병으로 죽는 것은 분명히 다른 수준의 문제였다. ‘입시지옥=광우병지옥=이명박지옥’이라는 2008년판 죽음의 삼각지대가 형성되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피해만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 그것도 경제성장과 청년실업, 한미 FTA와 일자리 그리고 나의 취업이라는 추상적인 20대들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바로 먹고 있는 급식과 지금 바로 하고 있는 공부라는 아주 구체적이고 끔찍한 현실로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솔직히 이명박 대통령의 존재가 황당할 뿐이다.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그 피해를 오롯이 자신들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에 나왔다. 지금 10대들은 세상의 문제를 자신의 구체적인 현실과는 상관없다고 느끼고, 그것을 개인의 노력으로 풀려는 20대와는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쇠고기 수입개방을 자신의 현실과 연관해 생각하고, 이것을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안 사먹으면 되지’와 같은 개인적 방법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집회현장에 나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는 사람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사회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절망의 세대 88만원의 세대를 넘어, 저항의 세대가 출현한 것일까? 진정한 현실주의자들이,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태어나고 있다. 10대들이 움직일 때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가슴에 품는 것은 너무 이른 꿈이 아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