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과 인권

여성동지들의 결단을 촉구 합니다.

녹색세상 2008. 3. 4. 21:47
 

상황이 변해 올릴 수 없는 글이 되었지만 민주노동당이 갈라지기 전 국회의원 총선거가 남성 중심으로 흘러갈 것 같아 여성들에게 결단을 촉구하려고 써 놓았던 글입니다. 이런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가장 좋겠지만 아직은 멀기만 한 것 같습니다. 없애려다 제 누리방이니 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 공간이라 올려봅니다. ‘여성은 인류 마지막 미수복지역’이라는 어느 여신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진보신당도 너무 남성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아무리 대통령 선거 결과가 좋다 할지라도 딴나라당 텃밭인 대구지역에서 민주노동당의 간판으로 선거에 나선다는 것은 전사를 각오하는 것이기에 이 말 꺼내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작년 지방 선거 결과가 보여 주듯 출마자에게는 엄청난 타격과 상처라 ‘동지가 십자가를 지라’는 말을 꺼낼 생각조차 하기 힘든 게 대구지역의 우리 민주노동당이 처한 주객관적인 여건임을 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당직ㆍ공직 30% 의무 할당’에 맞추려면 대구시당에서 5명이 출마할 경우 여성 후보 2명이 출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너무나 힘든 짐이기에 책임질 처지도 아니면서 ‘여성동지들이 결단하라’는 말을 꺼낸다는 것은 ‘무책임 하다’는 꾸지람을 듣기에 충분합니다.


동지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스웨덴은 상장기업 임원 ‘여성 40% 의무 할당’을 법으로 명시해 채우질 못할 경우 많은 불이익을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사회복지제도가 발달되어 있다 할지라도 여성들이 육아와 가사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기에 사회 활동이 그리 녹록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고 여성의 사회 지위 보장을 위해 ‘상장기업 임원 여성 강제할당’ 제도를 만든 것은 스웨덴의 자본과 권력이 선해서가 아니라 ‘여성운동의 끈질긴 투쟁의 성과물’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몸말로 들어가면서


오래 전 얘기입니다만 제 동생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귀국할 때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 소속 비행기를 탓는데 승무원들이 말랐다고 할 정도로 야윈 몸에, 몇 번씩 옷을 갈아입는 국내 항공사와는 달리 체격도 좋고 처음에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외모 중심이 아니라 업무 위주로 직원을 선발하기 때문인데 독일 항공자본이 선해서 그런 것이라 믿는 분들 있습니까? 복지 국가인 북유럽이나 대한민국 ‘자본가의 속성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스웨덴 대사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적당한 근력은 적당한 몸에서 나오지 마른 몸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입니다. 유럽 여성운동의 끈질긴 투쟁의 성과물이 낳은 열매이지 선한 자본이 베푼 시혜가 결코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성평등 지수가 높다고 남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여성 동지들 있습니까? 군사독재정권 시절 암울한 조국의 현실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자신의 몸을 초개와 같이 던진 많은 남성활동가들의 성인지적 관점이 높다고 보십니까? 지금은 여성학자로 폭력적인 남성 위주의 문화 극복을 위해 연구하는 여성학자인 권인숙 박사가 90년대 초반 ‘사회평론’에 기고한 ‘진보적 남성지식인들의 비진보적 여성관’이란 글이 제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경찰이 잡으러 다니는 “아들이 빨갱이인줄 알았는데 결국은 지고, 아들의 편에 선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기 아내에게는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남성들은 모른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저 역시 남자로서 ‘지금 이대로가 좋은 사람’ 중의 하나지만 사랑하는 우리 딸에게 지금과 같은 현실을 물려줄 수 없고, 지금 나의 행복이 ‘여성들의 희생의 대가’라면 너무 불편해 함께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성 동지 여러분!

당직ㆍ공직 여성 30% 의무 할당은 민주노동당이 여성계에 내세울 수 있는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최소한의 장치 아닌가요? 지금 이대로가 좋은 남성들이 양보하기를 기다리지 않겠지만 멈춘다면 그나마 쟁취한 30% 할당 마저 흔들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민주노동당의 문화가 ‘40대 운동권 아저씨’들이 주도하는 ‘소수령 왕국’이란 박노자의 지적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운동권 남성 동창회’라고 보는 여성당원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글을 마무리 하면서


내가 져야할 짐이 너무 무겁고 힘이 들지만 사랑하는 우리 딸의 행복과 아들이 여성을 존중하는 세상에 살기를 원한다면 책임 있는 당직에 있는 분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최소 5명 출마 예상에 30% 의무 할당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고 나서는 여성동지가 계신다면 제가 소속된 위원회 선거운동에 빠지더라도 견마지로(犬馬之勞)를 할 용의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누리방(블로그) 관리부터 하겠습니다.


30% 의무 항당을 두고 지금 이 순간도 ‘역차별’이란 말이 남성 활동가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음을 여성 여러분들이 잘 알지 않습니까? ‘여성의 행복은 우리 모두의 행복’이듯 함께 힘을 모아 연대투쟁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힘든 싸움에 기운을 더 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인지적 관점이 떨어지는 남성이 그냥 던지는 말에 대꾸하는 싸움 방식은 접고 구체적인 실천을 할 때 30%에서 40% 의무할당으로 바뀌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올 것입니다. 내년 총선에 여성동지 여러분들이 포기하신다면 민주노동당의 성평등은 멀어져 갈 수 밖에 없다고 저는 봅니다.


특별히 여성위원회에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위원회에서 정리한 내용을 게시판에 올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남성들은 자신들이 지켜온 밥그릇을 그냥 내어 놓지 않습니다. 여성 여러분들이 끈질기게 투쟁하지 않으면 이대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여성은 ‘인류의 마지막 미해방지역’이란 한 여신학자의 말이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내용이나 표현상의 사소한 점은 수양의 부족으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여성동지들의 결단을 촉구합니다.